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 뿌리내린 투기의 메커니즘
<span style="color: #333333;">역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투기 자본주의’</span>
<span style="color: #333333;">피에르이브 고메즈 지음|</span>김진식 옮김|민음사|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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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는 거품은 언젠가 터진다는 교훈을 전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투기의 거품은 다시 끓어오른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어리석다는 방증일까? 아니다. 투기를 단순히 탐욕의 발현으로 이해해서는 그것이 현대 경제를 사로잡은 메커니즘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투기는 경제적 가치 창출을 합리화하는 새로운 방식이 됐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그랑제콜 이엠리옹 경영대학의 피에르이브 고메즈가 ‘투기성’이라는 틀로 현대 경제를 고찰한 이 책은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함께 프랑스 지성계의 현대 자본주의 비판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피케티와 고메즈 모두 오늘날 자본주의의 결함을 드러내는데 피케티는 그것을 초자본주의라고, 고메즈는 투기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피케티가 지난 수십 년간 불평등 심화로 입증된 자본주의의 ‘양적인 악화’를 지적한다면 고메즈는 자본주의의 ‘질적인 변화’를 확인한다는 차이가 있다. 즉 고메즈는 자본주의의 본성이 변했다고 말한다.
축적 자본주의서 투기 자본주의로
투기란 “현재의 부채를 청산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미래의 변화에 대한 믿음”이며 따라서 금융 자본주의의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그것의 원동력이다. 시간의 화살표가 전도됐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지금까지 ‘축적적’이었던 자본주의는 성장과 부흥을 위해 과거의 손실과 이익을 고려했지만 이제 ‘투기적’으로 변한 자본주의는 언제나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약속에 의존한다.
투기 자본주의의 논리는 건축설계사 없이 건물을 짓는 건축업자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은 건물 짓기에 의미를 부여해줄 설계사를 마침내 찾으리라 믿지만 애석하게도 벽을 쌓아갈수록 미로를 만들고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투기 자본주의 논리 역시 출구에 대해 계획이 없다. 현재와는 ‘혁신적으로 다를’ 미래를 담보로 번영을 거듭 약속할 뿐이다. 그러나 “빚에 시달리면서도 빚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 막연한 미래를 계속 뒤따라가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며 미친 듯이 투기만 하는 우리는 채무자가 죽지 않는 한 채무는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고 있다.”
1974년 미국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ERISA)의 후폭풍으로 가시화된, 주가를 통한 기업 평가와 개미투자자로 변한 미래 퇴직자들의 주가에 대한 관심도는 모든 경제활동의 증권시장화를 동반하는 투기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나타났다. 이런 변화 속에서 기업은 모든 성과가 실시간으로 모니터의 수치로만 기록되는 ‘스프레드시트 기업’으로 변신한다. 기업, 상품, 서비스, 심지어 사람의 미래가치에 대한 공유된 믿음을 바탕으로 노동과 소비, 개인의 일상과 사회 전반이 투기 자본주의 논리에 동기화된다.
그런데 투기 자본주의 시스템은 점점 더 불확실한 예상에 의존한다. 이 예상은 디지털 혁명이라는 신화와, 지금까지 그랬듯이 기적은 반복될 것이며 “오늘의 에스에프(SF)는 내일의 현실”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희망을 토대로 한다. 그러나 실제로 약속이 일부 실현되더라도 늘어난 부채를 상환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상황이 말해준다. 후속 세대에 남겨진 지구 환경에 대한 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늘어만 가는 부채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부채 증가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미래의 기대이익에 갈수록 더 의존하는 투기 자본주의 시스템의 논리에 포함된 것이다.
투기의 미로에서 벗어나기
이 책이 던지는 또 다른 화두는 오늘날 만연한 반(反)인간적 사고, 즉 환경 파괴나 기후위기 같은 전 지구적 문제가 철저히 인간 탓이라는 통념에 대한 비판이다. 이런 통념은 사회에서 경제적 상호작용이 지닌 영향력을 간과한다. 실제로 지구를 황폐화한 물질적 조건을 가리고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그러나 인간이 지구의 약탈자가 됐다면 그것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경제사회 시스템, 바로 투기 자본주의 시스템이 부추겼기 때문이다.
투기 자본주의 논리가 현실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해도 실제 현실 속의 구체적인 삶은 이와 다르다. 저자는 미래 세계가 “오늘날 자본주의 정신이 상상하게 하는 세상과는 같지 않을 것”이라고 담담히 주장하며, 투기의 미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날그날 각자의 자리에서 행동하고 발언하는 다수의 사람에게 희망을 건다. 투기에 대해 진부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그 안팎의 메커니즘을 명료하게 해부한 끝에 도달하는 통찰이다.
김진식 울산대 명예교수 jsk@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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