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출산하기로 했다 [이길보라의 경계에서 자란다]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아이는 어디서 낳아요?”
임신했을 때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어디서 아이를 낳고 기를 것인가. 서울과 후쿠오카를 오가며 사는 나에게는 한국과 일본이라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나와 파트너는 영어와 일본어를 사용한다. 한국에서 출산한다면 그는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아이를 낳으면서 통역을 해야 한다. 엄마가 와도 마찬가지다. 수어통역사를 섭외할 수는 있지만 언제 출산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통역사를 부르고 일정을 조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일본인 파트너와 농인 엄마 사이에서 통역하며 출산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울고 싶어졌다. 차라리 일본에서 부족한 일본어로 소통하며 필요할 때는 통역을 받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일본에서 출산하기로 했다.
이전부터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자연주의 방식으로 출산하고 싶었다. 편한 공간인 집에서 조산사를 불러 출산하는 방식인 가정 분만이 좋아 보였지만 다소 겁이 났다. 다다미방에서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출산하는 조산원은 집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비상시에 의료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었으면 했다. 집 근처의 출산전문병원 산부인과를 택했다. 산전부터 산후까지 조산사가 전 과정을 담당하며 의사와 협력하여 분만한다고 했다. 분만 방식과 내용을 선택할 수 있으며 산전 산모 수업과 산후 운동 수업 및 이유식 교육, 육아 상담을 제공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낳고 싶었다.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낳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의 출산 방식이 대부분 자연주의를 따른다는 거였다. 일본에서는 제왕절개 수술을 하거나 무통주사를 맞으려면 예약을 해야 하고 보험 보장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탓에 비용도 저렴하지 않다. 산통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화도 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일본의 제왕절개 비율은 약 19%다. 한국은 2023년 기준 64%다. 또한 일본의 무통주사 사용 비율도 2023년 기준 11%로 타 국가에 비해 낮다. 미국은 70~75%이며 프랑스는 82%, 한국은 60%, 독일은 20~30%다. 물론 낮아지는 출산율 때문에 최근 도쿄도는 도내 의료기관에서의 무통 분만 비용을 부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는 자연주의 출산을 하려면 이를 지원하는 병원을 따로 찾아야 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낳는 것이 용이할 것 같았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아기집을 확인하고, 심장 소리를 듣고, 젤리곰 모양의 태아를 마주하고, 길어지는 아기의 팔과 다리를 보며 임신이라는 변화를 받아들였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의사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조산사, 쉬운 일본어로 천천히 설명하는 이들과 얼굴을 익혀가며 질문과 고민을 나눴다. 파트너와 일곱차례의 산전 산모 수업을 함께 다니기도 했다.
출산 전까지 조산사와 두차례 상담을 해야 했다.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임신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과정이었다. 현재 누구와 살고 있는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육아는 누구와 하는지, 어떤 주거 형태로 살고 있는지, 아이에게 젖을 먹일 것인지 분유를 먹일 것인지 등을 논의했다. 조산사는 출산의 구체적인 모습을 상상하고 적어 오기를 권했다. 건강 상태에 문제가 없다면 산모의 결정대로 따른다고 했다. 출산 이후에는 4박5일간 병원에 머무르며 몸을 회복하고 젖을 물리고 아이를 돌보는 법을 배운다고도 했다.
고민 끝에 무통주사를 맞지 않기로 했다.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고, 제모하지 않고, 유도분만 주사를 맞지 않고, 음악 없이, 아로마 테라피 없이, 필요하다면 고통 경감을 위한 족욕을 하는 방식으로 출산하겠다고 했다. 조산사는 배가 불러오면 움직이기 쉽지 않으니 34주까지는 모든 준비를 마치라고 했다. 36주부터는 언제 아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이다. 초산의 경우 아이가 늦게 나올 수도 있다고 들어 느긋하게 마음먹었다. 무거워지는 몸을 바라보며 곧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하던 37주차에 양수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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