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복의 일상 그 너머] 12. 아련한 유선전화의 추억
설은아 작가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강릉시립미술관 전시 전화 추억 회상
공중전화 콜렉트 콜 하루 100만명 사용
의사소통 취약 유선전화 세대 일화 다채
휴대폰 21세기 생활 문명 중심 장악
단순 통신수단 넘어 고성능 PC 역할
금융사기·파손·과소비 등 손실 따라
가족 간 대화 단절·갈등 주범 대두

세상에 문명의 이기(利器)라는 게 많고 많지만 전화야말로 그중 손꼽히는 물건이 아닐까 싶다. 전화가 없던 시절 멀리 떨어진 친지와 소통하려면 손수 쓴 서신을 인편이나 배달부의 다리 힘에 의존해야 했다. 해외까지 전달하려면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야 했다.
전선으로 음성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1876년 미국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이런 기계를 발명하면서 천지가 개벽했다. 최초 통화는 그가 조수 왓슨에게 간단히 안부를 묻는 내용이었다. 그 후 가정이나 사무실에 편히 앉아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일상이 가능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바깥에서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1889년 미국의 윌리엄 그레이가 최초로 동전 투입식 공중전화를 개발해 냈다.
전화 얘기를 꺼낸 건 얼마 전 강릉 시내를 돌아다니다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라는 강릉시립미술관 전시(2025년 2월 5일~3월 30일) 포스터와 조우하면서다. 한번 가 봐야지, 하다가 지난주 미술관을 찾았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제목이 풍기는 쌔~한 느낌이 휑한 공간에 가득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아날로그 벨소리가 나에게, 당신이라도 받으라는 강박을 안긴다.
“차마 말하지 못해 부재중 통화가 되어버린 이야기, 당신에게도 있나요?” 작가 설은아 씨는 이렇게 관람객에게 묻는다. 그 질문에 없다고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시실 한쪽에는 시대의 유물이 된 공중전화 부스가 있다. 누군가 그 안에 들어가 전화를 걸면 음성기록으로 남는다.
작가가 6년 전부터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 남겨진 이야기는 무려 13만 통. 대부분 애잔하거나 안타깝거나 가슴 아픈 내용들이다. 명사로 열거하면 그리움, 원망, 후회, 고통, 침묵 등등이다. 주인을 못 찾아 오랫동안 방황하던 이야기를 모아 작가는 ‘세상의 끝’에 가서 풀어놓는다. 가상의 공간인가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작가가 선택한 그곳은 아르헨티나의 최남단 우수아이아, 이집트 사하라 사막, 아이슬란드의 장엄한 대자연 등이다. 무정한 기계 속에 갇혀 있던 사연들은 그곳에서 무한한 자유가 된다. 전시는 그 퍼포먼스를 영상에 담아 다시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온갖 스토리를 생산하던 공중전화는 요즘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휴대폰 세상이 열리면서 소멸 일보 직전이다. 공중전화는 눈에서 보이지 않으면서 이제 마음에서도 멀어진 것일까. 필자 세대는 누구나 공중전화와 관련된 일화를 몇 개쯤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여보세요? 나야, 끊지 마”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겐 ‘콜렉트 콜’이라는 용어는 매우 생소할 게다. 급하게 연락해야 하는데 돈이 없을 때 공중전화로 가서 ‘콜렉트 콜’을 신청한다. 학생들이나 군인들이 주로 이용했다. 발신자가 전화를 걸면 전화 회사는 누가 전화를 거는지 수신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몇 초 시간을 준다. 이때 발신자는 끊지 말라고 매달린다. 전화회사가 수신자에게 요금이 얼마인지 안내하고, 그가 수락하면 통화가 연결된다.
콜렉트콜은 2000년대 들어서도 인기였다. 휴대전화로도 이 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더 인기를 끌었다. 많을 땐 하루 100만 명이 사용할 정도였다. 회사원들은 무선호출기(삐삐)로 상사의 연락을 받고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부스마다 길게 줄을 서 10분 이상 기다려야 통화가 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앞 사람이 하도 길게 통화해 좀 빨리 마치라고 독촉하다 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용건을 다 전하기도 전에 동전이 부족해 전화가 끊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통화를 마쳤는데 전화기에 돈이 몇십 원이라도 남게 되면 수화기를 걸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는 미덕도 널리 퍼졌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없어 의사소통이 매우 취약하던 그 시절, 많은 일화가 다 생겨났다. 그중 꽤나 회자했던 스토리가 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일이 터져 1시간 남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남자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마침 집에서 뒹굴고 있던 그를 대신 내보낸다. 자신의 급박한 사정을 여자친구에게 잘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그런데 그렇게 만난 둘이 친해지고 짝꿍까지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금은 군대에도 휴대전화가 반입되고 초등생도 하나씩 갖고 다닐 정도가 됐으니 이런 소동은 옛날 일이 돼 버렸다.
요즘 공중전화는 휴대폰 없는 외국인 노동자나 노숙인 등 소외계층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공중전화보다 더 조용히 자취를 감춘 게 집 전화다. 가족이 저마다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니 집 전화는 스스로 존재 이유를 잃고 말았다.
그렇게 휴대폰은 21세기 생활 문명의 중심을 장악했다. 이 물건은 단순한 통신수단이 아니다. 한마디로 손 안의 고성능 PC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다. 밤하늘 별을 선명하게 찍는가 하면 차량 내비게이션은 물론 알람시계나 메모장으로도 사용할 수도 있다. AI(인공지능) 기능을 장착하면서 외국어 동시통역사가 되고, 비서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하지만 해프닝과 사고는 유선전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장 심각한 사고는 전화나 문자를 이용한 금융사기다. 별의별 수법이 횡행하며 개인적, 사회적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난 당하거나 분실하면 다들 망연자실이다. 그 안에 모든 전화번호가 들어있고, 사진과 문자, 은행계좌 등 온갖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떨어뜨려 액정을 깨트리는 일도 흔하다. 액정이 깨지면 먹통이 된 거나 마찬가지다. 꼼짝없이 교체해야 하는데 큰돈이 든다.
그것보다 더 큰, 다수가 간과하는 큰 손실이 있다. 휴대폰이 가족 간 대화를 뺏어가는 주범이 되었다는 점이다. 오래간만에 외식한다며 식당에 간 가족들이 침묵을 금으로 여긴다. 다들 제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탓이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는 가방에서 아이용 휴대폰을 꺼내 틀어주고 각자 문자 주고받기에 바쁘다.
이런 모습은 집에서도 비슷하다. 그 탓에 밥상머리 교육이란 말은 거의 사어(死語)가 되어 버렸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가 자녀와 가장 자주 다투는 문제도 휴대폰 과소비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더없이 긴요했던 유선전화가 가고 난 자리에 가정의 갈등이 자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심상클래스 대표 simba3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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