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만 지을 수 있다면 ‘거시기’ 쯤이야...잔망루피 모델인 이 동물의 비밀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5. 3. 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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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42] 인간의 탁월함은 ‘짓는’ 능력에 있습니다. 아늑한 공간을 만듦으로써 삶을 쾌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영화를 보고. 문명의 대부분은 이처럼 실내에서 이뤄집니다.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대표적인 능력이기도 합니다. ‘공학적 인간’은 우리의 본질을 수식하는 대표적 표현입니다.

‘공학’은 인간이 독점하는 능력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며 든 생각입니다. 인간 못지않은 엔지니어 기술로 18억원의 가치가 있는 구조물을 지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물속의 귀요미 비버의 이야기입니다.

요즘 대한민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뜨거운 동물 중 하나는 비버입니다. ‘잔망루피’가 바로 비버에서 착안한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뽀롱뽀롱 뽀로로 등장인물 중 하나로 시작해 주인공만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화려한 핑크빛 모습과는 달리 시크한 표정이 묘한 매력을 풍기기 때문입니다.

“기자 아저씨, 제목이 왜 이모양이에요?” 잔망루피 짤.
“냅둬~ 먹고 살기 힘든가보지~” 유명한 아메리칸 비버. [사진출처=Steve from Washington, DC]
체코 정부에 18억 벌어다 준 비버
비버는 대중문화에서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도 무궁무진한 능력을 갖춘 동물입니다. 물의 수량을 조절하는 댐을 건설하는 능력이 있어서입니다. 최근 체코에서는 비버가 뉴스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수도 프라하 인근 댐 건설이 허가 문제로 7년 동안 지연된 사이, 비버 8마리가 나타나 댐을 지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체코 당국은 비버들 덕분에 약 18억원의 예산을 절약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비버는 댐을 짓는 습성이 있습니다. 물의 흐름을 조절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주로 습지에 사는데, 물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비버의 건설 현장을 직접 가봅니다.

“이를 닦자, 이를 닦자.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나무를 갉아 무너뜨리는 비버. [사진출처=D. Gordon E. Robertson]
귀여운 비버 가족이 있습니다. 수컷으로 보이는 비버가 작은 규모의 강을 발견하고 자리를 잠시 멈춰 섭니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더니 쓱 강 주변에 심어진 나무로 다가갑니다. 커다란 앞니를 꺼내더니 ‘사각사각’ 15cm 굵기 나무를 갉기 시작합니다. 귀여운 앞니가 품은 무서운 힘입니다.

나무가 이내 쓰러져 버립니다. 흐뭇한 표정을 지은 비버는 두툼한 목 사이에 나무를 끼고 개울가로 이동합니다. ‘댐’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몇 차례 왕복을 거듭한 끝에, 물의 흐름이 느려지기 시작합니다. 댐의 완성으로 어느새 아늑한 습지가 만들어집니다. 비버들은 습지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 위에 오두막 모양의 거처를 짓기도 합니다. 비버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미국 라센화산 국립공원 인근 하천에 지어진 비버댐.
아비 비버는 흐뭇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살 공간을 마련해서입니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우리 부모님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비버의 오두막은 가족의 안전한 생활 공간이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만큼은 천적의 걱정 없이 편하게 쉴 수 있어서입니다. 천적인 늑대나 곰도 발을 디딜 수 없습니다.

늪에 빠져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개척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비버는 우리 인간만큼이나 ‘공학적’ 존재입니다. 그들을 생태계의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누가 여기 댐 지어놨어~” 1m 높이 비버 댐에 가로막힌 카누. [사진출처=Burtonpe]
생태계의 보고 만드는 비버
비버가 만든 댐은 우리 인간이 만든 인공댐과 달리 ‘자연친화적’입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물을 저장하고, 가물 때는 물을 골고루 공급합니다. 습지가 어찌나 아늑한지 여러 조류가 와서 먹이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백조도 기러기도 이곳의 단골입니다. 비버 습지가 오염 물질을 제거하면서입니다. 가축의 변에서 나오는 대장균도 비버 습지에서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엄마, 비버 아저씨가 키즈 카페 개업했대요.” 트럼펫 백조는 비버의 습지를 찾는 대표적 조류 중 하나다.
미국에서 건조하기로 악명 높은 애리조나. 이곳 산 페드로 강에도 비버들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강 주변 곳곳에 웅덩이를 만들면서였습니다. 작은 벌레들이 늘어나고, 이를 먹기 위한 새들이 늘어납니다. 멸종 위기에 처한 버드나무 딱새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영양소가 풍부한 곳은 ‘엄마’들이 가장 먼저 알아보기 마련입니다. 비버의 습지는 연어와 송어의 산란장이 됩니다. 비버의 서식지에서 연어가 80배나 더 많이 알을 낳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정도입니다. 비버처럼 물과 육지에서 사는 양서류 역시 2.7배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버 뉴타운’이 살기 좋은 동네로 손꼽히는 것이지요.

“여기 산후조리원 좋아보이는데.” 비버 오두막에서 점프하는 붉은 연어. [사진출처=Kristina Ramstad]
물에서 살고자 그것도 숨겼다
설치류인 비버가 사촌들과 달리 물속 생활을 결정한 건 약 3300만년 전이었습니다. 물에서 생활하는 원시 비버가 발견된 시기입니다. 육지에서만 사는 것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수중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흔적은 몸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비버의 ‘음경’이 대표적입니다. 수컷 비버는 몸속에 성기를 숨기고 다니다가, 중요한 순간(?)에만 이를 꺼내 사용합니다. 음경을 밖으로 내놓고 다니면 댐 건설 과정에서 다칠 수 있는 데다가, 물 바닥의 돌이나 나뭇가지에도 긁히기 쉽습니다.

수영할 때도 물의 저항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숨겨진 음경’(retracted penis)으로 진화한 이유입니다. 중세 유럽 수도사들이 비버를 ‘자웅동체’로 여긴 이유였습니다.

“쟤네는 수컷이 없나봐유.” 중세 동물도감에 묘사된 비버. 스스로 고환을 물어뜯는 장면도 그려져 있다.
그의 항문에서 달콤한 향기가 난다
비버가 수영 달인이 될 수 있었던 또 다른 무기도 있습니다. 비밀은 비버의 ‘항문’입니다. 비버의 항문 근처에서 기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녀석들은 이를 몸 전체에 바릅니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점을 이용해 방수 기능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체온 유지는 덤입니다.

항문에서 풍기는 기름 향에 인간도 빠져듭니다. 향긋한 캐러멜, 바닐라 향이 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닐라 열매를 생산하는 식물 바닐라 오키드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만 생성돼 매우 비쌌습니다. 모피 사냥을 위해 비버를 잡은 김에 항문에서 기름을 채취해 향료로 사용한 것이었지요. 우리가 바닐라향을 값싸게 이용하게 된 건 합성 향료를 개발하게 된 뒤부터입니다.

비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연 소방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미 지역에서 거대한 산불이 모든 걸 집어삼킬 때 비버의 습지에서 멈췄습니다. 화마에 쫓긴 야생 동물들도 비버의 슾지에서 비로소 온전히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쉽게 하지 못한 일을 비버가 해낸 셈입니다. 비버가 행복하면, 지구는 더욱 행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 아이다호주 산불 현장에서 방화선 역할을 한 비버 습지. [사진출처=Schmiebel]
“가족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쯤이야.” 댐 건설을 위해 나무를 옮기는 비버.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세줄요약>

ㅇ최근 체코에서 허가 문제로 댐 공사가 중단된 사이 비버가 자연 댐을 만들어 18억원을 절약한 뉴스가 소개됨.

ㅇ비버는 이렇듯 댐을 만드는 습성이 있는데, 수량을 조절해 서식지인 습지를 만들기 위해서임.

ㅇ비버 서식지에는 생명 다양성도 늘어나고, 거대한 산불의 방화선 역할마저 하는 것으로 나타남(잔망루피 사랑해!).

<참고문헌>

ㅇ저스틴 P. 라이트 외, 생태계 공학자인 비버 자연에서 생명 다양성을 넓히다, Ecosystems Ecology,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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