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 80주년 ‘이시바 담화’ 두고 쪼개진 日 자민당…왜?
자민당 강경파 “아베 담화로 사죄는 끝…후손에게 사죄 이어져선 안 돼”
(시사저널=박대원 일본 통신원)
제2차 세계대전 패전 80주년을 맞아 일본 정부가 '80주년 담화'를 발표해야 할지, 발표한다면 어떠한 내용이 돼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일본 내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 정부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50주년 담화)를 통해 침략전쟁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표명한 것을 시작으로 10년 단위로 과거사에 대한 반성 및 사죄를 담은 총리 담화를 발표해 왔다.
2005년의 '고이즈미 담화'(60주년 담화)와 2015년의 '아베 담화'(70주년 담화)는 모두 전후 일본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표명하고 있으나, 사죄나 반성의 구체적인 표현 방식에서는 차이가 나타난다. 특히 '아베 담화'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현해온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전쟁과 관련이 없는 자손들, 그리고 다음 세대들에게, 사죄를 계속해야 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아베 담화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로부터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했다는 인상은 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시바 "80주년 담화 내용과 시기 고민"
80주년 담화 발표를 둘러싼 논쟁은 이시바 총리가 1월21일 보도된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후 80주년 담화에 대해 "새로운 담화를 발표할지 말지, 발표한다면 어떠한 내용이 돼야 할지, 언제가 적당할지 등을 검토하고 싶다"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다음 날인 22일, 관저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80주년 담화 발표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방침을 질문하는 등 총리 담화 발표 여부가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하야시 관방장관은 "현시점에서 새로운 담화를 발표할지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연립 여당 공명당의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전후 80년이라는 분기점에 담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화국가를 지향하는 일본으로서 (담화를) 내는 의의가 있다"고 밝히며 총리 담화 발표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후 이시바 총리는 1월29일 일본국제문제연구소 주최의 심포지엄 '도쿄 글로벌 다이얼로그'에 참석해 "올해는 패전 후 80년째가 되는 해다. 일부러 '패전 후'라고 말하는 건 '종전'으로는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기 때문"이라고 발언하며, 과거사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여당 자민당 내에서는 80주년 담화 발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1월30일 "(총리 담화를) 낼 필요가 전혀 없다. 이를 위해 70주년 담화가 있는 것이다"라며 전후 70주년 담화인 아베 담화가 반성과 사죄를 담은 마지막 총리 담화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밝혔다. 아베 담화를 통해 과거사에 대한 사죄 및 반성의 문제는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죄 담화를 발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2월에 들어서도 80주년 담화 발표를 둘러싸고 자민당 내 의견 대립이 계속되었다. 지난 아베 내각에서 방위상을 역임한 바 있는 이나다 도모미는 2월18일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전후 70주년 담화에서 사죄를 끝내고, 100년 후의 일본의 장래상을 제시한 이상 (추가적인 담화 발표로 아베 담화에 내용을) 덧붙여서는 안 된다. 이도 저도 아닌 담화를 내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며 80주년 담화 발표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자민당의 대표적인 보수우파 정치인인 다카이치 사나에와 함께 '아베 걸스'(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가까운 우익 성향의 여성 정치인을 뜻하는 말)로 불린다.
특히 그는 "전쟁과 관련 없는 세대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며 '전후 레짐(체제)으로부터의 탈각'을 내세운 아베 담화의 핵심 내용이 수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야시 관방장관은 "이시바 내각은 역대 총리대신 담화를 비롯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승하고 있다"면서도 "현시점에서 새로운 담화 발표 여부는 결정된 바가 없다"고 발언해 다시 한번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80주년 담화 쓸 '브레인' 부족하단 지적도
80주년 담화 발표를 둘러싼 자민당 내 대립에 대해 구 아베파 소속의 중견급 정치인은 이시바 총리가 자신의 정적이었던 아베 전 총리의 유산을 부정하기 위해 '이시바 담화' 발표를 준비하고 있으며, 구 아베파를 중심으로 하는 자민당 내 보수 성향 의원들이 이시바 담화 발표는 필요 없다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시바 총리가 이르면 5월 중 방중을 계획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이시바가 중국을 방문하게 되면, '아베 담화의 수정'을 요구받게 될 것이라면서 당내에서 이시바 방중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둘기파(유화파)'로 알려지고 있는 이시바가 "직접 담화 내용을 작성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자민당 내 대립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총리 담화를 발표하는 8월에 이시바가 여전히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확실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이시바 총리가 '일본을 전후로 되돌린 총리'라고 불리는 악몽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타나고 있다. 산케이신문 논설위원인 아비루 루이는 아베 전 총리가 2015년 8월14일 전후 70주년 담화를 발표하기 직전에 총리 관저 집무실에서 "전후 사죄외교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으며 '아베 담화' 발표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담화 내용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며 새로운 담화 발표를 통해 아베 담화의 색채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아베 담화는 아베 총리 및 외무성 관계자와 담화 작성 자문기관(학자, 기업인, 언론인 등으로 구성)이 6개월에 걸친 회의 끝에 공들여 작성한 담화문인 데 반해 이시바 내각에서는 이시바 담화 초안을 작성할 수 있을 만한 브레인이 결여되어 있다는 지적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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