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무더기 검찰행에 전남도청 ‘뒤숭숭’…무슨 일이?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5. 3. 5.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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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집으로 변한 전남도청] 소속 공무원 130여명 처벌 가능성에…“안타까워” vs “심란해’
경찰, 2년 수사 끝에 검찰 송치…침통한 도청 직원들, 수사 방향에 촉각
‘뒷북’ 전남도, 수사 별개로 감사 착수해 징계조치…추가 조처 검토 예고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남도 본청 소속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사무관리비를 유용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지자 도청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도청 직원(2400여명)의 5%에 해당하는 133명이 무더기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면서다.

검찰 송치가 김영록 지사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세계 최대 규모(3GW)의 솔라시도 AI슈퍼 클러스터 허브 구축을 위한 15조원 투자 유치를 이끌어 낸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발표돼 잔칫집 같았던 도청이 초상집으로 변했다. 

도청 공무원들은 동료 직원들이 잇따라 검찰에 불려나가 조사 받아야할 상황에 침통한 표정이 역력했고, 조직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일부 도청 공무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처벌 수위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검찰의 수사방향이 어떻게 흘러갈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남도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사무관리비를 유용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지자 도청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도청 본청 직원(2400여명)의 5%인 133명이 무더기로 검찰의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이면서다. 김영록 전남지사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장에서 세계 최대 규모(3GW)의 솔라시도 AI슈퍼 클러스터 허브 구축을 위한 투자 유치를 이끌어 낸 여운이 가시기도 전이어서 잔칫집 같았던 도청이 초상집으로 변했다. 전남도청 전경 ⓒ전남도

도청 공무원 중 '5%' 검찰수사 받을 처지…대부분 7~8급 하위직 공무원

경찰은 4일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전남도 소속 공무원과 매점 직원 등 13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 2023년 4월 시민단체의 진정이 접수된 지 2년 만이다. 수사에 나선 전남경찰은 도청 매점 등을 압수 수색을 하며 본격적으로 사무관리비 유용 사건을 수사했다.

이들은 사무용품 구입비로 써야 할 공금을 사적 목적 또는 명절선물·가전제품·의류·잡화·생활용품 구입 등 엉뚱한 용도로 사용한 혐의를 받는다. 사무관리비로 구입한 스마트워치와 지갑 등을 개인물품으로 착복한 공무원에게는 횡령 혐의가, 식음료비 지출 등 목적과 다르게 집행한 공무원에게는 배임 혐의가 각각 적용됐다. 도청 내 매점 직원들은 허위 견적서 발행 등에 도움을 줘 방조범으로 처분됐다. 

검찰에 넘겨진 공무원은 대부분 7∼8급 하위직으로, 수사 대상 기간인 2020∼2022년 전남도 각 실·국·과에서 공용물품 구입 담당(서무)을 맡았다. 도청 과장급인 4급 공무원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유용한 액수는 총 4억원 상당으로, 한 명이 1000만 원 이상을 유용한 사례도 적발됐다.

경찰 수사는 2023년 4월 시민단체의 고발 사건을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행정안전부 훈령 등을 기준으로 200만 원 이상 고액 횡령·배임 정황이 있는 공무원을 수사 대상자로 분류, 의혹을 명확하게 해소하지 못한 133명을 검찰에 넘겼다. 

적발된 물품의 판매와 구입은 도청 공무원노동조합이 직접 운영한 매점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이뤄졌다. 경찰은 공무원노조가 판매 수수료를 과도하게 챙겼는지도 들여다봤으나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전남도도 자체 감사에 들어가 사무관리비를 사적으로 사용한 공무원 50명을 적발하고 200만 원 이상 횡령한 것으로 보이는 6명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 수사와 별도로 관련 공무원 4명은 중징계, 4명은 경징계를 처분했다. 도는 130여명에 대한 검찰의 처분이 끝나면 추가로 징계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 공무원은 공무원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매점이 개설한 G마켓 계정을 이용해 공용물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사적 물품을 끼워 넣어 착복했다. 이들은 상품권,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 지갑 등을 구입했다. 

일부 직원은 두유, 샴푸, 캡슐커피, 휴대용 청소기 등을 구입해 사적으로 사용했다. 상당수 하위직 공무원은 사무관리비를 개인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지만 다른 용도로 유용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무관리비는 사무용품과 사무실 비품을 구매할 목적으로 각 부서에 할당되는 예산이다.

"전남도정 역사에 기록될 불행한 일" vs "선배따라 관행적으로 이뤄진 일"

검찰 송치 소식이 전해지자 도청 공직사회에선 '착잡하다' '안타깝다'는 엇갈린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신분상 재직 중 가급적 흠결이 없어야 하는 공무원의 경우 검찰 수사를 받거나 재판에 넘겨지는 것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중간 간부급 공무원은 "이런 상황이 수십년 간의 공직생활 중 처음 경험한 일이라서 마음이 심란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며 "전남도정 역사에 기록될 또 하나의 불행한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고의가 없거나 소액의 경우, 개인 착복을 하지 않은 경우 등에 한해 검찰과 법원 단계에서 선처가 필요하다는 동정론도 나온다. 사무관리비를 유용한 것으로 지목된 직원들이 대부분 7∼8급 하위직인데다 선배들을 따라 관행적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 A씨는 "대부분 직급이 낮아 선배들이 (잘못)하던 일을 관례로 했을 뿐인데 수사를 받은 경우가 많다"며 "사적으로 유용한 것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큰 잘못인 줄을 잘 모르고 한 일에 대해선 어느 정도 선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공무원 B씨는 "한 직원이 다른 기관과 업무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선물용으로 특산품 두개를 7만원에 구입했는데, 유용 혐의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감사 결과 발표 이후, 노조가 운영하던 구내매점을 폐쇄하고 물품을 구매하면 사진을 찍어 회계시스템에 올릴 수 있도록 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했다.

전남도 관계자는 "관례라는 이유로 잘못된 행정을 했다면 마땅히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예산을 부적절하게 쓰는 일이 없도록 청렴 교육을 강화하는 등 신뢰받는 행정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MZ세대 9급 공무원 C씨는 "당사자들의 죄책은 사법기관에서 가려지겠지만 조직까지 불안에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도정 지휘부가 업무에 대한 불안감을 씻어주고 조직 분위기 쇄신을 위한 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C씨는 그러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으로 뒤늦게 청렴 교육 강화 등 운운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땅에 떨어진 도정의 신뢰 회복은 공무원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쇄신책을 내놓느냐에 달렸다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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