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반대? 암 환자에게 호흡기 떼라는 소리”
“해외 투자자 이탈 막는 효과도…재계 주장, 침소봉대 수준”
“주주 권리 강화 통해 자본시장 본연의 기능 회복해야”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소액주주운동을 지원하는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를 이끄는 윤태준 연구소장은 위기에 빠진 한국 증시를 구할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표면적으론 '동학 개미(개인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로 이동하고 있는 동시에 해외 기관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떠날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서다. 이에 윤 소장은 한국 증시 '엑소더스(대탈출)'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상법 개정이라고 말한다.
재계는 야당 주도의 상법 개정에 '기업 죽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소장은 "이번 상법 개정은 우리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반박했다. 주주 권리 강화를 통해 개인 투자자들이 자본시장에 더 유입되면 기업의 자금조달이 수월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논리다. 대기업에 몸담았던 윤 소장이 이제는 소액주주들과 함께 대기업에 맞서고 있다. 그가 말하는 개미들이 상법 개정을 원하는 이유를 들어봤다. 시사저널은 2월21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윤 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해외 기관들, 한국 떠날 채비 서두르고 있다"
상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환자가 입원하면 병원은 환자의 회복을 위해 영양분이 많은 양질의 식사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렇게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이 한국 증시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 반발하는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식사와 같은 것이다.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다른 주주의 희생을 초래하는 결정을 하지 않도록 하는 대원칙이다.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선언적인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이사들이 의사결정을 내릴 때 이 조항에 걸리지 않을까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민주당이 이사 충실 의무 확대 등 '법안 쪼개기 통과' 전략을 택하고 있다.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다만 이번 상법 개정 논의 수준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다. 암 환자에게 자양강장제를 먹이는 정도다. 하지만 재계는 그마저도 안 된다고 한다. 암에 걸린 환자(한국 증시)에게 연명 치료도 못 하게 하고 호흡기를 떼라는 소리다."
상법 개정이 한국 증시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이라 보는가.
"최근 해외 기관 투자자들의 동향을 보면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다. 성장 가능성을 믿고 투자해도 한국 기업들의 지배 주주를 위한 선택(중복 상장, 분할·합병 등)에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너무 많아 더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규모가 있는 해외 기관 투자자들은 상법 개정이 불발될 경우 한국기업 투자 비중 축소 속도를 기존 계획보다 더 빠르게 가져갈 것이라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그나마 개정이 된다면 축소 속도를 유지할지 여부를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상법 개정은 소수 주주 보호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막는 효과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자본시장법으로 핀셋 규제? 기업들, 우회로 찾을 것"
그럼에도 재계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상법 개정으로 자본시장이 더 투명해지면 오히려 기업에 더 도움이 된다. 부동산 시장에 묶여 있는 자금 중 일부라도 주식시장에 흘러들어가면 기업은 자금 조달에 수월해질 것이다. 법 체계를 흔들자는 의미가 아니다. 주주들의 권리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자본시장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자는 의미다."
재계는 이사를 상대로 한 소송 남발을 우려하고 있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고려하면 이사의 행동 판단 기준은 명확하다. 다른 주주들의 손해를 감수하며 최대주주의 이익만 고려하는 거래를 이사회에서 승인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런 선택을 내리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소송 남발을 얘기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재계에선 경영상 위축이 올 것이라고도 말하는데 '경영상 의사 결정에 대해 주주들이 소송을 낼 수 없다(경영 판단의 원칙)'는 건 이미 판례로 나와 있다. 가령 삼성전자가 5년 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투자를 하지 않아 실적이 좋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의사 결정일 뿐이고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평범한 개인 투자자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소송으로 인해 왜 경영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주장하는지 너무 안타깝다."
해외 투기 자본의 경영권 탈취 시도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국 대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만한 자금을 가진 기관이나 사모펀드들이 경영권을 장악해서 회사를 뒤집어엎은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없다. 전례가 없던 일이 왜 한국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2003년 행동주의펀드 소버린이 SK 경영권을 위협한 기억이 각인돼 있어 우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례를 봤을 때, 자금력이 있다고 해도 이사회 장악이 쉬운 것이 아니다. 경영권 공격 우려는 침소봉대하는 셈이다."
정부여당은 자본시장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인수합병(M&A)이나 물적분할 과정에서 소액 일반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은 정부여당 말대로 '핀셋 규제'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업들은 늘 핀셋 규제를 우회할 새로운 수단을 찾아냈다. 이를 규제하면 기업은 또 우회로를 찾아왔던 것이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다. 결국 자본시장법 개정은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대기업에 몸 담았다 대기업에 맞서다
윤 소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대에서 석·박사 학위(재무 전공)를 받았다. 박사 과정을 마친 2023년 초 삼성글로벌리서치(옛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ACT) 운영사 컨두잇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소액주주들과 자본시장의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뭔가.
"그동안 연구해왔던 것과 기업에서 하는 일 사이에 괴리감이 있었다. 전문성을 살리지 못한다는 것에 안타까움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오랜 인연을 이어온 이상목 컨두잇 대표의 제안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8월부터 활동 중이다. 느낀 점은 무엇인가.
"한국은 아직 주주행동의 토양이 갖춰지지 않아 어떻게 기업에 주주 서한을 보내고 대응해야 하는지 답답해하는 주주들이 많다. 이분들에게 컨설팅 등을 하며 같이 울고 웃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확실히 느낀 점은 이전보다 주주 권리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깨어 있는 주주들이 법적 절차를 숙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상법 개정을 통해 더 많은 주주들이 기업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액트' 역시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유니콘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액트는 현재 회원 10만 명, 시장점유율 50% 이상의 주주행동 플랫폼 1위 업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 외에 추가적으로 바뀌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소액주주들이 힘들게 모은 의결권이 불법적으로 무력화되는 '불법 주주총회' 문제는 중소 상장사에서 비일비재하다. 두산 사례에서 드러난 불공정 합병을 막기 위한 합병검사인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상법, 자본시장법, 한국거래소 규정 개정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상법 개정이 통과되지 못하면 무의미한 일이다. 대원칙을 명시하는 이번 상법 개정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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