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USB, 조선일보는 왜 들고만 있었을까

〈조선일보〉 A 기자는 지난해 10월 명태균씨로부터 USB를 입수했다. 명태균씨가 윤석열·김건희와 각각 통화한 녹음파일이 들어 있는 USB다. 이것은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을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자료로, 보도했다면 큰 특종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해당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7일 윤석열이 기자회견에서 “누구를 공천 주라고 얘기해본 적이 없다” “공천관리위원장이 정진석 비서실장인 줄 알았다”라고 거짓 해명을 했을 때도, 윤석열의 발언을 인용 보도했을 뿐 이미 갖고 있던 자료로 반박하지 않았다. 11월8일자 사설에서는 윤석열의 답변이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과 괴리가 적잖았다”라면서도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날 각종 잘못을 인정하고 수차례 사과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결국 해가 바뀐 이후인 지난 2월24일과 2월25일 〈시사IN〉 주진우 편집위원이 이를 입수해 공개했다.
〈조선일보〉는 왜 명태균씨 USB를 입수하고도 넉 달이 지나도록 보도하지 않았을까? 〈조선일보〉는 2월26일 낸 입장문에서 USB를 제공한 명태균씨가 자신의 동의 없이 보도하면 안 된다고 했다며 이렇게 썼다. “본지 검토 결과 대화 당사자 동의 없이 녹음 파일을 공개할 경우 취재원 존중과 보호를 규정한 언론윤리헌장과, 통신 및 대화 비밀 보호를 규정한 통신비밀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해 당사자 동의를 얻을 때까지 보도를 유보했다.” 법적인 문제와 언론 윤리의 문제가 있기에 당사자의 동의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는 것이다.
법적 문제부터 보자. 판사 출신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선일보〉의 해명이 최소한 법적으로는 틀렸다고 했다. “통신비밀보호법으로 처벌받는 것은 대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몰래 또는 기술적인 감청으로 녹음하는 경우다. 명태균씨는 대화의 한 당사자로서 (윤석열·김건희와 나눈 통화를) 녹음했다. 그런 식의 비밀 녹음은 통신비밀보호법상 금지되지 않으며, 따라서 제3자가 명태균씨의 동의 없이 그 내용을 공개해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아니다.”

물론 음성권 침해로 인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이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이라는 사안의 성격상 공익적 목적으로 위법성이 조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게 차성안 교수의 설명이다. 만약 음성권 침해가 정 걸린다면 지면에 글로 풀어서 보도할 수도 있다. 게다가 명태균씨 USB에는 통화 녹음 외에 윤석열·김건희와 명태균씨가 나눈 카카오톡·텔레그램 메시지도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일보〉는 이 역시 보도하지 않았다. 결국 법적 문제 때문에 보도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내가 지들을 만들어줬는데, 막아줘야지”
언론 윤리 측면에선 어떨까. 한국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제정한 ‘언론윤리헌장’ 제3조는 ‘인권을 존중하고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쓴다. “윤리적 언론은 취재 대상을 존중한다”라고도 적혀 있다. 그러나 이는 “사건 피해자나 일반 시민, 혹은 공적 인물을 보도하더라도 악마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보도하지 말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면서 필요한 부분만 보도하라는 취지이지, 아예 보도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라고 언론학자인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말했다.
“해당 녹음 파일에는 명태균씨나 윤석열·김건희의 사생활이 아니라 중요한 공적 관심사가 담겨 있던 것으로 보이고, 명태균씨 자신이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로서 윤석열·김건희와 직접 통화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명씨의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거나 명씨의 인권이 침해될까 봐 보도를 자제해야 하는 상황과는 다르다. 만약 명씨 동의 없이 보도했다고 해도 언론 윤리 위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조선일보〉는 언론윤리헌장의 ‘취재원 보호’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취재원 보호가 언급된 대목은 “취재원 보호 등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보의 출처를 명확히 밝힌다”라는 내용이다. 이 역시 ‘취재원 동의 없이 보도해선 안 된다’는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이쯤에서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명태균씨는 왜 〈조선일보〉 A 기자에게 USB를 줬을까? 〈시사IN〉 취재를 종합하면, 이는 통상적인 제보가 아니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명태균씨는 함 원장에게 〈조선일보〉 A 기자를 포함한 몇몇 언론인이 대통령 부부와 친한 사이인지를 물었다. 함 원장은 〈조선일보〉 A 기자와 두 사람(윤·김 부부)이 친하다고 답해주었다고 한다.
왜 대통령 부부와 친한 기자가 필요했을까? 자신에 관한 의혹이 지난해 9월5일 〈뉴스토마토〉에 처음 보도된 이후 11월15일 구속되기 전까지, 명씨는 윤석열·김건희에게 구명을 요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4일 창원교도소에서 명태균씨를 접견해 〈조선일보〉 A 기자에게 USB를 넘길 당시의 상황을 물었는데, 명태균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내가 지들(윤석열·김건희)을 만들어줬는데, 그러면 나를 (구속되지 않게) 막아줘야지.” 자신이 통화 녹음 파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용산에 알리는 방법 등을 동원해 어떻게든 구속을 막아보려 했다는 취지다.
〈조선일보〉 A 기자도 2월25일 주진우 편집위원과의 통화에서 명씨의 자료 제공이 단순 제보가 아니었음을 인정했다. “명 대표는 저한테 그 자료를 준 게 그분의 의도는 명확했어요. 용산(대통령실)에 전달해달라는 거였어요.” 다만 A 기자는 이 부탁을 거절했다고 했다. “근데 저는 그거는 어렵다고 분명하게 얘기를 했죠. 죄송하다고도 했어요.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조선일보〉도 입장문에서 “본지 기자는 USB는 물론 어떤 형태로든 명씨 관련 자료를 대통령실에 전달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명태균씨 아내 이승은씨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의문을 표했다. “최근에 남편(명태균씨) 접견을 가서 ‘〈조선일보〉 기자가 USB를 용산에 전달 안 했대’라고 말해주니까 남편이 ‘왜?’ 하면서 놀라는 것 같았다. 내 느낌에는 〈조선일보〉 기자가 용산에 전달을 안 할 거라고 했는데도 신랑이 그 자료를 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전달을 안 한다는데 왜 주겠나?”라고 말했다.
A 기자와 〈조선일보〉 해명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대통령실은 모종의 경로로 〈조선일보〉가 명태균씨 USB를 입수한 사실을 알게 된 듯하다. 2월25일 주진우 편집위원과의 통화에서 A 기자는 “제가 USB를 용산에 전달하거나 그러지 않았지만 제가 USB를 갖고 있는 걸 용산도 알고 있었고”라면서 “용산에는 저희 쪽에서 얘기한 게 아니고 명 대표 본인이 용산하고 소통하는 다른 분 통해서 얘기했어요”라고 주장했다.

A 기자는 이 자료 건으로 용산 참모에게 전화까지 왔다고 밝혔다. “용산의 여사 관저의 참모들 있잖아요. (···) 참모들 중에 하나가 연락 와서 물어보기는 했는데, 제가 자료나 이런 거 얘기하는 거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서 저는 그런 거는 일절 얘기를 안 했고 제대로 잘 좀 하라고 그 얘기만 하고 말았죠.” 이 통화에서 A 기자는 “USB를 저만 열어봤지 다른 사람은 열어보지 않았어요. (···) 제 보고를 받은 분이 많지도 않거니와, 제 보고를 받은 분도 구두로 들었을 뿐이에요”라고도 했다.
대통령실이 〈조선일보〉의 USB 입수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A 기자의 보고를 받은 누군가가 알려줬을 수도, 명태균씨가 다른 인사를 통해 알렸을 수도 있다. 함성득 원장은 〈조선일보〉가 명태균씨 USB를 입수한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언급하고 싶지 않다. 또 이런 문제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라면서도 “용산이 아는 것에 제가 인발브(관련)된 게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공개된 녹취 하나가 또 파장을 일으켰다. 주진우 편집위원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비상계엄 이후인 지난해 12월 말경 김건희 여사가 누군가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이야말로 우리나라를 망치는 애들이에요. 지네 말 듣게끔 하고 뒤로 다 기업들하고 거래하고. 얼마나 못된 놈들인지 알아? 〈중앙일보〉는 이제 삼성하곤 거래 안 하지. 삼성이 〈중앙일보〉를 싫어하니까. 그거 하나뿐이지. 하지만 난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어.”
〈조선일보〉 “더 말할 내용이 없다”
명태균씨 법률대리인 남상권 변호사는 “여기서 ‘지네 말 듣게끔 하고’라는 말이 중요하다. (〈조선일보〉가 자신들이 확보한 USB를 고리로 대통령실과) 뭔가 거래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박범계 의원도 명태균씨가 김건희 여사의 〈조선일보〉 폐간 발언을 두고 ‘나 때문이 아니겠냐’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시사IN〉은 〈조선일보〉 A 기자와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상세한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겼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준우 한국기자협회 조선일보지회장은 ‘지회 차원에서 이 건을 조사하거나 입장을 낼 것인지’ 묻는 질문에 “저희가 조사를 할 게 있나”라고 되물으며 “현재까지 저희 입장은 없다. 경영기획실에 문의해달라”고 말했다. USB를 언제 입수했고 왜 보도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지회 차원에서 더 알아본 바도 없다고 했다.
‘A 기자가 언제, 뭐라고 데스크에게 보고했는지’ ‘용산 참모 누가, 언제 A 기자에게 전화한 것인지’ ‘USB를 입수한 사실을 〈조선일보〉의 어느 누구도 용산에 알려준 사실이 없는지’ 등에 대한 〈조선일보〉의 공식적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담당자는 “이미 낸 입장문 외에 더 말할 내용이 없다”라고만 말했다. 김건희 여사의 〈조선일보〉 폐간 발언에 대해서도 “입장도 없고 왜 그런 발언을 했는지 아는 바도 없다”라고 했다.
심석태 교수는 “〈조선일보〉가 USB를 받은 행위의 성격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 규명이 필요하다. 만약 공적 관심사가 기록된 자료를 권력자에게 전달해달라는 부탁으로서 자료를 받았다면 정상적 취재 행위라 보기 어렵고 그 자체로 언론인으로서의 책무를 어긴 것이다”라고 말했다. “설령 목적이 모호하거나 속인 상태에서 받았다 하더라도 불법적으로 훔친 게 아닌 이상, 뉴스 가치를 판단해서 보도하면 된다. 언론으로서 정당한 공적 관심사를 왜 보도하지 않았는지, 용산에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했다면 USB를 왜 받았고 그걸로 뭘 한 것인지 내부적으로 철저히 조사해 발표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윤리헌장 제2조, ‘투명하게 보도하고 책임 있게 설명한다’를 지킬 때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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