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아름답고 잔혹한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3월2일 열린다.
총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의 불안한 삶과 아메리칸 드림의 명암을 장엄하게 그려낸다.
뉴욕항에 들어설 때 라즐로의 시야에 제일 처음 들어온 건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이다.
이때 라즐로의 아내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의 편지가 소개되는데, 자유에 관한 괴테의 말이 짧게 등장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3월2일 열린다. 올해 작품상 수상작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영화는 ‘브루탈리스트’다. 총 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에 정착한 이민자의 불안한 삶과 아메리칸 드림의 명암을 장엄하게 그려낸다. 참고로 총 상영 시간은 215분이다.
홀로코스트에서 탈출한 헝가리 출신 건축가 라즐로(애드리언 브로디)는 어렵게 자유의 땅에 도착한다. 뉴욕항에 들어설 때 라즐로의 시야에 제일 처음 들어온 건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이다. 이때 라즐로의 아내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의 편지가 소개되는데, 자유에 관한 괴테의 말이 짧게 등장한다. “자유롭다는 착각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노예 상태다.” 이제 막 자유의 몸이 된 인물을 비추며 들려주기엔 이상한 문장이다. 의도된 인용이다. 문득 자유에 관한 또 다른 문장이 떠오른다. 19세기 미국의 인종차별을 다룬 소설 ‘워터댄서’에서 작가 타네히시 코츠는 이렇게 썼다. “자유로워지는 건 시작일 뿐이야. 자유롭게 사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지.” 자유의 몸이 된 라즐로에겐 ‘자유롭게 사는’ 문제가 남았다.
고향에서 인정받는 건축가로 살았던 라즐로는 낯선 땅에서 새롭게 기반을 닦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물론 기회는 찾아온다. 전쟁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사업가 해리슨(가이 피어스)은 라즐로의 천재성을 확인하고 그에게 대형 건축 프로젝트를 맡긴다. 라즐로는 이방인의 시선이 반영된 ‘브루탈리즘’ 건물을 설계하지만 현지의 반응은 싸늘하다. 브루탈리즘은 1950∼1970년대에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장식성은 최소화하고 기능성을 강조한 노출 콘크리트를 특징으로 한다. 전쟁을 통해 인간의 추악함과 잔혹함을 경험한 라즐로는 속죄의 공간이자 기억의 공간으로서, 파괴할 수 없는 가치의 신전을 세우려 한다. 그러는 사이 타협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라즐로와 오만함과 지배욕을 드러낸 해리슨의 관계도 틀어진다.
라즐로의 삶을 속박한 것은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 환대받지 못한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천박한 자본주의였다. 반면 그를 자유롭게 한 것은 건축이었다. 그를 구원한 것도 건축, 즉 예술이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우리를 속박하기도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삶은 아름다운 동시에 잔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주현 영화칼럼니스트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