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의 여행. 발리 필수품이라니, 살 수밖에

김나영 2025. 3. 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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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이국적인 화려함에만 이끌린 것은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발리행 출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문자 P성향답지 않게 여행지 정보를 슬쩍 검색해 봤다. 발리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여행을 자주 떠나는 이들과 나누던 대화 속에서 유난히 인연이 닿지 않는 여행지를 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가지 않게 되던 곳들. 나에겐 발리가 그랬다(심지어 숙소는 내가 부담할 테니 몸만 오라는 지인의 제안이 있던 때에도 결국 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배경지식이라도 미리 집어넣어 보자 하는 셈으로 전반적인 발리 문화와 가볼 만한 곳, 시내에서 살 만한 물건 등에 대한 정보들을 무작위로 접했다. 그러다 문득 내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티크 우드 소품도, 라탄도 아닌 바로 인도네시아 전통 문양이 담긴 '바틱(batik) 패브릭'으로 만든 '사롱(Sarong)'이었다. 사롱은 패턴이 있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패브릭을 통째로 활용해서 주름을 잡아 스커트 형태로 입거나, 원피스로도 연출할 수 있는 일종의 민속의상이다.

발리를 여행한다면 사롱은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발리 필수 관광지인 사원에 방문한다면 누구나 반드시 갖춰 입어야 하는 복장이다. 스커트의 형태이지만 이와 비슷한 복장 문화가 있는 다른 문화권 어디나 그러하듯 이곳 역시 남녀 모두 사롱을 입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원 입장 전에는 사롱 대여가 필수다. 제법 괜찮은 리조트에 머물고 있다면, 리조트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사롱을 사원 방문 전 대여해 주기도 한다(직원분들이 아주 프로페셔널하고 예쁘게 주름잡아 연출해 주시기 때문에 미리 연출법을 배워 보는 것도 추천한다). 하지만 나만의 사롱이 있다면? 대여를 위한 대기 과정과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사롱을 비키니 위에 입는 비치웨어로 활용하거나 모래 위에 깔아 두고 비치타월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 열대의 분위기와 사롱의 화려한 패턴은 한 몸처럼 어우러진다.

내가 사롱에 매료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도네시아 전통 방식으로 직물을 염색하는 방식인 바틱 기법 때문이다. 식물이나 동물, 기하학무늬 등 수천 개의 문양과 곱고도 화려한 색감이 담긴 바틱은 색을 바꿔 염색할 때마다 매번 방염하고 염색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뜨겁게 녹인 밀랍을 통에 담아 펜으로 그림을 그리듯 밑그림을 따라 방염 및 염색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그렇게 밀랍으로 그려진 전체 문양은 옷감을 삶아 밀랍이 제거된 후에 확인할 수 있다. 전통 방식을 따르면 바틱 한 점이 완성되기까지 약 5~7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이렇게 완성된 바틱은 로컬들의 일상 어디에나 활용됨은 물론, 결혼식이나 축제, 종교의식과 같은 중요한 순간에도 함께하는 필수품이자 공예품이다. 2009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을 만큼 그 가치가 높은 바틱 기법, 그리고 그 값진 수고가 고스란히 담긴 사롱. 이걸 사지 않고 과연 배길 수 있을까?

출장 일정 중 짧게나마 우붓 시내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고, 망설임 없이 미리 봐 두었던 '루시 바틱(Lucy's Batik)'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루시 바틱은 바틱 아이템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도네시아 전역의 수공예품과 예술품을 소개하는 가게다. 로컬 장인과 협업해 완성한 바틱 패턴을 활용해 패션부터 액세서리, 홈 패브릭 등 고유한 전통 예술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아이템을 만날 수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공간을 가득 채운 패턴의 향연에 아득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다 갖고 싶다. 가지고야 말겠다. 핑핑 눈 돌아가던 와중에 검은색 천에 금색 바틱 패턴이 돋보이는 사롱 하나를 건드려보자, 주인장이 미소를 머금고 말려 있던 사롱을 펼쳐 보인다.

"100% 핸드메이드 바틱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더 나아가 "실례해도 될까요?" 물은 후 나에게 사롱을 스커트처럼 연출해 줬다. 거울 앞에 섰더니 마침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던 참이라 하나의 셋업처럼 어우러졌다. "예쁘네요. 잘 어울려요." 이 곱고 아름다운 사롱이 한화로 약 1만5,000원 정도다. 수공예품인데!

물론 실크 같은 고급 소재가 아니고, 색깔을 바꿔가며 염색을 반복하는 전통 공정과는 조금 다른 형태라곤 하지만 휴양지 휘뚜루마뚜루 아이템으론 이것만한 게 없을 것만 같다. 원래 사려던 정통 바틱 사롱이 아닌 것을 집어 들고선 이렇게 또 합리화한다. 결국엔 조금 더 화사한 색감에 조금 다른 패턴이 담긴 같은 제품까지 하나 더 구매했다. 도시 여행을 선호하는 내가 언제 다시 곱디고운 사롱을 꺼내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날이 기다려진다. 나도 이제 사롱 있어!

*김나영 작가의 맥시멀리스트 여행 여행이 일의 한 부분이던 시절, 다채로운 도시들을 탐험하며 부지런히 작은 물건들을 사 모았다. 같은 종류만 고집하며 모았으면 나름의 컬렉션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여전히 홀딱 반한 물건들을 수집하는, 사물 한정 금사빠의 사는(Buy) 이야기.

글·사진 김나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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