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도 제압하는 용맹한 검독수리…구애할 땐 ‘솔방울 묘기’
꽁지깃 흰 ‘청년’ 검독수리, 김제평야에 터 잡아
독수리·초원수리 등 맹금류 제치고 영역 독차지
지난 2월10일 전북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로 향했다. 몇 년 전부터 진봉산에 터를 잡고 월동하는 검독수리를 만나기 위해서다. 이른 아침 진봉산 인근에 도착하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전날 내린 눈도 녹지 않았다. 겨울 추위에도 싱상하게 푸른 자태를 잃지 않은 소나무 위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한적한 진봉산 자락을 돌면서 검독수리를 찾기 시작했다. 은밀히 숨어 주변을 살피는 검독수리는 찾기가 몹시 힘들다. 그때 역광으로 검은 물체가 보인다. 검독수리다.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맘이 설렌다. 조심스럽게 촬영을 하며 살폈다. 곧 검독수리가 자리를 박차고 날아 적당한 가지에 다시 자리를 잡는다.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설탕 가루처럼 하얗게 부서진다.
김제시는 찻길사고를 당한 고라니의 사체를 소각하지 않고 검독수리를 위해 남겨둔다.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 취약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고라니는 중국 동부·한반도에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전 세계 개체 수의 90%가 우리나라에 서식한다. 한반도에만 약 45~75만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러다 보니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일도 빈번하다. 김제시 주민들은 이렇게 찻길사고를 당한 고라니를 수거해 진봉산에 인접한 평야에 둬서 맹금류가 먹이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검독수리가 나무꼭대기에서 몇 번을 날고 앉기를 반복한다. 주변의 풍속과 방해 요인을 여러 번 관찰하는 신중함을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고라니 사체를 향해 쏜살같이 내려와 먹이를 먹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불꽃이 튈 것 같은 강렬한 눈빛과 말뚝처럼 단단한 다리, 발에 박힌 예리한 발톱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당당한 위용이 보인다. 이 개체는 그동안 관찰했던 검독수리보다 다소 크게 보인다. 고라니 사체를 발고 올라서는 모습만 봐도 몸집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검독수리가 점찍은 사체 주변으로는 초원수리, 흰꼬리수리, 독수리도 접근하지 못한다. 검독수리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독수리도 서슴없이 공격하기 때문이다. 검독수리가 공중에서 강력한 발톱으로 독수리를 쫓아내더니 이내 흰꼬리수리들을 몰아낸다.
한 어린 초원수리는 검독수리와 영역 다툼을 벌이다 한쪽 눈을 잃었다고 한다. 하늘에서는 우위를 보이던 초원수리가 땅에서는 검독수리와의 싸움에 밀려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다. 주위에 있던 다른 맹금류들도 그날의 ‘전투’를 보았을 것이다. 다친 초원수리는 야생동물보호소로 이송돼 한달 간의 치료를 받고 완쾌되어 얼마 전 월동하던 그 자리에 방사됐다.
한쪽 눈만으로 겨울나기를 하는 초원수리가 애처롭다. 냉혹한 생존법칙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세계에서 한쪽 눈을 잃은 것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사냥에도 큰 제한이 생길 것이고 생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번식지로 돌아가는 여정과 다시 진봉산으로 월동하러 올 앞날이 벌써 걱정이다. 어린 초원수리가 내년에도 진봉산을 찾아올 수 있을까. 부디 무사하길 소망해본다.
김제평야를 호령하는 이 검독수리의 나이는 5살 정도로 추정된다. 생후 4~5살이 안 된 검독수리는 자신의 영역을 확립하기 전까지 방랑자 생활을 한다. 자세히 살피니 이 검독수리에게는 아직 유조의 모습이 남아있다. 어린 검독수리는 날개 아랫면에 흰 반점이 있고, 꽁지깃 중간도 희다. 여러 해 관찰한 결과, 검독수리는 5살 정도면 번식이 가능하지만 10살은 되어야 완벽한 성조의 깃털을 갖추게 된다. 이 검독수리는 김제평야를 월동지로 정하고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검독수리가 나뭇가지, 솔방울을 집어 들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런 뒤 가파른 활공으로 날면서 공중에서 다시 떨어뜨린 솔방울을 잡는 행동을 세 번 이상 반복한다. 구애 행동이다. 암컷과 수컷이 같은 방식으로 구애한다.
검독수리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영역 내 나무나 절벽에 여러 개의 보금자리를 짓고 몇 년 동안 번갈아 사용한다. 번식 활동은 봄에 이뤄진다. ‘일부일처제’이며 몇 년 또는 평생을 함께한다. 암컷은 최대 4개의 알을 낳고, 6주 동안 알을 품는다. 새끼는 일반적으로 3개월이면 둥지를 떠나는데, 어린 검독수리는 보통 가을에 완전히 독립한다.
검독수리는 전 세계에 아시아 검독수리, 히말라야 검독수리, 이베리아 검독수리, 유럽 검독수리, 북아메리카 검독수리, 일본 검독수리 등 6종이 서식하며, 지역에 따라 신체 크기와 깃털 색에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아종 간 차이는 특히 신체 크기에서 드러난다.
한국에 서식하는 아종은 일본검독수리(Aquila chrysaetos japonica)로 몸길이는 수컷 81㎝, 암컷 89㎝ 정도다. 날개 길이는 190㎝에 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43호로 지정돼 있으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강하구, 연천, 철원, 천수만, 김제평야 정도를 제외하면 관찰이 매우 어려운 겨울철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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