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3·1절 106주년' 편성까지 흔들며 '추적60분' 결방 무리수

노지민 기자 2025. 2. 2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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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 계엄의 기원'편 편성 삭제 파문
KBS가 밝힌 편성 삭제 이유는 "3·1운동 되새기는 계기"
3·1절 특집 다큐 제작진도 "어이가 없다"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2025년 2월28일 KBS 추적60분 편성삭제에 항의하는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 및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KBS가 극우 집단의 허위정보 확산을 다룬 '추적60분'을 결방시킨 이유로 '3·1절 기획 다큐 편성'을 들었다. 정작 3·1절 106주년 당일 내보내기로 한 다큐를, 고정 편성물을 삭제하면서까지 하루 앞당겨야만 했던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내부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앞서 '추적60분' 제작진은 KBS 사측이 27일 오후 △3·1절 특집 다큐를 하루 앞당기고 싶다 △추적60분이 토요일(3월1일) 탄핵 반대 집회 세력을 자극해 KBS가 물리적으로 위협 받을 수 있다 등 이유로 28일 예정된 '추적60분-극단주의와 그 추종자들: 계엄의 기원 2부' 편성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참여자와 음모론을 기사화한 기자가 주고 받은 130여 건의 통화녹음 원본을 단독 입수해 분석한 내용 등이 담긴 회차였다. 추후 방영 시기는 불확실하다.

KBS 사측은 편성 삭제 이유에 대한 28일 본지 질의에 “KBS는 내일 3·1절을 앞두고 오늘 밤 10시 '다큐온 3·1절 기획-잊혀진 독립운동가 태극기'를 편성했다”며 “'잊혀진 독립운동가 태극기'는 태극기가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태극기가 걸어온 항일 독립 운동사를 담아낸 수작”이라고 했다.

KBS는 이어 “KBS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태극기를 배경으로 마지막 사진을 남겼던 독립 투사들의 이야기, 1945년 조국 광복의 날에 광화문을 물들였던 태극기,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태극기를 돌아보며 시청자들에게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이에 따라 2025년 2월28일 밤 10시 편성된 '추적 60분'의 편성은 순연되었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3·1절 특집 다큐온은 3·1절 106주년 당일인 3월1일 오전 11시에 방송된다고 예고편까지 나간 상태다. 지난 27일 유튜브 'KBS 다큐' 채널에 게시된 예고편 영상에도, 해당 다큐 예고편을 공유한 SNS 게시글 등에도 기존 방영일자가 남아 있다. “3·1운동 의미”를 중시한다는 사측이 정작 3·1절 기획 편성일을 하루 아침에 바꾼 것이다.

▲2025년 3월1일 3.1절 106주년 오전 11시 방송되기로 했던 다큐온 3.1절 특집 예고편 갈무리

이 같은 사측 입장에 다큐온 담당 PD도 “결코 추적60분 편성 순연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추적60분과 다큐온 3·1절 기획이 '수작'이든 아니든 원래 편성 시간에 나가는 것이 순리이다. 공영방송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PD는 사측 입장이 공개된 뒤 사내 게시판에 “다큐온 3·1절 기획은 3·1일 경축식 바로 뒤인 오전 11시 방송 예정이었다. 원래는 다큐온 정규방송 시간이 밤시간인데 편성에서 요청해 제작진이 오케이(OK)한 것이다. 그래서 원고의 시제에 '오늘'이라는 표현이 몇 번 들어간다”며 “추적60분의 정확한 연기사유와 추적 제작진의 사정을 모른 상황에서 편성(담당 부서)에서 금요일 추적 시간에 낼 수 있냐고 연락이 왔을때, 당연히 문제와 우려를 표했다”고 전했다.

해당 PD는 이어 “이후 이곳저곳에서 추적60분 사태를 알려주었고 심지어 입고도 되지 않은 프로그램이 '아주 잘 만들어져서' 추적시간에 나간다는 말을 듣고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오후 7시경에 입고된 프로그램을 보지도 않고 평가할 수 있나”라며 “추적60분 제작진에게 동료 PD들에게 그리고 시청자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저는 사측의 해명과 그간의 사정을 알고서는 결코 추적60분 편성 순연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전날 편성 삭제 결정을 통보 받은 추적60분 제작진은 28일 오전과 점심시간을 활용해 피켓 시위를 이어갔지만 사측의 입장 변화는 없었다. KBS 다수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요구한 긴급 공정방송위원회(공방위) 개최도 사측 거부로 열리지 못했다. KBS본부에 따르면 사측은 “본 사안은 편성 책임자의 고유 권한인 방송 편성권”이라고 주장했다.

KBS본부는 관련 성명에서 “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부터 제작자들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송법의 규정을 오히려 제작진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뻔뻔한 태도에 기겁할 따름”이라며 “사측의 주장은 단체협약, 나아가 편성규약을 철저히 무시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방송법에 근거해 제정된 편성규약은 실무자의 제작 자율성과 권리 행사 방안 등을 규정하고 있다.

KBS본부는 사측이 추적60분 관련 긴급 공방위 외에도 △비상계엄 당일 KBS 생방송 관련 △시사기획창 '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관련 △내란 사태 관련 후속 보도 부실 및 누락 △사사건건 앵커 부정선거 음모론 옹호 논란 등에 대한 정례 공방위 또한 사실상 거부했다고 전했다.

▲2025년 2월28일 KBS 추적60분 편성삭제에 항의하는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 및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2025년 2월28일 KBS 추적60분 편성삭제에 항의하는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 및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 사진은 박상현 KBS본부장. 사진=언론노조 KBS본부

KBS PD협회도 이날 “비상식적이고 어이없는 이번 결방 조치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부정선거 논란을 다룬 지난주 '추적60분, 계엄의 기원 1편'은 시청률 6%를 기록했다. 최근 몇 년간의 '추적60분' 방송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거웠기에 2편에 대한 기대 또한 높았다”고 짚었다.

'추적60분이 방영되면 KBS가 물리적 위협을 당할 수 있다'는 취지의 사측 주장을 두고는 “방송에 대한 위협을 가하려는 세력을 막아야 하는 것이 회사의 역할 아닌가. 하지만 지금 회사는 방송을 막아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 PD협회는 이어 “사측은 '추적60분' 편성 삭제의 명확한 이유는 무엇이며 누가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명확히 밝히길 바란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특정 세력의 위협에 방송을, 그것도 정규 방송을 결방시키려는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제작진, 그리고 모든 협회원과 함께 오늘 추적60분이 제대로 방송될 수 있도록 싸울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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