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규제 풀어주면 넷플릭스와 경쟁 가능할까

박서연, 금준경 기자 2025. 3. 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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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기획-미디어 리모델링] (08)
유튜브·넷플릭스·TV 경쟁시대, '비대칭규제' 해소 목소리 커져
방송사 민원 들어주는 차원 아닌 종합적 미디어정책 필요
공영방송엔 제한적 완화·'기만광고' 규제 강화 필요
중간광고 요구할 땐 '투자확대' 공언, 현실은 달랐다

[미디어오늘 박서연, 금준경 기자]

▲ 사진=GettyImagesbank

유명인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을 TV에서만 볼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유튜브에선 유재석, 신동엽 등 인기 예능인들이 진행하는 토크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흑백요리사'로 압도적인 화제성을 보인 데 이어 지난달부턴 성시경, 추성훈, 홍진경, 주우재 등 인지도 높은 유명인들이 전면에 나서는 일일 예능을 선보이고 있다. 방송사들이 드라마에 이어 예능 프로그램의 주도권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에선 이미 TV를 통해 TV를 보지 않는 시청자가 많다. 구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준 유튜브 시청기기 1위는 스마트폰이 아닌 TV였다. 닐슨에 따르면 미국에서 TV를 통한 TV방송 시청 비중은 지난해 9월 기준 48.7%에 그친 반면 유튜브,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서비스 시청 비중은 41%에 달했다.

▲ 일일 매체 이용시간. 젊은 세대의 OTT 시청시간이 길었다. 자료=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 디자인=안혜나 기자.

방송사 위기감 최고조, “생존 어려울 것”

“지상파에서 '흑백요리사'를 제작하면 어떻게 될까? 안성재 심사위원이 운영했던 식당 이름인 '모수'를 말 못하고, 편의점 미션을 하거나, 요리 재료를 고를 때 냉장고를 계속 노출하기도 힘들 거다.”

지상파 관계자 A씨의 말이다. 지상파 방송사가 '혁신'을 못한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제약이 큰 것도 사실이다. 복수의 방송사 관계자들은 수익과 직결된 광고 관련 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특정 상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어렵고, 간접광고를 할 순 있지만 '광고효과'를 내선 안 된다. 따라서 상표를 모호하게 가리거나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식으로 간접광고나 협찬을 내보낸다.

방송사 출신의 유튜브콘텐츠 제작사 관계자 B씨는 “광고인지 알면서도 규정 준수를 위해 억지스러운 설정이 들어가게 되는데 오히려 소비자 입장에선 부자연스럽고 가식적이라고 느끼게 된다”며 “법적인 규제 안에서 기존 방송사업자들이 생존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그들이 주춤하고 있어서 내가 먹고 사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지상파방송사 광고매출 추이. 자료=방송산업실태조사.디자인=안혜나 기자.
▲ OTT 이용률 추이. 자료=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 디자인=안혜나 기자.

콘텐츠가 폭력적·선정적이거나, 심지어 '막장'이어도 심의 대상이 된다. TV에선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인 오전 7시~9시·오후 1시~10시(평일 기준)에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방송을 해선 안 된다. A씨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다. 사실상 하루 종일”이라고 지적했다. 오전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주류광고를 할 수도 없다. 이들 규제는 필요성이 있지만 TV가 독점적인 플랫폼일 때 만들었기에 청소년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디어를 소비하는 현재 상황과 동떨어진 면이 있다. 모유수유를 촉진하기 위해 만든 TV 조제분유 광고 금지 규제도 아직 남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가 OTT와 TV 버전을 별도로 제작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원경'은 티빙 버전에서만 정사 장면을 담았다. 2020년 방영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환자 상처가 노골적으로 나오는 등 혐오스러운 장면을 TV에선 흐림 처리한 반면 넷플릭스에선 여과 없이 내보냈다.

지상파 관계자 C씨는 “한국의 방송심의가 강압적인 면이 있다”며 “(방송사를)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콘텐츠를 잘 만들기 위한 심의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상파 관계자 D씨는 “콘텐츠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성장마저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영화 '고질라'에 나온 동원참치, '기생충'에 나온 짜파구리 등을 언급하며 “이게 다 히트상품이 되고 문화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심의규제는 PD들이 방송사를 떠나는 원인”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지상파 등 방송사들은 오락프로그램 60% 미만 편성 등 편성규제, 법에 규정한 형식 외 광고를 금지하는 광고형식 규제 등을 받고 있다. 여기에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은 직접 광고영업이 불가능하고 지상파 기준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기업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할 수도 없다. 주요 방송사들은 매년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납부해야 한다.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채널은 방통위의 재허가·재승인 심사를 받아야 한다. 반면 OTT는 모든 것이 자유로운 상황이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규제완화 요구하는 지상파, 방통위 적극 호응

방송사들은 전부터 규제완화를 요구했고 방통위 역시 호응하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방통위가 지상파 광고를 총량만 규제하는 광고총량제를 도입했고,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지상파의 숙원이었던 중간광고를 허용했다.

지상파는 더욱 전폭적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상파 방송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방송협회는 2022년 대선 당시 광고품목 규제 완화, '타이틀스폰서' 도입 등을 요구했다. SBS는 규제완화 요구안을 담은 '민영은 민영답게' 문건을 각 캠프에 전달했다. '타이틀스폰서'는 예능 등 프로그램 제목에 기업 등 협찬주를 명시하는 것으로 '삼성전자와 함께 하는 놀면뭐하니'와 같은 프로그램 제목이 가능해진다. 과거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와 같은 규제완화를 여러차례 추진했지만 상업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해 철회했다.

방통위도 규제완화 기조에 호응하고 있다. 2022년 문재인 정부 방통위는 '방송광고 규제 네거티브 전환'을 본격 추진했다. '네거티브 규제'는 법이 금지하지 않은 형식의 광고는 전면 허용하는 방식이다.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은 “네거티브 규제 전환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시대에 뒤떨어지는 불필요하고 과도한 규제는 해소돼야 한다”고 했다.

▲ 2021년 지상파3사의 '중간광고 도입' 관련 보도들. 우려를 전한 보도는 찾기 힘들다.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선 소유·겸영 규제완화까지 함께 추진되고 있다. 김태규 방통위 부위원장(당시 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해 10월7일 국정감사에서 “방송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소유·겸영규제, 광고·편성 규제와 같은 방송분야의 낡은 규제를 대폭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OTT에는 규제 논의가 잇따르고 있다. 방송에 준하는 방송심의를 강제하는 방안 등이 주로 거론되고 있고, 여야 의원들은 앞다퉈 방송사뿐 아니라 OTT사업자들이 방송통신발전기금, 영화진흥기금 등 납부를 강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규제완화 필요하지만 '원칙'과 '순서' 세워야

매체 환경이 급변하면서 일정 부분 규제 완화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방송에 침투하는 간접광고와 협찬의 경우 보도·시사 프로그램 금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외려 유튜브보다 방송협찬 규제가 더욱 부실한 면이 있는 상황에서 프로그램 내에 광고를 할 경우 '대가성'을 명확하게 표기하도록 할 필요도 있다.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는 차별적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애니메이션 등 편성 장르를 제한하는 등의 규제는 현실에 맞지 않다. 이런 측면에선 자율성을 줘야 한다. 사후심의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지상파는 한국 방송의 표준이고, 품질을 만드는 기준점인데, 규제 자체를 없애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공영방송은 절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 교수는 재원 측면의 경우 “우선적으로 방송통신발전기금부터 손 볼 필요가 있다. 공적 의무를 수행하라고 국가보조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거꾸로 돈을 걷고 있다”고도 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권한 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D씨는 “방송 윤리의 문제가 사법 절차처럼 바뀌었다. 제작자들을 불러 몽둥이질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일본 등 해외에선 자율규제인 점을 지적하며 “심의를 제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송의 질 향상을 위해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공정성'은 논쟁의 영역이지 처벌 대상이 아니라며 “정부, 여당, 야당이 위원을 임명하는 방심위가 공정성 심의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규제완화가 대대적인 콘텐츠 투자와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는 방송사들이 입증해야 한다. 방송사들은 대기업의 투자가 원활해질 수 있도록 소유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기업이 소유한 방송사의 폐단이 커져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미디어기업의 계열분리 법제화 등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2016년 한국PD연합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지상파 관계자들은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을 요구하며 “'열린음악회' '가요무대' '스케치북' 같은 돈 안되는 공개방송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투자를 늘릴 수 있다”, “단막극 등 좋은 작품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8년 한국방송협회는 “지상파방송이 중간광고 수익 전액을 제작비에 투입해 국가경쟁력을 갖춘 프로그램으로 한류 재창출을 위한 목적에서 중간광고를 실시하는 데 얼마나 동의하십니까?”라는 문항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중간광고 도입 이후 투자가 늘지 않았다. 예상보다 매체 환경이 더욱 급변했고, 지상파 중간광고가 늦게 도입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미디어 전반을 다시 정립하고, 그 일환으로 공적미디어 지원과 방송규제 개선 등을 검토해야 하지만 방송사들의 민원이 들어오면 검토하고 일부 처리를 해주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방송 정책에 대한 정부 차원의 로드맵과 철학의 부재가 문제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인 미디어 정책을 주도하지 않았고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는 TV수신료 분리징수를 강행하는 등 공영방송의 기반을 흔들고 상업화를 부추기는 상황이다.

정부의 콘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부처의 각개격파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OTT에 영화진흥기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반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OTT에 방송통신발전기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문체부, 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각자 OTT 조직을 만들어 대응하자 OTT 업계에선 “시어머니가 3명”이라는 하소연이 나오기도 했다.

쟁점 현안에 밀려 관련 법제 논의가 지지부진한 점도 문제다. 2019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OTT를 포괄하는 통합방송법을 발의하고 공청회를 여는 등 논의를 주도했지만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때는 주요 과제로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를 추진했으나 본격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현 방통위는 미디어통합법이라는 이름으로 법제화를 준비하고 있지만 구체적 안이 논의되진 못하고 있다. 논의 과정에서 당사자인 시청자, 시민사회가 참여하지 못하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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