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러시아 나라밖 항일투쟁, 그 대가는 대잇는 가난의 굴레

최현정 2025. 3. 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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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영의 지사 일제 징집 후 탈영
광복군총사령부 특수임무 수행
조선혁명군 자금책 박봉수 지사
횡성 출신 강원·이북 중심 활동
독립에 재산 투자 해방 후 빚 허덕
광복회 원주연합지회 준회원 도입
서훈 기준 미달 후손 가입 열어
“독립유공자 결정 기준 완화를”

광복 80주년 잃어버린 영웅을 찾아서 - 6. 해외서 타오른 독립운동의 불꽃

3·1운동 이후 일제의 탄압과 감시는 심해졌지만 독립을 향한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독립군들은 중국 충칭, 만주, 러시아 연해주 등을 거점으로 삼고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국내에서 항일 의병활동을 하던 이들을 중심으로 일본군을 탈출한 강제 징집자, 포로수용소 출신 등 다양한 이들이 타국 땅에 모여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국내에서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비밀리에 군자금을 모집하며 독립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1940년대 한국광복군으로 활약한 탁영의(卓英儀) 지사의 아들 탁연한(77) 광복회 강원도지부 원주연합지회장과 1930년대 조선혁명군을 위해 군자금을 모집하다 옥고를 치른 박봉수(朴鳳洙) 지사의 손자 박장원(73)씨를 최근 원주에서 만났다.

▲ 1 탁영의 지사 2 박봉수 지사 3 한국광복군 훈련사진 4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성립전례식 기념 사진 탁연한씨·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제공

■ 목숨 걸고 일본군 탈영 후 독립군 입대

탁영의 지사는 횡성 출신으로, 1943년 10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집돼 중국 남경지구 주둔 일본군 부대에 배치됐다. 그러나 일본군 병사로부터 중국 중경에 임시정부와 광복군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탈영을 결심하게 된다.

당시 일제는 제2차세계대전 참전을 위해 대한민국 청년들을 강제로 징집했는데, 탁영의 지사처럼 목숨을 걸고 탈영을 감행해 독립군으로 넘어간 이들이 적지 않았다.

1944년 5월. 탈영에 성공한 탁 지사는 중국군 유격대에서 활동하다 1945년 4월 토교대에 입대하게 된다. 이후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에 배치돼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전까지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탁영의 지사의 아들 탁연한씨는 “독립군에도 각자 맡은 역할이 다양했는데, 아버지는 수도방위사령부처럼 광복군을 지키는 역할을 하셨다”며 “징집됐을 때 임시정부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목숨 걸고 탈영해서 거기까지 찾아가신 것”이라고 했다.

광복군 총사령부는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무장 독립군이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에 대한 선전 포고를 발표하고, 일본이 점령한 조국을 재점령하기 위해 미군 특수부대와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세웠다.

비록 실행 직전 일본의 갑작스러운 항복으로 1946년 6월 해체됐으나 전세계에 항일 투쟁과 자주독립의 의지를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횡성 출신의 박봉수 지사는 조선혁명군의 자금책 역할을 맡았다. 조선혁명군은 1929년 9월 중국 지린성에 창설된 국민부 산하 조선혁명당의 독립군으로, 일제의 앞잡이를 숙청하고 1932년 중국 의용군과 한·중 연합군을 형성해 일본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였다.

박 지사는 이들이 군자금을 모집하는 것을 돕기 위해 강원도와 이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1932년 9월 조선혁명군의 일원인 변낙규와 김병수가 국내에 잠입하자 연락기관을 설치하고 군자금을 모집했다.

1932년 12월 27일 장인준·김일봉 지사와 영변의 도박장을 습격해 군자금 모집을 시도했고, 1933년 3월 29일 삭주군에서 군자금 42원을 모집했다. 이후 위조지폐를 발행하기 위해 계획을 하던 중 일경에게 붙잡혀 2년 6개월간 채찍과 물고문 등 갖은 고문을 받으며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1990년 탁영의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박봉수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했다.

■ 독립의 대가 함께 치른 후손들

‘독립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처럼 후손들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독립의 대가를 함께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박봉수 지사의 손자 박장원씨는 “독립운동가 집안이라고 하면 다들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셨다고 말들 하지만, 정작 후손들은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며 살아야했다”며 “우리집도 원래 굉장히 잘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독립군에 재산을 전부 투자하는 바람에 해방이 된 후에도 엄청나게 많은 빚을 져야 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박 씨 집안은 한동안 빚을 갚느라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학교도 박 씨만 겨우 고등학교를 나왔고 사촌들은 중학교에도 진학을 하지 못했다. 박 씨는 “사촌들 대부분이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할 정도로 힘들게 살았다”며 “그래서 할아버지라고 하면 고개를 젓고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군자금을 모집하느라 오랫동안 집을 비운 탓에 박봉수 지사의 아내는 아이들을 홀로 키워내야 하는 날이 많았다. 박장원씨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한다고 셋째를 낳고는 몇 달에 겨우 한 번 집에 들르셨으니 할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우스운 이야기지만 아버지까지는 순탄하게 태어나서 셋째까지는 2살, 3살 터울인데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와 12살이나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이어 “독립운동가들의 자손이 귀하고 그나마 있는 후손들도 찾기 어려운 이유가 할아버지처럼 지역 방방곡곡으로 다니면서 독립운동을 하거나 해외, 이북으로 흩어져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탁영의 지사의 아들 탁연한씨는 “나 같은 경우는 아버지가 해방이 된 후에 결혼했고, 열심히 농사를 지으신 덕에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해서 교육비나 혜택 같은 건 아무 것도 받은 게 없었다”고 했다. 이어 “90년대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무슨 포상을 해주냐고 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못 꺼내다가 1990년도가 돼서야 아버지랑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분들이 서훈을 신청한다고 해서 1990년 9월 1일자로 겨우 서훈을 받았다”고 말했다.

▲ 박봉수 지사의 손자인 박장원(왼쪽)씨와 탁영의 지사의 아들 탁연한 광복회 원주연합지회장. 최현정

■서훈 기준 완화해야

광복회 원주연합지회는 몇년 전부터 독자적으로 준회원 제도를 운영해오고 있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현재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의 활동기간과 옥고를 치른 기간을 기준으로 서훈을 결정하고 있다. 건국훈장 독립장은 8년 이상 활동 또는 8년 이상 옥고, 건국훈장 애국장은 5년 이상 활동 또는 4년 이상 옥고, 건국훈장 애족장은 2년 이상 활동 또는 1년 이상 옥고, 건국포장은 1년 이상 활동 또는 10개월 이상 옥고, 대통령 표창은 6개월 이상 활동 또는 3개월 이상 옥고 등으로 되어 있다.

이렇다보니 원주 지역은 전국에서 의병 활동이 가장 크게 일어났을 뿐 아니라 만세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됐지만 서훈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에 지회는 독립운동을 한 기록이 있지만, 옥고를 치른 기간이 3개월이 채 되지 못하거나 증거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해 서훈을 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도 준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이 받는 혜택은 행사 때 제공되는 점심 한 끼와 상품권 3만원 정도가 전부이지만, 명예회복과 광복회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지회에서 자체적으로 제도를 마련했다. 원래 광복회는 공식적으로 서훈을 인정받은 독립운동가의 후손 중 수권자 1명만 가입할 수 있다.

박장원씨는 “똑같이 독립운동을 했는데, 태형 몇 대 덜 맞고, 옥고 몇 개월 덜 치렀다는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하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 아니냐”며 “누구는 검증이 돼서 작게나마 연금 혜택을 받고 명예회복도 됐는데 누구는 기준이 안 되거나 검증이 안 돼서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정부에서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탁연한 광복회 강원도지부 원주연합지회장은 “선조가 독립운동을 하느라 똑같이 고생하고 어렵게 산 만큼 이 분들도 서훈을 받을 수 있게 문호 개방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으로서는 독립유공자 결정을 일본순사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몇 대 더 때리냐 마냐, 옥에 넣냐 마냐를 기준으로 할 것이 아니라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서훈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정 hjchoi@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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