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주인은 손님이 없을 때 뭘할까?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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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한 번에 망하지 않았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사무실 한쪽에서 김택수씨(54)는 그림을 그렸다.
지난 10년은 김씨에게 서울 공릉동이라는 동네를 재발견한 시간이기도 하다.
지역 내 40여 개 기관과 단체가 모여 만든 지역협의체 꿈마을공동체 사람들이 만든 '마을 여행' 코스 중 한 곳으로 지구불시착이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김씨의 마을살이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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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한 번에 망하지 않았다. 서서히 기울어가는 사무실 한쪽에서 김택수씨(54)는 그림을 그렸다. 배운 적 없어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불안이 커지는 만큼 시간도 많았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출력해서 만든 노트를 SNS에 올렸다. 메시지가 왔다. “살 수 있나요?” 독일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보내고 남은 노트를 팔기 위해 독립출판 마켓에 나갔다가 작가들을 알게 됐다. 변변한 서가도 없는 사무실에 ‘알게 된 작가’ 책을 하나둘 놓아두었다. 서점 ‘지구불시착’의 시작이다. “저는 그래서 정확한 서점 오픈 날짜를 몰라요.” 그게 대충 10년 전쯤이라는 것만 안다.
지난 10년은 김씨에게 서울 공릉동이라는 동네를 재발견한 시간이기도 하다. 지역 내 40여 개 기관과 단체가 모여 만든 지역협의체 꿈마을공동체 사람들이 만든 ‘마을 여행’ 코스 중 한 곳으로 지구불시착이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김씨의 마을살이도 시작됐다. 서점을 동네 거실 삼아 사람이 드나들었다. 아예 5년 정도는 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카페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해 서점을 꾸리기도 했다. 매주 열리는 북클럽과 글쓰기 모임에 오는 지구불시착 ‘관계자’도 생겼다. 카페가 폐업하고 지구불시착도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부동산을 돌며 새 공간을 적극적으로 알아봐준 사람들도 관계자들이었다. “지구불시착이 지금껏 유지될 수 있었던 시스템이에요. 저는 등 떠미는 대로 움직여요.”
지구불시착 서가 곳곳에는 관계자의 흔적이 묻어 있다. 이들은 서점이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래오래’라는 글씨를 부적처럼 꾸며 벽에 붙이고, 여행지에서도 안부를 묻는 엽서를 부친다. 그럼에도 서점을 한다는 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시간을 견디는 일”에 가깝다. 책만 팔아서는 생계를 잇지 못해 일러스트레이터 부업을 병행한다. 원하는 손님에게는 3000원을 받고 30초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한다. 기본 기능만 사용한 인디자인으로 책도 뚝딱뚝딱 찍어낸다. 지구불시착이 만드는 책은 어렵고 심각하거나 쓸모 있다기보다 생활에 가까운 무엇이다. 지난 1월 동네 사람 스무 명을 모아 펴낸 〈에세이 공릉〉에 실린 이야기들도 그렇다. 마을 ‘전문가’라 해도 손색없을 이들이 걸어야만 보이는 동네 풍경을 글로 옮겼다. “새롭지도 않고 똑같지도 않지만 내일도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이 작은 이야기의 필요를 발견해낸 사람들이 지구불시착을 오늘도 지킨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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