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 꾀한 사촌·즉위 반대 세력도 포용… 온화하고 너그러웠던 이성계[박영규의 조선 궁궐 사람들]
풍채 좋고 넓은 귓불 지녀
관상학적으로는 겸손·경청
실제로도 말 많지않고 신중
적 만들기보단 화합 추구해
원래 장손인 사촌형 이천계
이성계 몰아내려다가 실패
그럼에도 그의 자손 보살펴
반대파엔 벼슬 주고 신하로
“부하 모두 태조에 예속 원해”
‘동각잡기’에 포용리더십 기록
# 이성계의 외모-넉넉한 풍채, 너그러운 인상, 특별한 귀
이성계의 외모는 어땠을까? 다행히 태조 어진(御眞)이 남아 있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왕들의 어진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됐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 몇 점 되지 않는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전주시 경기전의 어진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데, 이 어진은 태조 생존 당시에 제작된 것을 모사한 것이다. 태조 어진은 태종 대와 고종 대에 각각 한 번씩 모사됐는데, 경기전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고종 대의 화가들인 조중묵, 백은배, 박기준 등이 태종 시절에 제작된 모사본을 1872년에 다시 모사한 것이다.
조선의 초상화는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데, 그 때문에 천연두 자국까지 매우 상세하게 표현됐다. 어진 역시 이런 화법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태조의 어진은 태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어진 속에 표현된 이성계는 다소 풍채가 있고, 콧대는 높으며 콧방울은 뚜렷하나 작은 편이다. 그리고 귀는 크고, 특히 귓불이 매우 넓다. 하지만 눈은 다소 작은 편이고, 입은 크지 않으며, 입술은 두껍지 않다. 이는 전체적으로 넉넉한 풍채에 너그러운 인상을 주고 있다. 이런 어진의 모습은 ‘동각잡기’의 ‘높은 코에 용의 얼굴’이라는 표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용의 얼굴은 눈이 크고 형형하며 눈썹이 짙고 콧방울이 큰 것이 특징인데, 태조 어진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기 때문이다.
‘용비어천가’에서는 태조의 외모에 대해 ‘키는 커서 우뚝하고 곧으며 귀가 큰 것이 특별히 달랐다’고 했는데, 아마 이 표현이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특히 귀가 큰 것은 확실하게 드러난다. 명나라 사신으로 온 왕태라는 인물은 고려 왕조 시절의 이성계를 만나보고는 ‘기이하다 귀여, 고금에 보지 못하였도다’고 하면서 그의 귀를 매우 찬양하며 부러워했다고 하니, 태조의 귀가 특별했던 것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대개 관상학에서는 귀가 크고 귓불이 넓으면 성격이 너그럽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겸손한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 판단하곤 하는데, 이런 관상학적 관점과 이성계의 인품은 일치했을까?
# 친화력 좋고 온화한 성품이 포용의 리더십으로 승화되다
이성계는 말이 많지 않고 신중했으며, 되도록 적을 만들지 않고 화합을 좋아하는 너그럽고 친화적인 성품이었다. 이성계의 이런 면모는 실록과 야사 곳곳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태조실록 총서 편의 다음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처음에 환조(이자춘)가 세상을 떠나니, 이천계는 자기가 적사(嫡嗣·적장자로서 집안의 대를 잇는 위치)가 된 이유로서 마음속으로 태조를 꺼리었다. 태조의 종이 양민임을 하소하는 사람이 있으니, 천계는 그 누이인 강우의 아내와 모여 모의하고 양민임을 하소한 사람과 서로 결탁하여 난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여의치 못하였다. 태조는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고 그들을 처음과 같이 대접하였다.’
‘병진년 여름에 이르러 어느 사람이 천계의 관하 사람 중 이미 혼인한 아내를 빼앗으므로, 천계가 노하여 구타해 죽이니, 천계를 마침내 옥에 내려 가두었다. 천계가 일찍이 권세를 부리는 재상을 꾸짖어 욕하였으므로, 재상이 드디어 그전 감정으로써 장차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태조가 변명하여 구원하고 힘써 청하였으나, 마침내 구원하여 내지 못하였으므로, 매우 이를 슬피 여겨 여러 고아들을 어루만져 양육하고 무릇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들을 모두 자기가 주관하였다.’
이 기사에 나오는 이천계는 이성계의 사촌 형이며, 집안의 장손이었다. 원래 이자춘에게는 자흥이라는 형이 한 명 있었는데, 이자흥은 어린 아들 천계를 두고 일찍 죽었다. 그래서 이자춘이 아버지 이춘의 대를 이어 작위와 재산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원래 장손이 천계였기 때문에 천계가 장성하면 천호의 벼슬은 물론이고 재산도 그에게 이양해야 했다. 하지만 이자춘은 자신의 직위와 재산을 모두 이성계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에 이천계는 그 일로 이성계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누이와 모의하여 이성계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하인들과 함께 이성계를 집안에서 몰아내려 하다가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도 이천계를 집안의 장손으로 잘 대접했다. 또한 이후에 이천계가 살인을 저지르고 사형을 당하게 됐는데, 이성계는 그의 자녀들은 물론이고 사촌 누나의 자녀들까지 잘 보살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대개 재물 앞에서는 형제는 물론이고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 말이 있는데, 이성계는 자신을 내쫓고 재물을 뺏으려 했던 사촌형과 사촌 누나, 그리고 그의 자손들까지 보살폈다고 하니, 그의 온화한 성품을 잘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친화적인 그의 성품은 신하와 부하를 대하는데 있어서는 포용의 리더십으로 승화된다. 실록의 다음 이야기는 그의 포용력을 잘 보여준다.
‘대소신료와 한량기로(閑良耆老·은퇴한 늙은 신하들) 등이 국새를 받들고 태조의 저택에 나아가니 사람들이 마을의 골목에 꽉 메어 있었다. 대사헌 민개가 홀로 기뻐하지 않으면서 얼굴빛에 나타내고, 머리를 기울이고 말하지 않으므로 남은이 이를 쳐서 죽이고자 하니, 전하가 ‘의리상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힘써 이를 말리었다.’
이 일은 1392년 7월 17일, 태조가 왕위에 오르던 날에 있었던 사건이다. 상황으로 보자면 민개는 이성계의 즉위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었는데, 대개 이럴 경우 죽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를 포용하여 벼슬을 주고 신하로 부렸다. 이성계의 포용력은 장수 시절부터 잘 알려져 있었는데, ‘동각잡기’의 다음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려조 말기에 군적에 올리지 않고 여러 장수들이 각기 군사를 차지하여 부하로 삼으니, 이름하기를 패기라고 하였다. 대장 중에 최영, 변안렬, 우인렬 같은 이들이 위엄을 세우려고만 하여 그 막료나 사졸 중에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으면 욕하고 꾸짖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매질하여 죽는 자까지 있으니, 부하들 중에 원망하는 자가 많았다. 하지만 태조만이 홀로 성심으로 부하들을 예의로 대접하니 평생에 뒷말하는 자가 없어 장군의 부하들이 모두 태조에게 예속되기를 원하였다.’
고려 말 당시 장수들이 이끄는 군대는 대부분이 사병이었는데, 사실 이성계의 군대는 특별했다. 싸움마다 지는 법이 없었고, 전투 중에 사상자가 극히 적었으며, 충성심이 그 어느 부대보다도 높았다. 이는 모두 이성계의 온화한 품성에서 비롯된 포용력 덕분이었다. ‘동각잡기’의 이 내용은 그런 이성계의 리더십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
■ 용어설명 - 어진(御眞)
조선 시대에 그려진 국왕의 초상화. 진용(眞容)·진(眞)·진영(眞影)·어용(御容)·왕상(王像)·어영(御影)이라는 단어들로 불리다가 1713년(숙종 39년) 숙종 어진을 그릴 당시 어용도사도감도제조(御容圖寫都監都提調)였던 이이명의 건의에 따라 ‘어진’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했다. 어진은 삼국시대 이후로 꾸준히 그려왔다. 어진은 특히 조선 시대에 많이 그려졌는데, 현재는 거의 대부분 소실됐다. 어진을 그릴 때는 궁정 최고 화가 또는 화가들이 모여서 왕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렸는데, 털 하나하나까지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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