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과 탄핵정국을 관통하는 이 소설의 함의

이정현 평론가 2025. 3. 3.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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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문학과 디스토피아
2편 율리 체의 소설 「어떤 소송」
건강 주제로 자유와 통제 되물어
선동가로 전락한 선량한 시민
공포 커지면 독재 가능성 높아져
지금의 탄핵정국과 묘하게 겹쳐

# 독일 작가 율리 체의 소설 「어떤 소송」은 강박적으로 건강을 추구하는 미래의 풍경을 꼬집는다. 소설 속 국가는 모든 사람의 정보를 독점한다. 하지만 여기에 반발하는 세력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국가는 순응하지 않는 인간을 비정상적으로 몰아세운다.

# 「어떤 소송」은 '건강'을 주제로 권력과 자유, 사랑과 통제의 의미를 되묻는다. 팬데믹 이후 계엄령과 탄핵 판결의 시기를 통과하는 지금 이 소설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탄핵정국은 소설 「어떤 소송」 속 사회를 닮았다. [사진 | 뉴시스]

독일 작가 율리 체의 소설 「어떤 소송」의 배경은 모든 질병이 퇴치된 21세기 중엽의 미래다. 미래의 인류는 위생과 청결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 '상테(건강)'라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사람들의 DNA 정보는 태어날 때부터 국가가 독점한다. 국가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겪을 수 있는 모든 질병 자료를 분석해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국가는 정기적으로 모든 거주지를 대상으로 소독을 시행한다. 사람들은 매일 운동을 해야 하고,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흡연도 금지사항이다. 규명되지 않은 세균들이 있을지 모를 강에서 물장구를 치거나 늪지대에 놀러 가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서로 면역 체계가 다른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것은 새로운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선제적 조치다. 정부는 우울증 예방책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생성된 '이상적 애인'과 대화를 나누는 시스템도 제공한다.

주인공인 생물학자 '미아 홀'은 이런 '건강독재사회'에 크게 만족한다. 그녀는 질병의 공포에서 벗어난 대가로 자유가 통제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집착, 질투, 구속, 상실을 반복하는 인간 사이의 불안한 연애보다는 홀로그램인 '이상적 애인'과의 관계가 훨씬 안전하다고 느낀다.

반면 미아 홀의 동생 '모리츠'는 청결과 위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사랑을 지극히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감정놀음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누나와는 달리 모리츠는 '사랑'이란 '자유이며 고요를 깨는 것'이며 '다르게 존재하기' '더 많은 소란을 일으키기'와 동일한 의미로 여긴다. 모리츠는 정부가 금지한 장소인 늪지대로 놀러 가고, 정부가 정한 운동 시간과 방역 시간을 자주 어긴다.

"짐승들과 달리 나는 자연의 구속 위로 고양될 수 있어. 나는 번식할 의도 없이 섹스할 수 있어. 노예처럼 육체에 사슬로 묶인 날 잠시 풀어 주는 물질을 소비할 수 있어. 오로지 도전에 매력을 느껴 생존 본능을 무시하고 위험에 뛰어들 수 있어. …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온전히 결정할 수 있는 충만한 힘을 느끼면서. 자기 삶과 자기 죽음에 대해 말이야. 그게, 사랑이야(소설 중 일부)."

그러던 어느 날, 모리츠가 경찰에 검거되면서 두 남매의 삶은 흔들린다. 모리츠와 교제하던 지뵐레라는 여성이 살해되자 모리츠는 강간 살해범으로 지목된다. 피해자의 몸 안에서 모리츠의 정자가 발견된 것이 결정적 증거였다. DNA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과학수사에 반론의 여지는 없었다.

그럼에도 모리츠가 강력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자 언론이 이 사건을 주목한다. 사람들은 질병과 범죄가 없는 완벽한 사회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긴다. 가십거리로 시작된 언론 보도는 점차 체제를 뒤흔드는 스캔들로 진화한다.

만약 모리츠의 주장이 맞는다면, 시스템의 완벽함을 자랑하면서 국민의 신체와 사생활을 통제하는 국가의 정당성이 흔들린다. 언론은 모리츠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정부는 궁지에 몰린다. 과학수사를 뒤엎는 무죄 증거는 없었다.

그렇지만 모리츠를 서둘러 처벌하면 국민들의 의구심이 증폭할 위험이 있었다. 모리츠는 형량을 줄여주겠다는 정부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신이 신뢰했던 사회에 환멸을 느낀 미아 홀은 변호사를 고용해 동생의 무죄를 입증하는 법정 투쟁을 전개한다.

결국 미아 홀은 변호사 로젠트레더와 함께 모리츠의 무죄를 증명해낸다. 그러나 정부는 건강관리법을 위반했으며 건강법을 불신했다는 이유로 미아 홀을 '반체제 선동가'로 낙인찍는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신뢰했던 정부가 벌인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다. 미아 홀은 자신의 '범죄'를 당당하게 인정하면서 '거부선언문'을 작성한다.

"나는 인간들로 구성됐으면서도 인간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 위에 세워진 사회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내 살과 피가 아니라 정상 육체라는 집단적 환상을 구현해야 한다는 몸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스스로를 건강이라 정의하는 정상성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 나는 문제가 무엇인가는 말하지도 않은 채 자신이 궁극적 답이라고 하는 안전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 나는 오직 위험 없는 삶에 대한 약속에 의지해 인기를 모으는 정치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 나는 스스로를 면역학적 최적화 과정의 산물로 여기는 사랑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나무 위에 지은 집을 '다칠 위험'이라 부르고 반려동물을 '전염 위험'이라 부르는 부모들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 나는 무엇이 내게 좋은지 나 자신보다 더 잘 아는 국가에 대한 믿음을 철회한다(소설 중 일부)."

이 소설의 풍경은 단지 상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방역으로 일상이 마비되고 인구 1000만명이 넘는 도시 우한武漢과 상하이上海가 폐쇄되는 광경을 봤다.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인간의 불완전성은 해소되지 않는다.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교만,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으로 우리는 앞으로 더 치명적인 팬데믹을 겪을지도 모른다. 공포와 불안이 짙어질수록 미래사회에는 독재 체제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지배의 핵심은 지배질서에 순응하는 예속적 주체의 생산에 있다. 체제는 순응하는 인간을 원하고, 그 안에서 권력과 이익을 누리는 자들은 무엇보다 안정을 추구한다. 그들은 안정한 상태, 고요함이 정상이라는 믿음을 심으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건강'의 위치에 '안보'나 '경제발전'을 대입하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지배층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불안을 유포한다. 윤석열 정부는 과연 달랐을까. [사진 | 뉴시스]

지배층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서 '불안'을 유포한다. 이 과정에서 고통과 슬픔은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전락하고,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을 정도로 통제된다.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 '물질'로 파악하고, 육체를 '기계'처럼 인식하던 과학자 미아 홀은 동생을 잃은 후에야 '자유'와 '사랑'에 눈을 뜬다.

다양한 층위의 감정을 가진 인간은 불완전하고, 애매하고, 나약한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은 기꺼이 '강력한 관리'와 '안전'이라는 허구에 지배당한다. 「어떤 소송」은 강박적으로 건강을 추구하는 미래의 풍경을 제시하면서 권력과 자유, 사랑과 통제의 의미를 되묻는다. 팬데믹 이후 계엄령과 탄핵 판결의 시기를 통과하는 지금-여기에서 이 소설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사람은 깜박거려야 해. 주관적, 객관적, 주관적, 객관적. 적응, 저항. 켜졌다, 꺼졌다. 자유로운 인간은 고장 난 전등을 닮았어(150쪽)."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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