보라색 치유[살며 생각하며]

2025. 3. 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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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나만 옳고 넌 틀리다’ 이분법
갈등·대립 만들어내는 원천
한·미 등 정치적 상황서 폭발
한번 사로잡히면 못 빠져나와
빨강·파랑 뒤섞이면서 소통
보라색 세상이야말로 인간적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의 지난 1월은 30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를 기록했다. 사방이 눈으로 덮인 겨울을 보냈다. 그렇게 추운 어느 겨울밤, 몇십 년 만에 영화 ‘매트릭스’를 다시 봤다. 1999년에 개봉 당시 큰 화제가 되었고, 2003년에 이어 2021년까지 속편이 나왔다. 인공지능(AI)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면 인간은 일종의 매트릭스에 살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세계관이다. 최근 화두가 된 인공지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종종 언급해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매트릭스’를 다시 보면서, 주인공 네오 앞에 놓인 두 개의 알약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매트릭스에 대항하는 세력의 지도자인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빨간색과 파란색 알약을 가운데 선택하라고 한다. 빨간색을 먹으면 세계의 진실을 알 수 있고, 파란색을 먹으면 이전의 현실 곧 매트릭스로 돌아간다.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중간은 없다. 네오는 빨간색을 선택해 액체로 채워진 인큐베이터 안에서 알몸 상태인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인간이 인공지능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분법은 선과 악을 선택하는 상징으로 종종 등장한다.

알약에 주목하다 보니 색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빨간색과 파란색은 태극기를 포함한 수많은 국기에서 볼 수 있다. 태극기의 파란색과 빨간색은 하늘과 땅, 음양을 상징한다. 미국 성조기의 빨간색은 용맹·용기·강인함을, 파란색은 경계·인내·정의를 상징한다. 프랑스 국기의 빨간색은 형제애·귀족·위험을, 파란색은 자유·시민·자연 세계를 상징한다.

‘매트릭스’ 개봉 직후 미국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은 다른 의미를 가졌다.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는 개표 당일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 후보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플로리다주 개표를 놓고 법적으로 싸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언론은 고어가 승리한 주는 ‘파란 주’, 부시가 승리한 주는 ‘빨간 주’로 표시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각 주의 투표 결과를 보여줄 때 매체마다 다른 색깔을 사용했다. 그런데 2000년 대선 이후 민주당은 ‘파란 주’, 공화당은 ‘빨간 주’로 표시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부터 개표 현황에서 민주당은 파란색, 국민의힘은 빨간색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치적 갈등이 심해지면서 빨간색과 파란색은 한국과 미국에서는 개표 현황만이 아니라, 정치적 성향을 표시하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매트릭스’를 보면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정치 현실은 영화처럼 간단하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상은 2개의 색깔 중 간단하게 하나를 선택하기가 너무 어렵다.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야 하니 선택이 매우 복잡하다. 나에게 뭔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빨간색과 파란색만이 아니라 2개를 섞은 보라색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오히려 내가 사는 세상과 더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빨간색이 아니면 파란색밖에 선택할 수 없다면 세상을 보는 시야는 너무 좁고 편협해지는 한계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중간 색인 보라색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쪽과 저쪽을 모두 다 경험할 수 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두뇌의 움직임에 필요한 자극을 받으면서 사는 맛이 날 것이다. ‘보라색 세상’은, 말하자면 다채로운 색깔이 다 같이 존재하는 다채로운 세상이다.

보라색 알약을 먹으면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것은 되고 저것은 절대 안 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한번 빠지면 쉽게 변하기 어렵다. 갈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은 더 강해진다. 여기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열린 사고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쉽다. 그렇다고 기존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완전히 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각자의 가치관을 버리거나 바꾸는 것도 아니다. 조금씩 유연해진다는 것이다. 마음도 몸도 가치관도 세상을 대하는 태도도.

이분법은 간단하고 신속하다. 2010년대부터 급속히 퍼진 사회관계망(SNS)은 이런 속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그래서일까. 빨간색과 파란색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속한 매트릭스에서 호응을 받기 위해 더 강한 주장을 올리고, 그게 인기를 끌면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더 극단적인 내용을 올린다. 그렇게 악순환에 빠진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하는 정치인들마저도 여기에 편승한다.

이렇게 거친 시대에 빨간색 또는 파란색 알약을 먹고 선택한 매트릭스에서 편히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건 틀렸다. 그런 이분법적 사고야말로 사회적 갈등과 분열에 참여함으로써 문제를 재생산하는 데 참여하는 행위다.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들만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실제 존재하는 보라색 세상의 알약을 선택하라고 권한다. 보라색 알약을 먹고 마주하는 세상은 복잡하고 답답한 것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다채롭고 아름답다. 자극 없이 평범하고 단순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명확한 답을 따라 사는 인공지능의 세계와는 다른 지극히 인간적인 세상이 아닐까.

로버트 파우저 언어학자, 前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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