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277] 돌 위의 음식

1990년대 서울에서 ‘정글짐’이란 레스토랑이 꽤 인기 있었다. 아래층 베이커리에서 유명한 ‘양파빵’을 개발했고, 이탈리아에서 밀가루를 직수입해 피자를 구웠다. 특히 ‘커피피자’ ‘사과피자’ 같은 디저트 피자의 개념이 신선했다.
정글짐에서 스테이크를 시키면 ‘돈돈’이라 불리는, 불에 달군 동그란 디스크 모양의 돌이 곁에 나왔다. 정글짐의 셰프는 예전에 비프스테이크를 웰던(Well done)으로 시켜놓고는 빨리 안 나온다며 화를 내는 손님한테서 뺨을 맞은 트라우마가 있었다. 이후 일본의 경양식집에서 이 도구를 사용하는 걸 보고 도입을 결정했다. 스테이크는 무조건 레어(Rare)로 제공하고 손님이 취향에 맞게 돌 위에서 굽기를 조절해서 먹는 방법이었다. 이 작은 돌은 손님들이 좋아해서 종종 집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늘 부족해서 새로 구입하곤 했다.

요리에 돌을 이용하는 예는 꽤 많다. 뜨겁게 가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달궈지면 잘 식지 않는 특성 때문에 따듯한 요리에 종종 사용된다. ‘뜨거운 돌(Caldo de Piedra)’이라는 이름의 멕시코 요리가 있다. 전통적으로 가사일로 수고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준비하는 음식이다. 생선, 새우 등의 해물과 고추, 허브를 육수에 넣고 강가에서 주운 조약돌을 뜨겁게 달구어 국물에 넣고 끓여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평평한 돌 위에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비빔밥을 돌솥에 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초 노르딕(Nordic) 음식에서도 돌을 접시 연출에 사용하면서 돌의 사용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조약돌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한입거리 음식이나 바다에서 갓 잡은 해물을 얹는 방법이다. 과거 생선회를 무생채 위에 올리던 일식집에서 근래에는 차가운 돌 위에 얹어서 제공하는 경우도 꽤 있다.
제주도의 고깃집 ‘몽탄’에서는 돌이 많은 지역 특성을 영감으로 음식을 돌접시에 담고 있다. 조리를 하지는 않지만 돌을 장식으로 사용하는 건 자연재료의 물성(物性)을 좋아하는 ‘휘게’의 트렌드를 타고 부쩍 증가했다. 주변에서 흔하고 평범한 재료로 간주되던 돌이 조리와 음식 연출에 꽤 큰 기여를 한 셈이다. 그리고 이 돌들은 대부분 재활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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