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 되찾고, 순서 제대로…병풍 위에 펼쳐진 200년 전 큰 잔치

김예나 2025. 3. 10.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 박물관 소장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보존 처리…31년 만에 공개
조선 여성 혼례복 '활옷'도 재탄생…추수 기록·과거 답안지 등 눈길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 일부분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826년의 어느 날, 평안 감영이 있던 평양 일대는 시끌벅적했다. 큰 길가에는 사람들이 모였고 강에서는 뱃놀이가 펼쳐졌다.

그 중심에는 관직 생활을 앞둔 젊은 선비들이 있었다.

평안도 도과(道科·조선시대 각 도의 감사에게 명해 실시한 특수한 과거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문·무과 장원 두 사람을 축하하는 잔치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199년 전에 열린 잔치를 생생하게 담은 조선시대 그림이 세월의 흔적을 딛고 제 모습을 찾았다.

보존 처리를 하면서 색을 맞추는 모습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삼성문화재단과 함께 미국 피보디에식스(Peabody Essex) 박물관이 소장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平安監司道科及第者歡迎圖) 8폭 병풍의 보존 처리 작업을 마쳤다고 10일 밝혔다.

보존 처리는 리움미술관 보존연구실에서 약 1년 4개월간 진행됐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측은 "30여년간 쌓아온 보존 기술을 활용해 병풍을 원형으로 복원했다"며 "국내 사립 미술관이 나라 밖 문화유산 보존을 지원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오랜 노력 끝에 제 모습을 되찾은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은 일종의 기록화다.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의 보존 처리 전(위)과 후(아래)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도과 급제자 일행이 배를 타러 이동하는 순간부터 평양성의 동쪽 부벽루에서 벌인 연향(잔치), 환영 행사의 '정점'이었던 야간 뱃놀이 등을 화면에 담았다.

8개 화면을 모두 펼친 폭은 5m가 넘으며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물관 측은 1927년 은행가이자 자선가였던 조지 피보디와 W.C. 엔디콧 기금으로 산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은 1994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유길준과 개화의 꿈'에서 한 차례 선보인 적 있으나, 지금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시 병풍은 분리된 낱장 상태였고, 제작 당시 모습이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순서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손상되거나 훼손된 부분도 상당했다고 한다.

비단을 부착하는 모습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리움미술관 측은 그림을 가능한 온전한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집중했다.

미술관 소속 보존 처리 전문가들은 오래된 안료가 떨어지지 않도록 처리하고, 그림 뒤에 덧대진 오래되고 산화된 배접지를 제거했다. 여러 연구·조사를 토대로 병풍 틀을 제작해 복원했다.

이 과정에서 유물 명칭은 '평안감사향연도'(平安監司饗宴圖)에서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로 분명히 했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관계자는 "인물의 복식, 시간 흐름에 따른 색감 변화 등을 토대로 잃어버렸던 그림의 순서를 찾아내고 원래의 병풍 형태로 복원했다"고 설명했다.

전시실 모습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재단은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이 소장한 활옷도 국내 전문가의 손을 거쳐 되살아났다고 밝혔다.

활옷은 조선시대 여성이 입던 예복 중 하나로, 붉은 비단 위에 봉황, 꽃 등 다양한 문양을 수놓고 금박으로 장식한 옷이다. 19세기 말부터는 왕실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혼례 때 입었다.

현재 국내에 30여 점, 국외에 20여 점 등 50여 점이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피보디에식스박물관의 활옷은 18∼19세기 유물로 추정된다.

박물관 측은 활옷을 입수한 경위와 관련해 "1927년 야마나카(山中) 상회가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야마나카 상회는 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한국 문화유산을 내다 판 업체로 알려져 있다.

소매에서 확인한 추수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보존 처리 작업을 맡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은 소매 부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김포 지역의 노비로 추정되는 '갑복'(甲福)의 이름이 적힌 추수기(秋收記) 일부를 찾아냈다.

추수기는 경작지의 추수 현황을 기록한 문서를 뜻한다.

재단 관계자는 "추수기에는 '무인 9월'(戊寅九月)이라 적힌 부분이 있는데 무인년은 1818년, 1878년, 1938년 중 하나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확한 연대를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 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인 낙복지(落幅紙)를 비롯해 여러 겹의 한지를 안감에 덧댄 부분과 일부 가려져 있었던 자수를 찾아낸 점도 의미가 크다.

과거시험에 떨어진 사람의 답안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옛 모습을 되찾은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병풍과 활옷은 이달 11일부터 4월 6일까지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상설 전시장인 M1 2층에서 공개한다.

이후 두 유물은 5월에 재개관하는 피보디에식스박물관 한국실에서 주요 문화유산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김정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이 보다 온전히 보존되고 현지에서 널리 소개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문형 삼성문화재단 대표이사 역시 "해외에 있는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을 최상의 상태로 복원하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활옷 보존 처리 전(왼쪽)과 후(오른쪽)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yes@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