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뉴욕의 타락한 끝자락에서 혁신의 중심으로 '미트패킹 디스트릭트'

2025. 3.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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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지난 기고에서 그리니치 빌리지를 다룬 데 이어, 이번에는 그 북서쪽 모서리에 자리한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를 소개한다. 이곳은 과거 도축업과 육류 가공업의 중심지로 알려졌지만, 오늘날에는 뉴욕의 트렌디한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독창적 공간으로 변모했다. 한때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등장하는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자, 희망을 버려라(Abandon Hope All Who Enter Here)"라는 문구로 상징되던 어둠과 절망의 흔적은 이제 뉴욕의 혁신과 세련미로 새롭게 채워지고 있다. 최근, 지역의 마지막 육류 포장업자가 건물 임대 계약을 종료하며 그 전통적 산업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진 변화의 정점을 상징하며, 지역이 새로운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는 마일스톤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곳은 뉴욕 시민들에게 육류를 공급하는 산업 지역으로, 허드슨 강 부두와 기차 노선이 만나는 전략적 위치 덕분에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당시 약 200개의 도축장과 포장 공장이 밀집했으며, 지역 이름도 이러한 산업적 배경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지역은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화물 운송의 컨테이너화, 냉동식품과 냉장 트럭의 발전은 육류 가공업의 역할을 점차 축소시켰고, 지역에서 전국 유통망으로의 전환은 이곳의 전통적 역할을 약화시켰다. 1980년대에는 산업적 기능이 크게 약화되며 마약거래와 매춘이 번성하는 어두운 시기를 맞았다. 동시에, 낮은 인구 밀도와 낙후된 환경은 BDSM과 같은 대안적 하위문화가 자리 잡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러한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의 변화는 1849년에 건축된 트라이앵글 빌딩의 여정을 통해 잘 드러난다. 현재 고급 레스토랑이 위치한 트라이앵글 빌딩은 이러한 지역의 과거와 그 변화를 함께한 상징적인 장소로, 처음에는 유명 금고 회사의 본사로 지어졌으나, 지역이 쇠퇴하면서 성인 클럽이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1980-1990년대에는 성적 취향의 자유를 표방하는 클럽으로 주목받으며, 뉴욕의 독특한 하위문화를 대변하는 공간으로 자리했다. 이러한 지역의 타락한 문화와 트라이앵글 빌딩은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크루징(Cruising, 1980)'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후반 지역에 만연했던 하위문화 클럽을 배경으로, 주인공 경찰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하기 위해 S&M과 래더 바(Leather Bar)로 점철된 어두운 세계로 잠입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이를 "도시의 끝자락으로의 여정(Odyssey to the Edge of City Life)"이라 묘사하며, 당시 지역의 독특한 공간적·문화적 위치를 강렬하게 드러냄과 동시에 쇠퇴하던 뉴욕의 복잡한 이면과 인간 심리의 어두운 측면을 생생히 재현했다. 또한 당시 건물 지하에 위치했던 악명 높은 성인클럽 중 하나인 '헬파이어(Hellfire)'는 다양한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등장하는 지옥의 문에 쓰여 진 문구가 당시 이곳의 입구 너머 거리의 간판에 써져 있었고 이는 지역의 타락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1990년대 이후, 미트패킹 디스트릭트는 도시재생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과거 도축장과 창고로 사용되던 공간은 고급 부티크, 레스토랑, 호텔로 전환되며, 뉴욕의 패션, 미식,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15년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의 이전은 이 지역의 예술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첼시 마켓(Chelsea Market)은 과거 비스켓 공장이던 버려진 건물을 재생하여 뉴욕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실내 푸드 마켓으로 탈바꿈했고, 인접한 하이라인 공원(High Line Park)은 버려진 화물 철도를 공원으로 개조해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각광받는 공간이 되었다.

오늘날 미트패킹 디스트릭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혁신의 미래를 동시에 품은 뉴욕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한때 그 어두운 과거는 이 지역의 뿌리가 되어 현재와 조화를 이루고, 뉴욕의 끈질긴 생명력과 재창조의 역량을 상징하는 원천이며 도시 재생의 성공적인 본보기로, 전 세계가 참고할 만한 혁신의 공간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이곳은 뉴욕의 변화와 진화를 생생히 보여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쓰여 질 도시 혁신의 서사시로 남을 것이다. 이우형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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