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날 이후 감쪽같이 사라진 외국인 투수...'연봉 도둑'으로 무기한 실격 처리

백종인 2025. 3. 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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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스노우의 니폰햄 시절 모습. 트위터 캡처

NPB에 이런 일도…1974년 무기한 실격 처리된 니폰햄 화이터즈 발 스노우

[OSEN=백종인 객원기자] 이맘 때면 거의 그렇다. 대부분 팀이 겪는 일이다. 막상 개막을 앞둔 시점이다. 그런데 ‘쓸만한 투수가 없다’는 아쉬움이 크다.

1974년 니폰햄 화이터즈가 그랬다. 에이스였던 가네다 도메히로가 팀을 떠났다. 400승 투수였던 친형 가네다 마사이치가 감독으로 부임한 롯데 오리온즈로 이적한 것이다.

궁여지책이 나온다. 공개 모집이라도 해보자는 의견이었다. 나름대로 공 좀 던진다는 사람들이 모인다. 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재목이 있을 리 없다. 그냥 동네 야구 수준들일 뿐이다.

그러던 차였다. 묘한 인물이 나타난다. 파란 눈에 금발이다. 게다가 깔끔한 정장 차림이다. 누군가 소개를 시켜준다. 함께 온 일본 거래처의 대표다. “직장 일 때문에 잠시 일본에 머물고 있는데, 테스트 좀 받아보고 싶다는군요.”

‘뭐 그러시던가.’ 첫 반응은 시큰둥하다. ‘우리 일본이 어떤 곳인데. 메이저리그 출신에게도 만만치 않은 리그인데.’

아는지 모르는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간단히 몸을 풀더니, 마운드에 올라 공을 받아 든다. 그리고는 이내 초구를 뿌렸다.

“빡!!!!!!!”

포수 미트가 울린다. 제법 묵직한 소리다. 구단 관계자들의 시선이 몰린다. 하나 둘…. 투구가 거듭될수록 지켜보는 눈빛이 달라진다.

“음, 공이 낮고 좋은데. 힘도 있고.” 야마네 가즈오 투수코치가 고개를 끄덕인다. “팔이 잘 넘어오는데요. 컨트롤도 깔끔하고요.” 포수 무라이 히데시도 뜻밖이라는 표정이다.

결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팀의 간판이자, 당대 최고의 타자인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의 말이다. 타석에 서 공을 몇 개 지켜본다. 그러더니 너끈한 합격점을 준다. “저 친구 꽤 괜찮은데. 당장 1군에서 뛰어도 충분해.”

발 스노우의 니폰햄 시절 모습. 트위터 캡처

‘이게 웬 횡재냐.’ 구단 프런트가 흥분한다. 당장 신상 파악부터 다시 들어간다.

풀 네임은 로렌스 발렛 스노우(Laurence Vallette Snow)다. 줄여서 그냥 발(Val) 스노우라고 쓴다. 미국 유타주 출신이다. 당시 나이는 29세, 183cm, 85kg의 오른손잡이다.

역시나. 예전에 야구 좀 했다. 뉴욕 메츠 산하 싱글 A에서 프로에 입문했다. 이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신시내티 레즈 등을 전전했다. 마이너리그 생활에 염증을 느껴,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는 무역회사에 입사해 월급쟁이가 됐다. 마침 일본 출장길에 입단 테스트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자석처럼 끌린 것이다.

구단은 즉시 MLB에 신분조회를 요청했다. ‘아무 문제없다’는 회신이다.

그때가 3월 말이다. 개막이 코 앞이다.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나카니시 후토시 감독은 입이 귀에 걸렸다. 에이스의 번호인 18번을 그에게 준다.

“작년에 있던 외국인 투수보다 훨씬 볼 끝도 좋고, 안정감도 낫군요. 아직 일본 야구는 전혀 모르지만, 15승을 기대한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며 한껏 기대감을 나타낸다. ‘바루(バールㆍVal)’라는 가타가나 표기를 등록명으로 했다.

앞으로 1개월, 조정 기간을 준다. 차분하게 가다듬고, 1군에 데뷔시킨다는 계획이다.

발 스노우의 잠적 문제를 다룬 당시 기사. 트위터 캡처

그리고 첫 실전 일정이 잡혔다. 4월 26일 이스턴리그(2군) 야쿠르트전이다. 마침 비가 와서 취소된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상하다. 훈련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무단 결근인 셈이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러려니 했다. ‘꽃가루 알러지인가?’ 봄이면 흔한 증상이다.

사흘째다. 뭔가 심상치 않다.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가봤다. 엊그제 체크아웃 했다는 말이 들린다. 뭔가 기분이 쎄~하다. 그날이면 첫번째 월급날이다. 요즘처럼 입금 방식이 아니다. 봉투에 현금을 담아주던 시절이다. (구체적인 연봉은 공개되지 않았다.)

입단 계약할 때 첫 1개월 치, 그리고 2개월 치를 받던 날이다. 이후로는 연락두절이다. 사방을 수소문했지만 완전 ‘잠수’ 상태다. 결국 나리타 공항을 통해 출국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갑자기 떠난 이유는 모른다. 혹시 사생활 문제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개신교 특정 종파에 심취한 신앙인이었다. 술과 담배는 물론 콜라조차 마시지 않았다.

당사자는 “호텔로 협박 전화가 와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라고 변명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말이다. 주장을 뒷받침할 정황은 전혀 없다. 지나친 부담감과 향수병 탓이라는 추측만이 맴돌았다.

구단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4월 30일 자로 NPB(일본야구기구)에 공시 요청을 보냈다. ‘일방적 계약 해지로 인한 무기한 실격 선수로 지명해 달라’는 내용이다. 현재까지 외국인 선수 중에는 유일한 ‘실격 처분’이 내려졌다.

발 스노우의 이후 행적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입국 후에 장거리 트럭 운전수로 힘든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2011년 5월, 6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인은 후두암이었다.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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