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아니, 해야만 한다는 것

최원형 기자 2025. 3. 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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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의 지구적으로 읽기 ④
“지각 있는 존재는 내재적 가치 지닌다”
‘이해관계 기반 권리’로 넓히는 새로운 지평
게티이미지뱅크

오징어는 더 맛있었던 먹이를 먹은 경험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먹기 위해 기다리거나 움직일 줄 안다. 스트레스를 받은 꿀벌들은 보상에 대한 기대를 아예 접는 등 자포자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초파리는 잠을 잘 때 마치 꿈을 꾸는 듯 행동하고, 문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회피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동물의 행태에 대한 갖가지 연구 결과들은 ‘비인간’ 동물과 인간이 사실 그리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더 많은 것을 알아갈수록 경계는 희미해진다.

인간은 오랫동안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가진 핵심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왔고, 이성, 의식, 자아, 인지, 언어 등을 다양한 것들을 그 후보로 꼽아왔다. 그러나 ‘비인간 동물에겐 그런 것이 없다’고 주장하기 전에, 인간 스스로에게조차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벽에 가로막혀온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으로 의식이 무언인지 규명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지난해 4월 과학자들은 ‘동물 의식에 관한 뉴욕 선언’(뉴욕 선언)이란 것을 내놨다. 여지껏 누적된 과학적 탐구 결과들은 “많은 동물들이 ‘의식적 경험’(conscious experience)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가리킨다는 선언이다. 참여한 과학자들은 “인간이 아닌 포유류와 조류가 의식적 경험을 한다는 데에는 강력한 과학적 근거가 있으며, 파충류·양서류·어류 등 모든 척추동물과 많은 무척추동물이 의식적 경험을 한다는 데에도 경험적 근거가 있다”고 선언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제시한 ‘의식적 경험’이란 개념이 눈길을 끈다. 이 분야의 최신 연구 흐름 가운데 한 경향은 의식을 쾌락이나 고통 같은 느낌들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능력으로 보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식이 있다는 건 “무언가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뉴욕 선언 역시 “현상적 의식(phenomenal consciousness) 또는 감각(sentience, 쾌락·고통 등을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곧 “어떤 동물이 주관적인 경험을 가질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은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묻는 사고실험을 제시한 바 있다. 여러 동물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라면,우리는 인간의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이 세상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그 가치를 평가절하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의식적 경험을 하는 존재들을 이전처럼 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뉴욕 선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동물들이 의식적 경험을 할 가능성이 현실적이라면, 동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서 그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만드는 권리

정치학자 앨러스데어 코크런(영국 셰필드대 교수)은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2020)에서 인간 공동체가 비인간 동물에게 어떤 ‘정치적’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지 논의한다. 코크런은 동물 윤리를 정치적으로 ‘전환’하는 데 관심이 많은 학자로, ‘해방 없는 동물권’(Animal Rights Without Liberation, 2012), ‘지각 있는 존재들의 정치’(Sentientist Politics, 2018) 등이 그의 주저로 꼽힌다.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은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짧은 분량의 소책자로, 코크런은 이 책에서 정치와 동물을 한사코 분리시키려 하는 “정치의 인간중심적 배타성”을 비판하며 ‘동물해방’ 또는 ‘동물권’ 사이를 주로 오가던 기존의 동물 담론을 적극적으로 ‘정치’ 쪽으로 끌어당긴다.

앨러스데어 코크런 영국 셰필드대 교수. 위키미디어 코먼스

출발점은 뉴욕 선언과 같다. “모든 지각 있는(sentient) 동물은 내재적(inherent·본질적) 가치를 지니며 그것을 존중받을 권리를 지닌다.” 코크런은 여기에 ‘이해관계 기반 권리’(interest based rights)라는 나름의 접근법을 더한다. 철학자 조셉 라즈의 영향을 받은 이 접근법은 권리를 “타자에게 의무를 부여할 정도로 중요한 개체의 이해관계로 파악”한다. 한마디로 권리는 어떤 존재의 이해관계가 다른 존재에게 의무를 부과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식적 경험이 없는 존재들과 달리, 지각 있는 존재는 누군가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내재적 가치를 갖는다. 다른 존재의 이해관계에 종속되거나 휘둘리지 않는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갖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해관계 기반 권리’는 지각 있는 존재와 그의 내재적 가치, 그리고 거기에서 발원하는 권리 사이에 일관된 연결고리를 만든다.

이런 접근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권리를 가진 존재들이 애초 똑같은 권리의 묶음을 나눠갖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근거해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표현의 자유’는 누군가가 애초 그런 권리의 소유자라서가 아니라, 다른 존재에게 그것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의무를 부과해야 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하기 때문에 주어진다. 만약 자유롭게 발언하고 말고가 그 존재가 잘 살아가기 위한 이해관계와 무관하다면, 그것은 권리가 되지 못한다. 어린이에게는 결혼할 권리가 없고, 종교의 자유는 문어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각 개체들의 내재적 가치에 적절한 존중을 보인다는 것은 그들이 종종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이는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주창하는 ‘역량접근법’(capabilities approach)과도 공명한다. 누스바움은 누군가 무엇을 원한다면 그것을 실제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주목하고, 이를 근간으로 삼는 정의론을 펼쳤다. 그 중심에는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함께 주목했던 ‘역량’ 개념이 있다. 역량이란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자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행동을 선택할 기회”를 의미한다. 이를 누릴 수 있는 것이 정의(justice)이고, 반대로 “부당한 방해에 의해 중요한 삶의 노력이 차단”되는 것이 불의다. 그런데 역량의 목록에 기본적인 기회나 자격들이 명시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전부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의 선택은 생존하고 번영하려는 개별 존재들의 몫이며, 목록보다 의미 있는 것은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삶의 형태를 추구하느냐다.

누스바움은 2023년에 출간한 저작 ‘동물을 위한 정의’에서 이 같은 역량접근법에 기반한 동물윤리·동물권 담론을 펼친다. ‘방해받는 삶’에서 벗어나 ‘번영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정의라면, 이는 인간과 다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번영을 추구하는 지각 있는 비인간 동물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공동의 목적으로 삼고 그에 마땅한 의무를 지는 공동체를 ‘다종(multi species) 공동체’라 불렀다.

마사 누스바움은 \'동물을 위한 정의\'에서 \'역량 접근법\'에 기초한 동물권을 논의한다. 시카고대 누리집 갈무리

‘동물 보호’에서 ‘민주적 대표성’으로 나아가는 길

코크런 역시 현재 인간만을 위한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비인간 동물까지 포괄하는 ‘다종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지 따져본다. 코크런의 작업은 무엇보다 ‘정치적 권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독특한데, 그에게 ‘정치적 권리’는 “동물이 정치 공동체 내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시민과 정부 당국 등이 동물을 위해 무엇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지 등을 의미한다.” 책은 전체적으론 동물복지법에서 출발하여 헌법조항, 법적 인격성, 성원권, 민주적 대표성 등 비인간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법적인 장치들을 단계별로 따져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일단 동물을 학대하거나 혹사하는 것을 금지하는 동물복지법은 동물윤리나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출발점으로, 일견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듯 보인다. 1822년 영국의 ‘마틴법’이 기틀을 마련한 동물복지법은 현재 꽤 많은 나라에 도입되어 있으며, 예컨대 유럽연합(EU)의 최고법에 해당하는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TFEU)은 “동물은 지각 있는 존재이므로 유럽연합과 회원국은 (…) 동물복지 요건에 전적으로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코크런은 이 법이 처음으로 동물을 직접적으로 보호했지만, “동물을 인간의 이익 관점에서만 인정하는 기존 체제를 뒤집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바다표범 모피의 무역은 금지해도 송아지 고기 생산은 금지하지 않는 등 인간의 이익에 거스르지 않을 때에만 ‘보호’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동물 보호를 일개 법률 차원이 아니라 아예 한 나라의 헌법에 새겨넣는 것이다. 독일 헌법은 2002년 국가의 보호 책임을 규정한 조항에 “그리고 동물들”(and the animals)이란 단어를 추가했다. 현재 오스트리아, 브라질, 이집트, 독일, 인도, 룩셈부르크, 슬로베니아, 스위스 등이 동물의 복지를 고려하는 것이 국가와 시민의 의무임을 헌법 조항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코크란은 이것 역시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헌법 조항은 마치 동등하게 보호받는 것처럼 천명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이 대치하면 동물의 이익은 어김없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국가의 보호 아래에서도 인간의 편익을 위해 동물의 목숨을 구조적으로 희생시키는 축산업은 여전히 잘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런 현실을 잘 드러낸다.

따라서 인간과 동등하게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선 동물에게 인간과 대등한 법적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법적 인격성에서 출발해 성원권, 민주적 대표성으로 나아가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법적 인격성은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지위나 자격을 말한다. 2016년 아르헨티나 멘도사는 동물원에 갇힌 침팬지 세실리아가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며 아르헨티나 동물권전문변호사협회가 청구한 인신보호영장을 승인했는데, 이는 영장류가 기본권을 갖는 ‘법적 인격’이라고 판단한 최초의 판결로 꼽힌다. 최근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도 자연에 법적 인격성을 부여하는 ‘생태법인’ 제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2019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동물권단체 활동가들이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과정에서의 살처분을 비판하고 중단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벌이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각 있는 동물에게 법적 인격성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동물의 이해관계가 (더 이상) 인간에게 종속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법적 인격성 자체가 동물을 마술처럼 ‘권리 보유자’로 바꿔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이해관계는 여전히 동물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의 법적 지위가 대등해졌기 때문에 인간의 이해관계는 동물의 이해관계와 함께 공정하고 평등하게 평가된 뒤에야 비로소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지각 있는 동물이 법적 인격성을 얻는다면, 인간의 이해관계는 단순히 인간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 더 강력하고 비중 있는 이유, 즉 ‘잘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해충돌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일이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대신 동물에게는 고통을 가한다면, 동물은 인간의 이익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이익(고통에서 벗어남)을 주장하고 누릴 권리를 지닌다. 이처럼 “동물과 인간의 이익이 공정하게 비교된다면 축산업과 동물연구,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한 산업 전반에서 동물을 착취하는 일은 위축될 것이다. 이러한 분야에서 얻은 이익에서 비롯된 인간의 이익이 크더라도 착취에서 자유로워지는 동물의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코크런의 논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법적인’ 주체가 되어 공동체의 보호를 확보하는 것은 ‘잘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인간의 경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온전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공동체의 목표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인 주체가 되길 원한다. 코크런은 이를 ‘성원권’(membership)의 문제라고 보며, 비인간 동물 역시 내재적 가치를 온전히 존중받기 위해선 반드시 성원권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선 경찰견이 강도 용의자를 쫓다가 부상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경찰견의 처우를 강화했고, 미국에선 복무기간이 끝난 군견에게 ‘은퇴 이후의 삶을 보장해야 한다’며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있었다. 그 배경에는 공공의 이익에 복무한 동물들은 “우리 사회의 동료 구성원”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동료 구성원에겐 마땅히 수동적인 법적 보호를 넘어 사회적 복지 등 공적 재화를 누릴 자격까지 주어져야 한다.

결국, ‘다종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정치가 중요

다만 언론·집회, 정치적 참여 등 다양한 자원들을 지닌 인간과 달리, 동물에겐 공동체의 논의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반영시킬 실질적인 수단이 없다. 이 때문에 동물에겐 동물에게 맞는 ‘민주적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동물의 성원권을 보장하기 위한 핵심은 동물이 민주적 대표권을 향유하는 것이다.”

네덜란드 동물당은 2006년 자국 하원 선거에서 2명의 대표를 선출시켰고, 2021년에는 이를 6명으로 늘렸다. 이들은 “현재 유럽, 국가, 지역 및 지방 차원에서 92명의 선출된 대표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다. 네덜란드 동물당 누리집 갈무리

이와 관련해 코크런은 동물의 이해관계를 공동체 전체의 목표에 반영하기 위해 네 가지 가능한 방법들을 따져본다.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존 메커니즘에 충실한 것으로, 동물에 공감하는 정책 입안자에게 투표하는 방법이다. 동물복지를 앞세우는 정당을 만드는 것이 대표적으로, 자국 상하원은 물론 유럽의회에도 의원을 진출시킨 네덜란드 동물당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동물당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문제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경우 동물의 이해관계는 곧바로 소외되는 등 “동물의 이익이 여전히 인간의 욕구에 따라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배제된 이들에게 민주적 대표권을 확보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옴부즈만 등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전문가 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브라질에는 이미 ‘상설 동물복지 기술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다. 다만 코크런은 입법부 바깥에 있기 때문에 책임의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며 이 역시 기각한다. “동물의 성원권을 달성하려면, 입법부 내에서의 민주적 대표권 또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대표를 스스로 선출해 의회로 보낼 수 있도록, 동물도 인간처럼 참정권을 지녀야 하는 것일까? 수 도널드슨과 윌 킴리카는 ‘동물정치’(zoopolis)라는 개념을 통해 동물(단 이들은 야생동물을 제외한 가축으로 대상을 한정한다)에게 참정권을 포함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코크런은 동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다. “법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법의 선택과 제정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며, “동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도 동물을 효과적으로 대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코크런이 적절한 방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동물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이를 공동체의 논의에 반영할 수 있는, 일종의 ‘동물 전담 의원’의 존재다. 다만 이들이 인간의 이익에 밀려 입법부에 진출하지 못하거나, 입법부에 들어가서도 동물을 대변하는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 역시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코크런은 입법부의 의석 일부를 할당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민주적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정치 메커니즘을 활용하면서도 소수자의 이해관계를 증진할 수 있는 제도 개편을 말하는 셈이다.

이런 코크런의 시도는 그동안 공리주의가 주창해온 ‘동물해방’과 의무론이 강조해온 ‘동물권리’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설 길을 제시한다. 피터 싱어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고통과 쾌락을 느낄 줄 아는 존재들이라면 마땅히 그들의 이해관계 역시 따져야 한다며, 오랫동안 우리가 갇혀 있던 ‘종 차별주의’에서 벗어날 길(동물해방)을 열었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고통과 쾌락의 ‘총량’으로 따지고 비교하는 데 익숙한 이들은 각각의 이해관계가 과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묻지 못했다. 톰 리건으로 대표되는 의무론은 삶의 주체라면 누구나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해, 권리 담론을 비인간 동물로 확장하는 기틀을 닦았다. 그러나 내재적 가치를 존중받기 위한 권리가 실제로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는 적절히 제시하지 못했다.

코크런과 누스바움의 작업에서 보듯, 서로 다른 두 입장을 이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동물의 세계가 지닌 놀라운 다양성과 포괄성”이다. 지각이라 부르든 의식적 경험이라 부르든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공유하는 본질은 “잘 살아가고” 싶은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핵심은 그 삶들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니 ‘다종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결국 정치를, 특히 비인간 동물의 정치적 권리를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모든 정치적 행위가 그렇듯, 그것은 동물과 인간이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또한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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