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에 묶인 런닝맨·1박2일·놀면뭐하니…넷플릭스 상대 어렵다?

박재령, 금준경 기자 2025. 2. 2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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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주년 기획-미디어 리모델링] (07)
포괄적인 심의규정 탓에 알아서 위축되는 방송사들
유튜브·넷플릭스와 TV 구분 모호해 '기울어진 운동장'
"법원 판례 등 사례 쌓아 구체적 가이드라인 제시해야"

[미디어오늘 박재령, 금준경 기자]

▲ 20일 유튜브 '김종국 GYM JONG KOOK' 갈무리.

런닝맨 PD : 방심위 또 얼마 전에 다녀왔어요. 그 세븐틴 나왔을 때 '글러먹은 근본 알아본 선생님'이라는 자막이 차별을 나타낸다고 반성문 쓰고.. 이번에 세 프로그램이 한 번에 모였대요. '놀면 뭐하니', '1박2일', '런닝맨'.

김종국 : 당연히 우리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주말 예능이고, 재미를 위해서는 넓게 예능을 봐주시면 좋지 않을까. 개인적인 바람은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재미는 있을 것 같으니까요.

지난 20일 유튜브 '짐종국'에 출연한 런닝맨 PD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지난 1월 SBS '런닝맨', MBC '놀면 뭐하니', KBS '1박2일'에 모두 규정 위반으로 행정지도 '권고'를 의결했다. 적용조항은 방송심의 규정 51조 '방송언어'였다.

콘텐츠 플랫폼으로서 TV와 OTT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가운데 두 플랫폼의 규제 간극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내용규제 차원에서 방송언어·품위유지 등 심의규정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방송사들이 알아서 위축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파격적인 걸 하기 위해선 OTT로 가야 한다'는 현실도 드러났다. 앞선 불만을 지속적으로 표출하다 방송사를 떠나는 PD들이 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맥주를 깠습니다”가 과격한 표현인 방심위

방심위는 2023년 10월 <부적절한 방송언어 바로 잡는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예능오락 프로그램에서 무분별한 비속어신조어, 과도한 줄임말 사용 등으로 인한 우리말 훼손이 심각하다고 판단”된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강도 높은 모니터링을 예고”했다.

▲ 방심위 '꼰대' 심의 및 지적 사례와 방송 자체심의. 클릭하시면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픽=안혜나 기자

이후 지난 2월 방심위 방송언어특별위원회가 '청소년 청취자 대상 라디오 프로그램의 방송언어 사용 실태 조사'를 내놨다. 과격한 표현 사례로는 “언니랑 맥주를 깠습니다”, “좀 빡칠 것 같긴 해요” 등이, 예의에 어긋나는 표현으로는 “고학력 헛소리 잘 들었습니다”, “야한 꿈 꾸세요” 등이 제시됐다. 언어특위는 “~것 같아요” 역시부정확한 표현이라며 “본인의 감정마저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젊은 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발화적 특징”이라고 했다.

부적절한 방송언어를 지적하는 심의위원들의 연령 구성은 어떻게 될까. 지난해 7월 임기를 시작한 6기 방심위원은 3명인데 모두 60대 남성이다. 방송언어특위 역시 대부분이 경력이 오래된 변호사 혹은 교수다. 미디어오늘이 2023년 역대 방심위원의 프로필을 전수조사한 결과 총 56명의 심의위원 중 45명이 50대 이상이었다. 여성도 10명에 불과했다.

일본어 가사를 일본어 가사로 내지 못하는 현실

지난달 12일 SBS '인기가요'에 출연한 아이돌 보이넥스트도어의 무대가 일본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노래 '오늘만 I LOVE YOU'의 가사 중 일본어 가사인 '아이시테루'(愛してる)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방송에선 'I want you'로 바꿔 나왔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보이넥스트도어 소속사 측은 방송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일본어를 영어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 1월 SBS '인기가요'에 출연한 아이돌 보이넥스트도어.

일본인 부캐 '다나카'를 연기하는 개그맨 김경욱씨는 2023년 KBS '박재범의 드라이브'에 출연해 일본어 노래 '와스레나이'(忘わすれない)를 불렀다. 하지만 방송에서 '히라가나'는 등장하지 않았다. 노래 소개 때는 한국어, 가사에선 영어로 바뀌었다. 뉴진스도 'Supernatural'과 'Right Now' 등 일본 음반의 한국 활동 당시 일본어 가사를 한국어로 바꿨다.

방송심의규정에 일본어가 명시적으로 금지된 건 아니다. 다만 방송사들이 규제 당국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자체적으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 방송사 PD는 “개인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대중문화 개방(김대중 정부)이 선언된 지가 20년이 넘었다. 가수가 쓰고 싶으면 그대로 써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튜브 대신 너튜브? '모두 다 아는 상호인데'

방송을 보다 보면 가끔 무의미한 '상표 가림'이 나온다. 모두가 다 아는 '유튜브'도 '너튜브'로 쓰는 것이 관행이다. 지난해 tvN '유퀴즈 온더 블록'에 프로야구 기아타이거즈 선수들이 출연했을 때는 '기아'에서 '기'만 언급하고 '아'는 별 모양으로 처리됐다. 결승 상대였던 삼성라이온즈도 '삼X'로 나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반응이 나왔다.

2023년 8월 한 SBS 시청자위원(이철호 서강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대우교수)이 “유튜브를 X튜브 혹은 너튜브라고 말한다든지, 모두 다 아는 명품 이름이나 상호를 앞 글자 하나만 X로 처리한다든지 하는 문제는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SBS 편성국장은 “방심위에서 특정된 상호명 등을 (광고효과를 우려하여) 방송에서 사용 못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방심위에 얘기 좀 해주셔서 변화가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2024년 기아타이거즈 선수들이 출연한 tvN '유퀴즈 온더 블록' 갈무리.

이는 대부분 모호한 심의 규정 탓에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위축된 결과다. 방송심의 규정 46조 '광고효과'에 따르면 명시적으로 '유튜브' 등 언급을 금지한 건 아니다. 다만 “상품 등 또는 이와 관련되는 명칭·상표·로고·슬로건·디자인 등을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내용”은 제재 대상으로 규정되고 있다. 급기야 KBS '개그콘서트'에서는 이 같은 심의를 풍자하는 코너가 등장하기도 했다.

방심위는 '너튜브', '인별그램'처럼 사실상 무의미한 표현은 규제 대상에서 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미디어오늘 질의에 원론적인 답변을 보이는 데 그쳤다.

“방심위는 특정 사업자 및 특정 사업자의 제공 서비스에 대한 상표 노출, 이에 따른 광고효과를 비롯하여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비속어, 은어, 저속한 조어 및 욕설 등에 대해 방송심의규정의 방송언어, 품위유지 등 규정을 적용하여 심의하고 있으며, 방송에서의 한글 파괴와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 등을 우려하는 의견도 많은 상황임. 사안별로 노출의 정도, 방송 프로그램의 유형 및 노출의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심의를 수행하고 있음.”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가 다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

방송심의 규정 28조(건전성)에 따르면 방송은 음주, 흡연, 사행행위, 사치 및 낭비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규정에 따라 방송사는 흡연 장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있다. 음주 장면은 상대적으로 재량이 인정되지만 '청소년보호시간대'에 방영됐다는 이유로 규정 위반 판단을 받기도 한다. 방심위에서 법정제재를 받은 E채널 '노는언니'(2021년)과 SBS '미운오리새끼'(2018년)가 그 사례다.

방송심의 규정에 따르면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는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오후 1시부터 10시까지다. 유료채널의 경우 18시에서 22시까지가 적용된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청소년에게는 사실상 무의미한 규정이다.

흡연·음주는 유해성이 명확한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에도 무분별하게 나오는 것은 문제다. 다만 플랫폼별 구분이 갈수록 무의미해지는 상황에서 특정 플랫폼만 흡연·음주 장면이 나오지 못하도록 한다면 형평성의 문제가 생긴다.

▲ 2024년 9월 박재범이 출연한 MBC '라디오스타' 갈무리.

문신 노출도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 영향을 받는다. 방송심의 규정 45조의2 '청소년유해매체물의 방송'에 따르면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이 방송되지 못한다. 청소년유해매체 기준에 '문신'이 언급되진 않는다. 이외에 방송심의 규정 27조 '품위 유지' 또한 간접적으로 문신 노출을 제한한다.

2018년 타투를 강조한 가수 박재범의 현대자동차 광고 당시 이를 심의한 광고자문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심의규정 위반에 대해 5:5로 엇갈린 입장을 냈다. 심의규정 위반을 주장한 위원들은 △타투를 과도하게 노출해 불쾌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모방할 위험이 있다는 등의 입장을 냈는데 결국 이에 따라 방심위에서 행정지도 '의견제시'가 이뤄졌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심의 규정”

지상파 측 관계자는 24일 통화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심의 규정”이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정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시장에서 자정 활동이 이뤄진다”며 “웬만한 건 자율규제 시스템으로 두고 방심위는 예상치 못한 큰 문제가 생기는 때에만 사후적으로 구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미선 순천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MBC 시청자위원장)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법원 판례 등 과거 사례를 쌓아 (방송을) 해선 안 되는 행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대신 위반하게 되는 경우 규제를 강하게 한다. 회사가 큰 타격을 입을 정도의 페널티도 있다”고 해외 사례를 전했다.

심 교수는 “우리나라는 (글로벌 추세와) 정반대다. 해외는 차별, 혐오 표현 등 윤리적 문제에 대해 규제가 센데 한국은 약하다”며 “이런 부분은 (규제를) 강화하면서 오락, 예능 쪽의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지적했다.

방송사를 제재하려는 규제기관의 '권위적' 태도도 문제로 꼽힌다. 한 방송사 PD “'심의'란 단어의 뜻은 같이 심사숙고해서 논의하자는 건데 지금 방심위는 '준사법부'처럼 행세한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태도로 괘씸죄를 묻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작의 영역을 규제하는 건 정말 조심해야 하는데 언어의 특성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비전문가들이 심의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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