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딜’ 미끼 문 젤렌스키… 트럼프 “당신이 가진 카드 없다” [美·우크라 정상회담]

홍주형 2025. 3. 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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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젤렌스키 공개 설전
밴스 “평화 위해서 러와 외교” 말하자
젤렌스키 “무슨 외교 말하는가” 발끈
‘미끼 조심’ 사전 충고에도 언성 높여
EU “자유세계 새 지도자 필요해져”
英, 젤렌스키 환대… 4조원 차관 약속
“佛·우크라와 종전계획 뒤 美와 논의”
러선 “젤렌스키 방미는 완전한 실패”
“미국 국민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이렇게 오래 끌었다.”
거친 논쟁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광물협정 서명을 위한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과 J D 밴스 부통령(오른쪽)이 손을 들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하고 있다. 워싱턴=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공개석상에서 설전을 벌이며 남긴 말이다. 통상 10분 안팎이던 회담 전 공개 모두발언을 50분간이나 한 이유가 함축된 말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레프는 트럼프 대통령과 J D 밴스 부통령이 ‘외교적 매복(diplomatic ambush)’을 꾀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에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젤렌스키 ‘마의 10분’ 넘지 못해

40분간 회담 분위기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그(젤렌스키)의 혐오 때문에 내가 협상을 타결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밴스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은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외교를 하려 한다고 거들자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끈했다. 그는 “J D, 무슨 외교를 말하는 것이냐”라고 따지듯 물었다. 푸틴 대통령이 크름반도를 불법 병합한 이후 체결된 민스크 평화협정을 어겼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자 밴스 부통령이 “무례하다”며 발끈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가세해 “당신이 가진 카드는 없다”면서 자존심을 건드렸다.
주미 우크라대사, 대화 중 고개 푹 정상회담에서 언쟁이 이어지자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마를 짚고 있는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 대사의 모습.X 캡처
젤렌스키 대통령도 복싱 애호가인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크라이나 복싱 챔피언 올렉산드르 우식의 챔피언 벨트를 선물로 가져갔지만, ‘마의 10분’을 견디지 못했다.
친트럼프 인사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액시오스에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 전에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긍정적인 이야기만 하라고 충고했다”며 “미끼를 물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최근 다른 나라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면 어김없이 비위를 맞추는 얘기를 한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불리한 처지에서도 참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한 게 패착이었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없이 러시아 쪽에 기운 휴전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 중 설전 모습. AFP연합뉴스
◆EU “미국은 자유진영 지도자 아니다”

자유진영 동맹국을 공개적으로 면박주고 침공 주범인 푸틴 대통령을 두둔한 트럼프 대통령 태도는 더 이상 미국이 자유 진영의 지도자가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평가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오늘 자유세계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며 “이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은 유럽인들의 몫”이라고 적었다.

유럽은 미국 없이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와 유럽 안보를 어떻게 보장할지 실질적 방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유럽 정상들은 2일 영국 런던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유럽 정상 회의 시작 전 키어 스티머 영국 총리는 BBC와 인터뷰에서 “영국은 프랑스, 그리고 아마도 1∼2개 다른 국가와 함께, 싸움을 멈출 계획에 관해 우크라이나와 협력할 것”이라며 “그러고 나서 그 계획을 미국과 논의하겠다”고 했다. 일부 유럽 국가가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구상을 지지해 유럽의 통일된 목소리가 나올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스타머 총리는 영국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 전후 안보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상당히 느린 속도가 될 유럽 모든 국가의 속도에 맞춰 움직이기보다는 당장 의지의 동맹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 정상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동했다. 워싱턴 회담 파국 직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백악관으로 돌아가라고 했던 스타머 총리지만,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도착하자 환대하는 모습을 언론에 보여주며 사태를 진화하려 애썼다. 두 정상은 양자회담 후 우크라이나에 22억6000만 파운드(약 4조1000억 원)의 추가 차관 제공에도 합의했다. 이 차관은 전쟁 개시 후 영국 내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을 활용해 마련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자금이 우크라이나에서 무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며 “이것이 진정한 정의”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28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웃는 러시아 “젤렌스키는 전쟁광”

러시아는 정상회담 파국에 반색하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네오나치 정권의 수장인 젤렌스키의 워싱턴 방문은 키이우 정권의 완전한 정치적·외교적 실패”라며 “젤렌스키의 터무니없이 무례한 행동은 그가 무책임한 전쟁광으로서 국제사회에 대한 최악의 위협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크레믈궁 의중을 잘 아는 한 소식통은 영국 가디언에 “푸틴 대통령에게 이번 회담은 전쟁 시작 이후 그 어떤 군사작전보다 커다란 승리”라고 전했다.

워싱턴=홍주형 특파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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