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곧은 소리] 광장의 정치 에너지, 7공화국 개헌으로 승화돼야 한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2025. 3. 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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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여의도와 안국동으로 쫙 갈라진 ‘탄핵 반대’ ‘탄핵 찬성’ 대규모 집회
‘윤석열 직무 복귀’든 ‘이재명 집권’이든 반대 세력이 수용할 만한 헌법 필요

(시사저널=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3·1절 기념사에서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통합"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말은 '소귀에 경읽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갈등을 조정하고 국민 통합에 앞장서야 할 여야 정치권이 거꾸로 갈등을 조장하고 국가 분열을 확산시키는 양극화의 주역이 됐기 때문이다. 탄핵 정국과 대외적 경제 위기가 중첩된 상황에서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위기 극복과 국가 통합을 외쳐도 시원찮을 판에 혐오 발언과 증오적 선동으로 파당적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3·1절에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보수단체 주최의 탄핵 반대 집회에는 경찰 추산 12만 명이 모였다. 국민의힘 의원 36명은 여의도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이날 안국역 일대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에는 이재명 대표 등 민주당 소속 130명의 의원을 포함해 경찰 추산 1만8000명이 참여했다.

탄핵 반대 집회에선 "좀비 좌익 세력" "지렁이 떼" 등의 비하와 욕설도 쏟아졌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옥중 편지를 통해 "문형배·이미선·정계선 헌법재판관을 즉각 처단하자"고 했다. 집회에 참가한 국민의힘 의원들도 "공수처·선관위·헌재를 모두 쳐부수자" "대한민국은 '좌파 강점기'"라고 했다. 탄핵 찬성 집회에서 이재명 대표는 "국민의힘은 수구조차 못 되는 반동" "내란의 밤이 계속됐다면 연평도 앞바다의 꽃게 밥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망상 장애 괴물 윤석열이 '지X 발광'을 하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국민 통합을 당부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해선 "윤 대통령에게 충성 맹세하며 통합 운운하지 말라"고 공격했다.

3월1일 서울 곳곳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다. 광화문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가 탄핵 반대 집회를(왼쪽 사진), 안국동에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 5당이 탄핵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전직 국회의장·총리 10명, "협치 개헌" 요구 

여야 정치권은 계엄·탄핵 사태로 인한 국가적 위기와 혼란을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부추겼다. 정치권이 갈등 조장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을 앞둔 헌재를 압박하겠다는 계산에서다. 이런 상황에 대한 우려는 국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나온다. 영국의 한 경제 기관은 지난해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10계단이나 하락시키며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평가했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념·지역·계급·종교 등을 초월해 하나가 돼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기념일에 정치권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최악이다. 국민 통합은 뒷전인 채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에 앞서 세를 과시해 파당적 이득을 챙기려는 행태는 민주공화국의 정신에 반하는 무책임한 태도다.

탄핵 찬반 집회에 집결한 인원을 모두 더하면 총 14만 명이나 된다. 이렇게 모인 광장의 에너지가 집단지성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국가 분열상으로 나타난 것은 국력 낭비다. 광장의 에너지가 국가 발전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정치권의 지혜 부족과 무책임이 있다. 정치권이 로마 공화정(Republic)을 기원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는 '갈등 조정을 통한 국가 발전'을 공화주의 정치의 본령으로 삼았다. 그는 로마 공화정의 성공을 귀족과 민중 간 '갈등의 제도화'로 설명했다. 두 세력이 상호 견제하고 균형을 찾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법치주의에 의한 통치로 이어져서 로마가 '공화정'으로 성장하고 '제국'으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우리에게 원로들의 지혜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김형오·강창희·정의화·정세균·박병석·김진표 등 전 국회의장 6명, 정운찬·김황식·이낙연·김부겸 등 전 국무총리 4명이 3월4일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개헌 토론회에서 차례로 왜 개헌을 해야 하는지, 왜 지금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정치의 복원을 위한 개헌은 주저하거나 포기할 일이 아니다"(정세균), "87년 체제의 역대 대통령을 보면 지금 문제는 제도에 있다"(김황식),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협치를 제도화해야 한다"(박병석·김진표).

원로들은 지금이 다시 오지 않을 개헌의 호기라고 했다. 대통령 직무정지의 권력 공백기인 데다 계엄 사태로 국민이 개헌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 어떤 분만 개헌에 소극적인데, 그분을 위해서도 개헌이 필요하다"(이낙연)는 개헌 동참 촉구도 있었다. 여기서 어떤 분은 차기 유력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뜻한다.

원로들은 여야의 극한 충돌이 결국 계엄과 탄핵, 대규모 찬반 시위로 이어지는 현실을 보면서 '이대로는 국민에게 미래가 없고, 개헌으로 정치 갈등이 줄어든 새로운 나라로 가야 한다'는 데 한마음이 됐다. 이참에 이재명 대표도 개헌 논의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개헌 논의가 이 대표의 집권과 국정 안정 전략에도 결코 불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3·1절에 드러난 진영 간 심리적 내전 상황이 제왕적 대통령·의회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헌법 개정으로 승화되지 않으면, 이 대표가 집권해도 '반쪽짜리 정권'으로 전락해 국정 불안정에 따라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내각 불신임권' '국회 해산권' 병존해야

헌법 개정으로 승화되지 않는다면,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을 인용해도 탄핵 반대파는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 사법 리스크를 갖고 있는 이재명 대표가 집권에 성공한다고 해도 반대파는 불복해 국정 불안정성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표는 3월26일의 선거법 2심 재판에서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오더라도 대선에 출마할 것이 확실하다. 만약 그 상태로 그가 대통령이 되면 헌법 84조 '현직 대통령 불소추' 특권의 해석을 놓고 나라가 두 진영으로 쪼개질 것이 확실하다. 이재명 찬성파는 재판이 중단되는 것을 다수설로 주장하겠지만 이재명 반대파는 이에 불복할 것이 뻔하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정당과 정치인들이 '갈등의 제도화'로 승화시키지 못한다면, 갈등과 분열로 국가 성장의 동력은 소진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분열된 적대감정을 순화시켜 상대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도록 하는 화합의 장이 절실하다. 정치권이 개헌이라는 관용과 절제의 미로 진영 대결과 정치 양극화를 멈추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광장의 에너지가 국가 파괴의 동력으로 가지 않고 국가 발전의 에너지로 전환되도록 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광장의 에너지가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국회를 견제하고 균형을 찾아 공공선을 추구하도록 새로운 7공화국을 여는 헌법의 에너지로 승화될 필요가 있다.

개헌 사항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핵심적으로 대통령 및 국회의 제왕적 권력과 정치 양극화를 막고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국회 해산권, 양원제 등이 필요하다. 국회에는 내각 불신임권, 대통령에게는 국회 해산권을 부여해 '다수결의 폭정'을 막고 상호 견제와 협치가 가능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권이 최종 기각될 경우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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