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cm 명문대 출신 전문직' 이라고 했더니…놀라운 반응 [요즘 결혼 ④]

유지희 2025. 3.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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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사 별별 마케팅, 직접 가보니
웨딩 시즌이 다가오지만 예비부부들의 고민은 깊다. 치솟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 메이크업)·예식장 비용에 '웨딩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다. 이에 셀프 웨딩과 가족 식사 대체가 늘고, 국제결혼과 결혼정보회사(결정사) 이용도 증가하는 추세다.

효율성과 실속을 중시하는 MZ세대가 만든 결혼 시장의 변화, 한경닷컴이 직접 들여다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제 앞자리가 3이잖아요. 조금 늦은 감이 있으세요. 가입한 대학생들도 많은걸요."

지난달 김 모 씨가 서울 강남구 한 결혼정보업체를 방문했을 때 들은 말이다. 이 업체는 주말에도 상담을 위한 대기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상담 시간은 약 20분 정도지만,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나이'였다. 올해, 만 29세(1996년생)인 김 씨는 한국식 나이인 30세로 평가받았다. "만 나이로는 아직 20대인데요?"라고 묻자, 상담사는 고개를 저으며 "결혼 시장에서는 여전히 한국 나이 기준으로 본다"고 했다.

29세와 30세의 차이가 그렇게 크냐는 질문에 상담사는 "완전히 다르다. 30세와 31세도 마찬가지다. 지금 가진 외모와 나이가 가장 큰 무기다. 이 시기를 놓치면 정말 후회할 수도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수백만원에 달하는 가입비도 여성은 34세, 남자는 36세가 넘으면 더 오른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곳을 포함해 방문한 총 3곳의 결혼정보업체 대부분은 김 씨에게 "나이"를 지적하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치면 힘들어진다"는 말을 반복하며 조급함을 유도하는 식이다. 

제보 받은 대화 내용

실제로 여러 업체를 이용해본 경험자들 역시 비슷한 증언을 했다.

2년 전 한 결혼 정보 업체에 가입한 A씨는 "가입비가 나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며 "대형 업체 중에서도 확실히 나이와 외모를 성적 가치처럼 평가하면서 공포 마케팅을 심하게 하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 B씨는 "한번 상담을 받았을 뿐인데 카톡과 문자로 '이제 해 바뀌면 29살 되는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 후회 없이 보내는 게 맞다', '99년생들도 가입해서 활동하고 교제 들어간다. 남자 복이 있으려면 투자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현실은 달라"…만 '31.5세', 매년 높아지는 韓 여성 평균 초혼 연령

결혼 관련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현실은 결혼정보업체가 주장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결혼정보업체가 지나치게 불안감을 자극하는 '공포마케팅'을 펼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국내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34.0세, 여성은 31.5세로 조사됐다. 이는 전년도에 비해 남성은 0.3세, 여성은 0.2세 상승한 수치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초혼 연령은 한국식 연령(세는 나이)이 아닌 국제 기준인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산출된다.

한경닷컴이 결정사 여성 회원들이 받는 프로필을 토대로 만든 결정사 프로필 예시 사진/출처=유지희 기자


여기에 일부 결혼정보업체들이 이성들이 관심을 가져할 만한 스펙의 소유자들을 '소개팅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모객해 마케팅을 펼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경닷컴의 취재 결과 몇몇 업체는 이성이 호감을 가질만한 외모와 직업의 소유자들에게 무료 가입, 가입비 할인, 금전적인 보상 등을 제공하고 있었다. 여기에 무제한 만남 기회를 주며 회원을 유치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반적으로 가입비를 내면 소개받는 횟수가 제한돼 있는데, 재가입 유도를 위해 이들을 활용한다는 것.

키 186cm의 훈훈한 외모에 강남에 거주하며 유명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한 30대 남성은 "많게는 한 주에 4명도 만나봤다"며 "처음에는 재밌었는데, 종마가 된 느낌이 들 때도 있더라"라고 귀띔했다. 

강남 개원의 강모(37) 씨는 2년 전 서울의 한 중형 결혼정보업체에 무료로 가입했다. 그는 "외모가 조금 떨어지거나 나이가 많은 부잣집 딸과의 소개팅을 나가면 한 시간 반에 50만원을 준다는 제안을 받았다"며 "일부 재력가 집안에서는 성혼 비로 1억원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고 고백했다.

SKY대학 출신 변호사 심모(31) 씨는 "직업이 확실하니 자산 증명하지 않아도 자산가 딱지를 주겠다"며 "우리 서비스에 가입한 여성들과 만나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과 8대 전문직 중 하나인 나모(32)씨는 "유명한 결정사 두 곳에 가서 최근 상담을 받았는데 몇백만원이라는 소문과 달리 부가세 포함 각각 22만원, 33만원의 가입비를 부르고, 미차감 만남까지 보장한다고 하더라"며 "내 키가 187cm인 것과 명문대 출신 전문직인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했다.

이는 남성 회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일부 업체는 아나운서·승무원 등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알려진 직업을 대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섭외해 금전적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미인대회 출신 C씨는 25살 무렵 미인대회와 제휴된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무료로 가입했다. 그는 "전문직 남성은 1~2명 정도 만났고 대부분 나이 차이가 좀 있는 사업가와 매칭됐다"며 "기간도 만남도 무제한으로 서비스받았다"고 전했다.

한 소개팅 업체 관계자는 "미인대회 출신 여성에게 1회당 5~10만 원을 지급하거나, 특정 여성들에게 소액의 택시비나 백화점 상품권(최대 300만원)을 협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회원들은 매칭 매니저들이 횟수 차감을 유도하고 재가입을 권유하려는 전략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한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한 D씨는 "횟수제의 경우 보통 3+3, 6+6 등 기본 횟수에 서비스 횟수를 붙이는데 기본횟수만 환불할 수 있고 서비스는 말 그대로 서비스라 환불 불가능하다고 말한다"며 "일단 혹할만한 스펙과 외모의 이성을 보여줘 횟수를 빠르게 차감시키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결혼정보업체, 정부도 나서서 공통된 표준 계약서 마련해야"

이 뿐만 아니라 일부 결혼정보업체가 과장된 스펙을 내세우거나 부적절한 행위를 한 회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제보가 나왔다.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한 피해자는 "업체가 라이선스가 없는 남성을 '경영·회계·보험 컨설팅 전문가' 등 모호한 표현으로 소개해 여성들이 오해하도록 유도했다"며 "이 남성은 매칭이 잘된다는 점을 악용해 '결혼'을 목적으로 가입한 여성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피해자는 "네 차례 만남 후 상대가 갑자기 잠적해 항의했지만, 업체는 오히려 '너무 괜찮으신 회원'이라며 두둔했다"며 "피해 사례가 접수되었음에도 '회원 간 개인적인 문제'라며 방관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결혼정보업체가 회원 신원을 철저히 검증하고, 과장된 스펙을 이용한 사기 및 부적절한 행위를 방지할 내부 감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결정사가 회원의 교육 수준, 재산, 직업 등의 정보가 사실과 다를 경우 사업자 귀책 사유로 일정 부분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며 "결정사가 이를 자발적으로 시행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나서서 공통된 표준 계약서를 마련해 소비자 피해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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