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 AI 노랫말로 보는 궁 이야기… 새 생명 얻은 궁중악 '보허자'

김소연 2025. 3. 4. 18:0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립창극단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
국립국악원 '행악과 보허자'
궁중악 '보허자' 타이틀로 13일 동시 개막

조선시대 궁중에서 활발히 연주된 악곡 '보허자'가 새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현대 관객과 만난다. '허공을 걷는 자'라는 뜻의 '보허자(步虛子)'는 본래 신선이 품계가 더 높은 상선을 알현하며 불로장생을 기원한 도교의 의식 음악. 고려시대 때 중국 송나라로부터 들어와 고려·조선의 궁중음악으로 수용됐다. 국립창극단은 궁중 이야기를 다룬 창작 창극에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13~20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라는 제목을 붙였다. 국립국악원은 인공지능(AI)으로 노랫말을 지은 '보허자'가 포함된 '행악과 보허자-하늘과 땅의 걸음'(13, 14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을 선보인다.


자유로운 삶 열망하는 창극 '보허자'

국립창극단 배우 김준수가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의 안평을 연기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제공

국립창극단은 셰익스피어 희곡('리어'), 그리스 비극('트로이의 여인들') 등 다양한 소재의 창극으로 팬층이 두껍다. 최근에는 한국적 이야기에 주목하면서 올해 첫 작품으로 수양대군·안평대군 형제를 다룬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를 택했다.

극본을 맡은 배삼식 작가는 세종의 둘째 아들인 조선 7대 왕 세조(수양대군)와 그의 권력욕으로 희생된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했다. 수양대군이 반대파를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한 계유정난 27년 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수양과 안평의 정치 드라마 대신 안평과 딸 무심, 안평의 첩이었던 대어향과 화가 안견의 여정을 중심에 뒀다. 이들은 안평이 꿈에서 본 낙원을 그린 '몽유도원도'를 찾아 떠난다. 배 작가는 "삶이 무참하게 꺾인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담았다"며 "'보허자'라는 제목으로 허공으로 날아 신선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인간의 갈망, 즉 불가능한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창극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의 배삼식(왼쪽부터) 극작가와 김정 연출가, 한승석 작창가. 국립창극단 제공

'변강쇠 점 찍고 옹녀' '귀토' '리어' 등 다수의 국립창극단 작품에 참여해 온 한승석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작창·작곡·음악감독을 맡았고, 작곡에는 젊은 소리꾼 장서윤이 함께 참여했다. 장서윤은 "궁중음악 '보허자' 주멜로디를 활용해 음악을 구성해 이전 창극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극단 연극 '이 불안한 집' 등으로 주목받은 젊은 연출가 김정의 창극 데뷔작이다. 안평은 창극단 간판 소리꾼 김준수가, 안평 곁에 혼령으로 맴도는 수양은 이광복이 맡았다.

국립창극단 '보허자: 허공을 걷는 자'의 수양을 맡은 이광복(왼쪽)과 안평을 맡은 김준수. 국립창극단 제공

챗GPT 노랫말… 국립국악원 '보허자'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행악과 보허자' 공연을 시연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제공

국립국악원의 '행악과 보허자'는 조선시대 왕실의 행차와 궁중 연례악(의례와 연향에서 연주된 곡)의 흐름을 따라가는 공연이다. 국립국악원이 9년 만에 선보이는 행악 공연이다.

조선 왕실의 행차 음악은 행차 여정에 따라 궁을 나서는 '출궁악', 행차 중 연주하는 '행악', 궁으로 돌아오며 연주하는 '환궁악', 환궁 이후 베푸는 연향에서 연주하는 '연례악'으로 구성된다. 이 중 '보허자'는 공연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궁중 연례악으로 연주된다. 국립국악원은 이번 '보허자' 공연에 AI로 창작한 노랫말을 덧입혔다. 3장 구성인 '보허자'는 1·2장만 창사(唱詞·노랫말)가 붙어 있고 3장은 노랫말 없이 선율만 전해진다. 국립국악원은 조선 왕실에서 가장 많은 한시를 남긴 효명세자의 시 350편을 AI에 학습시키고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한시 100여 편을 대조군으로 설정해 새로운 창사를 지었다. 오픈AI의 챗GPT와 메타의 AI 모델 라마를 활용했다. 이건희 국립국악원 정악단 예술감독은 "정악의 외연을 확장하고 연례악의 웅장한 멋을 전하기 위해 가사를 창작했다"며 "70여 명의 가객이 함께 합창해 공연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풍성한 음악적 표현을 위해 행악의 '취타'와 '대취타'에도 변화를 줬다. '취타’에 향비파, 월금 등의 현악기를, 대취타에는 작은 징을 나무틀에 매달아 연주하는 악기인 운라를 편성했다. 입체적 연출을 위해 국립국악원 무용단도 무대에 함께 오른다.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행악과 보허자' 공연을 시연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제공국립국악원 단원들이 '행악과 보허자' 공연을 시연하고 있다. 국립국악원 제공
국립국악원 '행악과 보허자' 공연 중 인공지능으로 지은 '보허자' 3장의 노랫말. 국립국악원 제공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