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의 증거’ 감추고도 검사라 할 수 있나

기소(prosecution)와 박해(persecution)는 영어 철자가 비슷합니다. 기소에 약간의 왜곡과 조작만 가하면 누군가를 박해하는 수단으로 변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현실과 철자법의 묘한 일치입니다. 이렇게 기소가 박해로 변한 이야기 하나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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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증거’ 은폐했다가 특검 수사받은 검사들
2008년 미국 연방 검찰은 알래스카주 상원의원(공화당)인 테드 스티븐스가 석유회사로부터 수년에 걸쳐 자택 수리 비용 등 25만달러 상당의 뇌물성 금품을 받고 이를 재산신고 때 공개하지 않았다며 전격 기소했습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역대급 정치인 부패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스티븐스는 선거 직전인 같은해 10월 1심에서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을 받고 선거에서도 패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 2월, 수사에 참여했던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이 양심선언을 했습니다. 검사들과 수사관들이 스티븐스에게 유리한 증거를 알고도 감췄다는 폭로였습니다. 검사들이 핵심 증인의 범죄 혐의를 덮어주면서 법정에서 허위 증언을 하도록 했다는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2009년 4월 법무부 장관이 기소를 취소하기로 했고, 법원도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을 무효화하고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재판장인 에미트 설리번 판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껏 본 가장 극악한 검찰권 남용 사례”라며 더 강력한 조처를 내놨습니다. 법무부가 해당 검사들을 자체 감찰하고 있었지만, 설리번 판사는 직접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 과정을 샅샅이 조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미국 연방 형사소송법은 법원이 법정모독 행위에 대한 조사·기소를 위해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별검사로 임명된 헨리 슈엘크는 15만여 쪽의 서류를 검토하고 검사·수사관·증인들을 직접 조사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한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슈엘크가 조사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자, 설리번 판사는 보고서의 공개를 명령했습니다. 2012년 3월 공개된 500여 쪽의 조사 보고서는 “검찰이 스티븐스 의원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선거를 앞두고 주요 정치인을 무리하게 수사·기소했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스티븐스는 비록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지만 2010년 8월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정치적 재기의 기회를 다신 얻지 못했고, 생전에 슈엘크 보고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슈엘크 특별검사는 해당 검사들을 기소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법무부의 징계절차가 진행돼 두명의 검사가 정직 징계를 받았습니다. 다만 검사들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법무부의 징계 절차상 흠결을 이유로 징계는 취소됐습니다.
최종 징계 결과는 검찰권 남용에 합당한 응징이 되지 못했지만, 설리번 판사의 특별검사 임명과 조사 보고서 공개는 검찰에 대한 사법적 통제 의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됩니다. 부당한 검찰권 행사의 실상을 낱낱이 조사해 공개한 것은 그 자체로 검찰권 남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이른바 ‘브래디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 사례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3년 존 브래디 사건 판결(Brady v. Maryland)에서 ‘검찰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알게 됐으면 이를 피고인 쪽에 알려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존 브래디는 살인사건의 공범 중 한명으로 기소돼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공범이 실제 살인은 자신이 혼자 저질렀다고 자백한 사실을 검찰이 감춘 채 브래디까지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는 게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브래디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가석방됐습니다. 브래디 원칙은 이후 더욱 확장됐습니다. 검사는 검찰 쪽 증인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할 만한 사실이 있으면 이 또한 피고인 쪽에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브래디 원칙은 스티븐스 의원 사건에서 보듯 현실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한 연방 판사는 “이 땅에 브래디 원칙 위반이라는 전염병이 온통 번지고 있다. 이를 멈출 수 있는 것은 판사들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검찰권의 공정한 행사를 감독하기 위한 사법부의 역할을 강조한 것입니다. 스티븐스 사건은 브래디 원칙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미국 법무부는 연방 검사들에게 관련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결정적 증거 은폐, 되풀이되는 현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요?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 떠오릅니다.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에 있는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들어 주인 할머니를 살해한 사건입니다. 당시 만 18~20살이던 ‘삼례 3인조’가 경찰의 가혹행위 끝에 거짓자백을 하고 옥살이한 것도 억울한 일이지만, 이들이 복역하던 중 검찰이 진범인 ‘부산 3인조’를 붙잡아 자백을 받고도 ‘자백에 신빙성이 없다’며 묻어버린 것은 충격 그 자체입니다. 삼례 3인조는 이후 진범의 고백으로 사건 17년 만인 2016년에야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이 피고인에 유리한 증거를 감춘 극단적 사례입니다.

우리 대법원도 2002년 판결을 통해 검사는 피고인에 유리한 증거도 제출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바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속옷에서 피고인과 다른 유전자형이 검출된 사실을 알고도 검사가 이를 감추는 바람에 피고인이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이같은 검사의 행위는 위법하다고 판결하면서 “검사가 수사 및 공판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하여 이를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2010년대에도 판박이 같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성폭력 사건 수사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유전자감정 결과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고도 검사가 이를 증거목록에서 뺀 채 기소했습니다.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는 마치 유전자감정에서 증거가 나온 것처럼 속여 자백을 유도했습니다. 유전자감정서는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요구로 비로소 증거로 제출됐고 결국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피고인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2022년 9월 “검사가 증거제출 의무를 위반했다”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앞의 사례들에서 보인 검사의 행동은 상식적으로도 도무지 납득되지 않습니다. 저렇게 중요한 증거를 숨기다니, 검찰이 객관적 진실 추구를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실체적 사실관계가 모호한 사건에서 검찰이 이런 식으로 증거들을 편향적으로 취사선택한다면 재판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더욱 노골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법원이 증거를 공개하도록 결정해도 따르지 않는 경우입니다. 2009년 용산참사 사건 재판 당시 검찰은 전체 수사기록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000여쪽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들의 요구에 따라 법원이 해당 기록의 공개를 결정했으나 검찰은 이마저도 거부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 검찰을 제재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입니다. 현행법상 검사가 증거 공개를 거부할 경우 ‘해당 증거를 이후 재판에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이 고작입니다. 검사가 어차피 공개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증거이니 이후 재판에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제재 수단이 되지 않습니다. 증거를 감춘 검사에 대한 징계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내는 길밖에 없는데, 용산참사 사건의 경우 국가가 피고인 1인당 300만원씩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 정도로는 검찰의 태도를 바꾸기 어렵습니다.
앞서 살펴본 미국의 경우처럼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검찰의 공소를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검사에 대한 직접적 제재 수단도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법정모욕죄를 적용하고 특별검사를 임명해 조사할 수 있게 하듯이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거나 강력한 징계가 이뤄지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합니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수집하라”는 명령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공개할 의무는 ‘검사의 객관의무’를 이루는 한 부분입니다. 객관의무는 검사가 어떻게든 유죄 판결을 받아내는 데 집착하지 않고 재판관처럼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할 의무입니다. 미국식 제도에서는 검사가 피고인의 대척점에 서서 재판을 이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반면, 유럽식 제도에서는 유죄든 무죄든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게 검사 본연의 역할로 여겨집니다. 객관의무가 더욱 강조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는 객관의무가 대법원 판결을 통해 부분적으로 인정되는 반면, 독일·프랑스 등에서는 아예 법으로 명문화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객관의무의 내용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발견되면 감추지 말라’는 소극적 명령을 넘어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한다’는 적극적 명령입니다.
독일 형사소송법은 “검사는 혐의 사실뿐만 아니라 무죄의 사유도 조사하여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형사재판 최종변론에서 검사는 유죄의 증거와 함께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종합해 진술해야 합니다. 프랑스 법도 수사를 하는 예심판사와 기소를 하는 검사 모두에게 이같은 객관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무죄의 증거까지 찾으라고 하는 마당에, 이미 수집된 증거를 감출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모든 수사기록에 대해 변호인의 접근이 보장되기 때문에 증거 공개를 둘러싼 논란도 불필요합니다.
객관의무의 발상지인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검사가 ‘무죄 구형’을 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수사 과정에서는 기소할 만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유죄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검사가 무죄를 주장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객관의무에 대한 자부심으로 검찰을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관청”이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한가지 이유는 독일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독일 검찰은 수사의 주재자로서 직접 수사권과 경찰 수사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검찰청 안에 독자적 수사 인력을 보유하지 않고 주로 경찰 수사를 통제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직접 수사를 하는 입장에서 유죄 편향을 갖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라는 것은 이상주의적인 요구일 수 있습니다. 직접 수사에서 한발 떨어져 있어야 객관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표적수사’가 어떻게 객관적일 수 있겠나
다시 우리 현실로 돌아와보면, 성폭력 같은 일반 사건에서도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감추는 검찰이 검찰 조직 차원에서 밀어붙이는 사건에서 객관성을 유지하리라 기대하기는 더욱 힘듭니다. 정권과 검찰이 한몸이 된 검찰정권에서 야당과 전 정권 인사들을 집중 겨냥한 수사·기소가 이뤄졌는데 여기에서 객관의무가 지켜졌을까요? ‘객관적인 표적수사’는 형용모순일 뿐입니다.

최근 나온 ‘2019년 북한 어민 북송사건’ 판결에서도 검찰의 객관의무가 언급됐습니다. 이 사건은 현 정권 들어 검찰이 전 정권 인사들을 수사·기소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데, 법원은 사실상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객관의무의 관점에서 지적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국정원은 피고인들 중 일부를 직접 고발한 사건 당사자이므로 국정원이 객관적 제3자의 입장에 선 국가기관으로서 검사의 요청에 응하여 (증거로 사용될) 공문서를 보낸 것으로만 보기 어렵다. 검사는 객관의무를 부담하는 당사자로서 고발인인 국정원이 제출하는 자료의 신빙성 등을 검증하여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이를 토대로 기소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증거로 제출할 의무를 부담함에도 불구하고 만연히 국정원이 무단으로 (일부 내용을) 비닉(숨김) 처리하여 제공·회신하는 자료를 그대로 증거로 사용했다.”
국정원의 고발로 시작된 수사에서 검찰이 국정원이 주는 자료를 그대로 받아 검증없이 증거로 사용한 것은 실체적 진실을 찾는 검사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정치수사, 표적수사 등 공정성과 객관성을 일탈하는 검찰의 폐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검사의 객관의무가 명확한 규범으로 자리잡도록 해야 합니다. 객관의무의 범위와 그 불이행에 대한 제재까지 법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수사-기소권 분리가 더욱 분명히 이뤄진다면 이와 궤를 함께하면서 객관의무도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소가 박해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말입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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