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부하고 싶어도 못해요"…서울대생의 '탄식' [강경주의 테크X]

강경주 2025. 3. 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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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x10> "반도체 교수 모자라 밀려드는 수강 신청 반려해 안타까워"
"대만국립대 반도체 교수 50명, 서울대 20명…K반도체 현실"
사진=한경DB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K반도체 반등의 필수 조건으로 반도체 교수 충원, 정년을 넘긴 반도체 엔지니어 재활용 방안 등 '투트랙'을 꼽았다. 반도체가 경제를 넘어 안보까지 책임지는 글로벌 추세 속에서 국가 반도체 정책을 총괄할 독립된 컨트롤타워 필요성에도 공감을 표했다.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이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장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반도체 전공 교수 파격적으로 많이 충원해야…정부 지원·관심 필수"

이 소장은 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 전기공학부만 해도 복수전공, 부전공까지 수백명의 학생들이 반도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교수가 모자라 밀려드는 수강 신청을 반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인재 육성보다 반도체 교수 확충이 더 시급하다는 의견은 수년 전부터 제기됐지만 정부 지원이나 정책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하소연이 학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최상단에 위치한 대만의 경우 대만국립대에만 반도체 관련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가 50명을 훌쩍 넘는다. 반면 서울대는 20명에 불과하다. 이 소장은 "반도체 전공 교수를 파격적으로 많이 충원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임형택 기자


대만이 반도체 강국이 된 배경에는 40여년 전부터 이어져온 이공계 선호 분위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교수 충원에 있다. 대만 최우수 인재들이 이공계로 몰리면서 대만 정부가 적시에 교수를 대폭 늘렸다. 대만 대학 입시에선 학부모, 학생 모두 이공계를 선호한다. 대만의 대학선발입학위원회는 지난해 6월 학생들이 AI와 반도체 열풍에 따라 9월 학기에 입학할 2024년 대입 지원에서도 이공계 쏠림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위원회는 북부 타이베이 대만국립대, 신주 칭화대학교, 양명교통대학, 남부 타이난 성공대학 등 4개 국립대학의 전기학과 계열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대만 유력 매체인 중국시보는 TSMC가 일부 고등학교에 반도체 수업 과정을 개설한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대만은 10년 넘게 매년 1만명의 반도체 인력을 쏟아내고 있다. 대만 정부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민간 기업이 국립대학과 협력한 반도체학과를 개설하면서 반도체 분야 학사 정원은 10%, 석·박사 정원은 15%씩 늘린 정책은 '신의 한수'로 평가받는다. 반면 한국 상황은 정반대다. 국내 대학에서 매년 배출되는 반도체 학과 전공자는 700여명, 석·박사급 인재는 150여명에 그친다. 최상위권 학생들도 이공계보다 의대를 선호한다.

한국의 반도체 홀대 분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대는 반도체 계약학과 만들려고 두 차례 시도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계약학과는 졸업 후 기업과 연계하는 특수성을 가졌다. 하지만 이 특수성이 서울대 교육이념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학내 반발에 부딪혔다. 2023년에는 서울대 내 차세대지능형반도체전공, 디지털헬스케어전공, 융합데이터과학전공, 지속가능기술전공, 혁신신약전공 등 총 5개 전공을 묶은 첨단융합부를 신설했다. 이 학부는 당초 반도체에 TO 전원을 준다는 취지로 논의됐다가 '안배'라는 기준이 개입되면서 반도체 경쟁력 확보라는 취지가 흐려졌다. 이 소장은 "교수들이 많아지면 배울 학생 수가 늘어나고, 교수 중심으로 운영되는 프로젝트가 많이 생긴다"며 "결국 연구실과 관련 논문이 증가해 대학원생까지 늘어나는 선순환이 생기는데 한국은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방진복을 착용한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이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마스크리스 리소그래피 시스템 포토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이 장비를 사용할 경우 포토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원하는 패턴을 파일 형태에서 직접 웨이퍼 위로 그릴 수 있다. / 사진=임형택 기자

반도체부 등 반도체 정책 지휘할 독립 컨트롤 타워 필요

반도체 엔지니어의 정년 문제도 들여다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 소장은 "현장 경험과 공정 노하우, 글로벌 반도체 네트워크가 풍부한 국보급 인재들을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활용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이들에게 후속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장기적으로 지원하면 반도체 교수 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반도체 정책을 총괄하는 독립 부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교육부, 국방부 등 각 부처에 혼재된 반도체 정책과 예산 관리를 단일 부처가 총괄해 정책 지속성과 효율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반도체부나 반도체청 혹은 대통령실 내 반도체비서관 등의 반도체 전문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예산과 교수·학생 TO, 연구 과제를 자체적으로 배정할 수 있도록 독립성과 행정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도체 연구개발(R&D) 직군의 주 52시간 문제에 대해선 "연구가 잘될 때 집중해서 연구하는 게 훨씬 효과가 크다"며 "적어도 반도체 분야에선 52시간제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부가 반도체 육성에 진정성 있게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 소장은 "대만은 반도체 앞에서 정부, 민간, 국민 모두가 단일대오"라며 "반도체는 투자 타이밍과 인재 육성 시기를 놓치면 그 차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 내부 / 사진=임형택 기자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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