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명화산책] `점`으로 新인상주의 연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오후`

강현철 2025. 2. 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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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논설실장
조르주 쇠라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캔버스에 유화. 207.5 × 308.1 cm. 1886년. 미국 시카고 미술관 소장. [위키피디아]
'아스니에르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1884)
'모델들' (1886 ~1888)
'서커스' (1890 ~ 1891)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 1859 ~ 1891)는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 창시자로 꼽힌다. 인상주의의 빛의 분석 기법을 따르면서도 인상주의를 넘어섰다.

그는 인상주의가 지나치게 빛에만 얽매인 나머지 형태에 소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원색을 색깔별로 분리해 한 치의 오차없이 병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가 '점묘법'(點描法)으로 불리는 새 화법을 개발해낸 계기다. 그의 관심은 그림의 내용보다 형식에 있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Un dimanche apres-midi a l'Ile de la Grande Jatte·A Sunday on La Grande Jatte)는 점묘법을 활용한 그의 대표작이다.

미술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신인상주의의 기원이 됐으며, 후에 등장하는 반 고흐와 야수파, 미래파, 큐비즘이나 추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남겼다.

이 작품은 1886년 8번째이자 마지막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됐다.

그랑드 자트는 파리 북서쪽 센강에 있는 섬으로, 지금은 자트로 불린다. '자트'는 프랑스어로 장식용 대접을 뜻하는데 섬 모양이 대접 같아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모네나 고흐, 시슬레 등 인상파 화가들이 자트 섬을 소재로 여러 그림을 남겼다. 쇠라의 그림은 그랑드 자트 섬에서 맑게 개인 여름 하루를 보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표면은 불연속적이며, 물감은 순수한 색점의 형태로 캔버스에 칠해졌다.다양한 색채와 빛, 그리고 형태들을 점으로 일일이 찍는 점묘 화법을 통해 꼼꼼하게 표현했다. 화학자 슈브뢸과 비평가 샤를 블랑의 색깔 이론과 광학 이론에 따라 원색의 작은 점들을 캔버스에 찍어 작업했다. 멀리서 보면 이 점들은 함께 섞여져 밝은 색채로 된 마법같은 안개를 만들어낸다.

207.5 × 308.1 cm의 대작으로 48명의 인물과 8대의 보트, 강아지 3마리, 원숭이 1마리가 그려져 있다. 여인들은 대부분 모자나 양산을 쓰고 있으며, 모두 강쪽을 바라보고 있는 옆모습으로,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앞쪽으로 걸어오는 엄마와 아이, 장난치는 개들과 원숭이, 낚시하는 여인, 트럼펫을 불거나 담배를 피는 남자, 우아하게 차려 입은 남녀, 원숭이를 묶은 줄을 손에 잡고 있거나 낚시하는 여성, 강을 바라보는 두명의 남성 등 그림 안에는 여러 풍경들이 있다. 중산모를 쓰고 그늘에 앉아 있는 남성의 옷차림은 당시 유행했던 것이다. 인물들은 얼어붙은 듯 움직임이 보이지 않으며 무표정하게 그려져 있어, 배경의 밝은 분위기와 상반되는 차가운 느낌을 준다. 형태에 따라 곡선, 가로, 세로, 대각선 등으로 그려진 점 혹은 작은 선들 덕분에 무한히 퍼져가는 빛의 흐름과 공기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쇠라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2년에 걸쳐 매일 그랑드 자트 섬을 찾아 유채물감으로 70점 이상의 예비 스케치와 드로잉 등 습작을 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같은 시간대에 같은 장소에 있던 적이 없다. 매우 오랜 시간동안 같은 장소에서 여러 사람을 보고 자신의 그림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사람들을 선정해 위치를 배정하고 어울리는 색으로 옷을 그렸다. 가로 3미터 세로 2미터의 큰 화폭에 수백만개의 점을 일일이 그려 넣는 것만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작품의 인물들은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벽화의 인물 군상을 참고했다.

쇠라는 점묘법(pointillism), 분할주의(divisionism)로 '신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창시한 19세기 후반의 가장 독창적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색채광선주의(chromoluminarism)로도 불린 점묘법은 붓질이 아닌 원색의 많은 점으로 형태를 구성하는 기법이다. 점을 찍는다고 하여 '점묘법', 또는 색을 분할한다고 해 '분할주의' 로 불렸다. 이 기법은 색채를 원색으로 환원해 무수한 점으로 화면을 구성, 빛의 합성을 이용한다. 보색 관계의 점을 찍어 바라보는 관람자의 시선에는 색채가 합쳐져 보인다. 원색의 순도가 유지돼 강하고 밝은 색채를 느끼게 한다. 쇠라는 점묘법을 통해 인상주의의 색채 원리를 과학적으로 체계화하고, 인상주의가 무시한 조형 질서를 다시 구축하려 했다. 색을 분할하는 점묘법에 의해 더욱 밝고 강렬한 색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생각처럼 그림 전체는 시각적으로 부드럽게 연속되는 선과 색조를 이루고 있다.

비평가인 펠릭스 페네옹(Felix Feneon)은 1886년 이런 기법에 의한 시각적 효과를 인상주의와 구별, '신인상주의'라 명명했다. 쇠라는 "사람들은 내 그림에서 시를 느낀다고 하지만, 나는 오직 과학만을 봤을 뿐이다"고 했다. '과학자로서의 화가' 정신을 나타낸 말이다.

'그랑드 자트'는 후에 연극 소재로, 공원 설계 아이디어로, 상품 디자인 모티브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의 뮤지컬 '조지와 함께 한 일요일 공원에서'(Sunday in the park with George, 1984)도 이 그림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그랑드 자트'는 쇠라의 점묘법을 유명하게 했지만, 혹평이 적지 않았다. 비평가들은 점묘법으로 그려진 사람들의 수직적이고 경직된 모습을 조롱하며, 고대 이집트 무덤 벽화 속의 인물들이나 양철 병정들에 비유했다. 피사로만이 적극 지지했을뿐 모네 르누아르 시슬레 등 인상파 화가들은 그를 비난했다.

쇠라는 1859년 파리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법률가였다. 늘 흐트러짐이 없고, 중절모에 잘 다려진 양복을 입었다. 이지적이고 말도 별로 없어 '공증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30 평생을 거의 파리에서만 살았다. 화가로 활동기간은 10년 정도에 불과, 남긴 작품도 몇점 안된다.

그림 기법에 있어 화학자 미셀 외젠 슈브뢸(Michel Eugene Chevreul), 비평가 샤를 블랑(Charles Blanc), 물리학자 오그던 루드(Ogden Rood)의 광선과 색채에 대한 이론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모든 색은 이웃하는 색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물감은 섞을수록 탁해져 빛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인상파 고민의 해답을 쇠라는 이들에게서 찾았다.

쇠라는 시각적으로 보는 색은 주위의 배색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물감을 섞으면 색이 탁해지나, 광선을 혼합하면 오히려 밝아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런 시각적 보색 대비 효과 등을 감안, 색깔을 작은 점으로 나누어 모자이크처럼 화폭에 정교하게 찍어 그리는 독특한 그림 기법을 창조했다.

시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배웠으며, 1878년 명망 높은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 입학했다. 1879년 군에 입대해 1년을 복무한 후 파리에 돌아온 쇠라는 1883년 파리 살롱(Salon)전에 처음 그림을 출품했다. 1884년 '아스니에르 강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Bathers at Asnieres, 1884)을 출품했으나 낙선했다.

파리 근교의 강가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고 있는 시민을 그린 이 그림은 '그랑드 자트'와 한 쌍을 이루는 작품이다. 크기도 비슷하다. 점으로 표현한 바랜듯한 색깔, 부동(不動)의 인물들이 기이한 느낌을 준다. 아스니에르 강변 오른쪽 섬이 바로 그랑드 자트 섬이다. 두 그림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강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아스니에르'는 쇠라의 사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다.

쇠라는 주류 화단에 반발하는 폴 시냑(Paul Signac) 등 다른 화가들과 함께 1884년 7월 '독립화가협회'(앵데팡당· Societe des Artistes Independants)를 만들고, '앵데팡당 전'을 정기적으로 열었다. 쇠라의 점묘법은 시냑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시냑은 점묘법을 자기 스타일로 발전시켜 신인상주의에 합류했다.

쇠라는 1884~1886년 두번째 대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를 그렸으며, 1886~1888년에는 세번째 대작인 '모델들'(Les Poseuses·Models)을 선보였다.

이어 1888년 '서커스 사이드쇼'(Parade de cirque·Circus Sideshow), 파리의 카바레에서 캉캉춤을 추는 무용수를 그린 1890년 '캉캉춤'(Le Chahut ·The Can-can)을 연달아 그렸다.

쇠라는 마지막 대작인 '서커스'(Le cirque ·The circus, 1891)를 미완성으로 남긴채 1891년 병에 걸려 3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1882~1891년까지 단 여섯점의 대작만 남겼다. 폴 시냑은 "쇠라는 너무 일찍 갔으나 그 짧은 동안 그는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했다.

그의 사후 어머니가 '그랑드 자트'를 미술관에 기증하려 했으나 작품의 가치를 모른 미술관은 거절했다. 몇년 후 프랑스의 한 수집가가 800프랑(약 9만5000원)에 구매했으며, 그후 미국인 프레데릭 바틀릿이 2만프랑에 다시 샀다. 그는 시카고 미술관장에게 "프랑스 최대 걸작을 내가 얻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편지를 썼다. 시카고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것은 1924년으로, 이후 시카고의 상징이 됐다.

미술평론가 정연복씨는 "쇠라의 그림속 인물들은 예외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모두 고독하고 공허해 보인다. 환하면서도 창백한 빛무리 속에서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 것 같다. 전통사회의 와해에서 비롯된 현대인의 삶과 닮았다"고 평가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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