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체제 ‘고통분담의 정치경제학’

조계완 기자 2025. 3. 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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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담당 공무원·기업·저널리즘 쪽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단어"라고 호명한 관세 얘기로 온통 넘쳐난다.

정치인과 경제관료마다 여전히 성장을 외치고 있으나, 여러 경제적 사실들 앞에서 지금 정직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은 '저성장 체제의 고통을 각 집단·계층에 어떻게 배분하고 부담시킬 것인가'를 둘러싼 어떤 방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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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span>
<span style="color: #333333;">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span>
2024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일반·휴게음식점 10만7천 곳이 폐업하는 등 자영업·소상공인이 저성장의 고통에 가장 쉽고 빨리 노출되고 있음이 확인됐다. 2025년 2월12일 폐업 음식점에서 저렴하게 들여온 중고 주방 설비가 서울 황학동 주방거리에 쌓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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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제담당 공무원·기업·저널리즘 쪽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성한 단어”라고 호명한 관세 얘기로 온통 넘쳐난다. 세계무역기구(WTO)를 위시한 국제 무역질서·규범도, 자신이 과거 집권 1기 때 맺었던 교역협정도, 국제분쟁조정기구가 판정한 미국 무역정책 패소 결과까지도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트럼프주의가 한국 경제에 덮칠 파고는 물론 엄중하다. 그런데 불확실성이 아직 꽤 있는 ‘트럼프 관세폭탄’보다, 거의 뚜렷한 확실성으로 우리 사회경제에 ‘고통분담의 계절’이 불쑥 닥쳐오고 있다는 불안한 예감에 빠져드는 시절이다.

당장 2025년 우리 경제의 실질성장률 전망치는 1.6%(한국개발연구원)까지 내려왔다. 2023년 1.4%, 2024년 2.0%(한국은행 속보치)에 이어 ‘수출주도’ 경제·산업·기업은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질서와 환경에 접어들고 있다. 코로나19, 인플레발 고금리, 비상계엄·탄핵, 내수부진 지속 그리고 트럼프 등 내생적 및 외생적 경제충격 변수가 중장기적으로 겹쳐 파급되면서 저성장이 하나의 체제로 형성되고 있다는 걱정마저 든다. 코스피의 정체·하락 추세도, 달러당 1450원대로 급등한 우리 돈의 가치 절하도, 코리아디스카운트나 계엄·탄핵 정치 불안 요인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 경제·기업의 근본 경쟁력과 기초체력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연 3%대 정도로, 인구·복리이자처럼 지수적으로 증가해왔던 우리 경제규모가 ‘일정하게 낮은 성장률이 지속하는 체제’로 바뀌면 체감하는 경제적 삶의 수준은 성장률 숫자가 지시하는 것보다 훨씬 나빠지기 마련이다. 앞으로 우리는 지금보다 가난하게 살아갈 각오를 해야 할지 모른다. 정치인과 경제관료마다 여전히 성장을 외치고 있으나, 여러 경제적 사실들 앞에서 지금 정직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은 ‘저성장 체제의 고통을 각 집단·계층에 어떻게 배분하고 부담시킬 것인가’를 둘러싼 어떤 방향일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고통의 크기와 변화상을 집단별·영역별로 측정·진단하고 이를 통해 무엇을 정책적으로 조준할지 선택해야 한다. 이를테면 고통분담의 정치경제학이다. 효율적이고 정확한 정책수립을 위해 국가통계자료 작성기관들도 수집하는 지표와 범위를 확장·변경해, 시장에서 잇따라 탈락하는 열패자들의 처지를 통계 데이터로 빠르게 모으고 그 악화 양상을 종합분석해야 한다.

경제성장은 중립적 과정이 아니라 일종의 ‘권력 과정’이다. 성장할수록 자원 기득계층의 물질적·경제적 부와 권력은 더욱 강화된다. 2025년 2월 분양가 22억∼24억원대(전용 84㎡)에 이르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래미안 원페를라 268가구 모집 1순위 청약접수에 무려 4만 명이 몰렸다고 한다. 2024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일반·휴게음식점 10만7천 곳이 폐업(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했다. 저성장의 고통은 사회경제 집단별로 비대칭적이어서, 주변부 실직자와 불완전 취업자 및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들부터 당장 광범DNL하게 노출되고 상처 입기 마련이다.

머지않아 2~3%대 성장률로 복귀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즉 경기순환변동 국면에서 하나의 사이클에 지금의 1% 저성장이 위치해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러나 ‘저성장 체제’에 진입한 것으로 굳어지면 우리 사회경제는 각 계층·집단·부문별로 저성장 고통을 누가 얼마나 감내할 것인지를 둘러싼 각축과 갈등 과정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2900만 경제활동인구 사이에 양보와 재편을 요구하며 각종 경제제도를 생성·변경 혹은 폐지하려는 투쟁이 일어나고, 고통분담 비율은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경제정책 방향에서 점차 드러날 것이다.

한겨레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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