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만들다 간 질환 얻은 19세... "반도체 특별법 논의 속 일터 안전은 어디에"

최나실 2025. 3. 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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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치권 열 올려 '반도체 특별법' 논의
'산업 맞춤형 고교 지정' 인력 충원 내용도
현장선 '백혈병·간 질환' 잇단 직업병 의혹
"산업 진흥뿐 아니라 안전한 일터 논해야"
회사에서 근무 중 코피가 났는데 2시간가량 지혈을 해도 멈추지가 않아, 반차 내고 병원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 후 복귀했을 때 회사는 걱정이나 안부조차 물어보지 않았다. (독성 간 질환으로) 처음 간 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 드라마, 영화에서 보던 일이 내게 실제 일어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아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수술을 해서 몸이 이런데 나는 이제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어린 나이에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게 실감 나면서 나쁜 생각까지 하게 됐다.
김선우(가명)씨 아버지가 기자회견에서 전한 아들의 말
반올림 등 노동시민단체 관계자들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장 실습생으로 만 18세에 반도체 회사 S사에 입사한 김선우(가명)씨 사례에 대해 '산업 재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반올림 제공

정치권이 최근 '반도체 특별법' 논의에 공력을 쏟고 있지만, 정작 산업 현장에서는 10대 후반이란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한 청소년 노동자들이 백혈병, 간 질환 등 발병 위험에 노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계는 산업 진흥만큼이나 '안전한 일터 만들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과 김용균재단·정의당·녹색당·전국삼성전자노조 등 관계자들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반도체 공장 현장실습생 간 독성 질환 산업재해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유해 화학물질과 위험한 방사선을 취급하는 반도체 산업에서 더 싼 인력, 더 젊고 문제제기하기 힘든 이들로 인력을 채워 산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취업 14개월 만에 '간 녹아내린' 청년

반도체 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이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서 방진복을 입고 죽은 듯 드러눕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반도체 후공정 패키징·테스트 전문 외국계 기업인 S사에 입사했다가 1년 2개월 만에 간 질환에 걸린 김선우(가명)씨 사례를 대표적으로 꼽았다. 선우씨는 고등학교 3학년 만 18세였던 지난 2020년 10월 해당 회사에 입사해서, 간 독성 물질을 포함한 각종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칩 어태치(반도체 칩에 전자기판 부착) 공정에 투입됐다.

입사 1년 차인 이듬해 10월부터 코피, 구토, 졸림 증상을 겪던 그는 그해 12월 급성간염을 비롯한 독성 간 질환을 진단받고, 급하게 간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의 묘사에 따르면 "간이 완전히 녹아내려 형체가 없었다"고 한다.

산업재해 신청을 하자 회사는 선우씨 특수건강진단표상 음주 항목에 '일주일에 1번, 하루 4잔'이라고 표시한 대목을 문제 삼으며 "음주 습관으로 인한 상병(질환)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선우씨가 산재 신청에 필요한 자료들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제출을 거부하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해 5월 "독성 유발 물질을 사용한 사실은 확인되지만 '고농도' 사용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산재 불승인 결정을 내렸고, 이에 선우씨 가족은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환경부 공시에 따르면 S사에서는 365개 화학제품을 사용하며, 이 중에 간 독성 물질은 26개에 달한다. 그러나 일터 내 유해인자를 측정하는 '작업환경측정'은 15개 물질에 한해서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반올림 측 설명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선우씨 아버지는 "노동 약자들은 권리조차 찾기 힘든 상황에서 강압적인 분위기에 눌려, 어찌 대처해야 할지도 몰라, 몸이 아파 힘들어도 참아가며 일하고 있다"며 "노동 약자들을 위한, 근로 환경에 대한 대책 없이는 반도체 특별법을 시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정치권 산업 유해성 간과해선 안 돼"

고(故) 황유미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만 18세,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3년 10월에 입사해 반도체 세정 등 일을 하다 1년 8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2007년 3월 6일 숨졌다. 황유미씨 사건은 국내에서 반도체 공장의 직업병 문제를 처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사진은 지난 2013년 3월 경기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 후문 앞에서 황씨 부친이 6주기 행사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 연합뉴스

노동계는 이 같은 현실이 비단 선우씨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반도체 직업병 사태'의 첫 시작으로 꼽히는 고(故) 황유미(사망 당시 22세)씨도 만 18세에 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가, 입사 3년 5개월 만에 급성 백혈병으로 숨졌다. 삼성전자 1차 협력업체 케이엠텍에서 휴대폰 조립 업무를 하던 이승환씨도 고3 현장실습생으로 취업 후 2년 만에 급성 백혈병이 발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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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41713520001230)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정부와 정치권은 반도체 산업의 유해성을 쉽게 간과하지만 선우씨 사례에서 보듯 빈번하게 화학물질이 바뀌고 너무나도 많은 화학물질이 사용된다"고 밝혔다.

이상현 녹색당 대표는 "반도체 특별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가 반도체 특성화대학 및 대학원, 반도체 산업 수요 맞춤형 고교 지정 등 산업의 발전을 위해 반도체 인력 확보를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있다"며 "반면 노동안전 관련 내용은 빠져 있고, 도리어 노동쟁의를 엄격하게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노동권 침해 소지가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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