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는 사람을 위해 생각 지우는 프리랜서들 [노동의 표정]

문종필 평론가 2025. 2. 2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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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텍스트 속 노동의 표정
13편 프리랜서 내밀한 이야기
노인경 작가 「자린고비」의 함의
노동 긍지와 수동성 동시에 담아
누군가의 의도대로 움직여야 하는
프리랜서들의 숙명과 노동의 본질

노동 속에서 노동자가 자유를 얻긴 어렵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혹은 누군가의 요청대로 움직여야 하는 게 노동의 본질이다. 특히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라면 누군가를 위해 생각을 지우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노동의 수동성,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의도보다 타인의 요구에 부응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며칠 전 산책하기 위해 인천 차이나타운을 걸었다. 바다와 가까이 있는 이 동네는 과거에 개항도시여서 서구의 근대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하다. 기억 속의 이곳은 낯설고 어둡고 침침한 동네였다.

하지만 시의 정책에 따라 인천 개항장 주변에 있는 낡거나 쓸모없는 장소들이 문학관, 찻집, 술집, 서점 등으로 리모델링되는 과정에서 다소 칙칙한 분위기는 온기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공간의 변화뿐만이 아니라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공을 들이고 있으니 사람들은 이곳을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물론, 과거에 화려했던 역동성은 여전히 미흡하지만, 건강(?)하게 바뀌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이 동네는 자연스럽게 유동 인구가 많아졌고, 관광객이 빠져나간 텅 빈 저녁 시간은 내게 산책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가 됐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불빛을 따라 근대문학관 벽에 새겨진 텍스트가 어떤 시인의 작품인지 궁금해하며 걸었다. [※참고: 지금은 김영랑 시인의 '함박눈'이 옮겨져 있다.]

그러다 잠시 쉴 곳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것을 멈추고 인천 중구청 앞에 있는 작은 서점인 '문학 소매점'에 들렀다. 이 서점은 소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인데, 종종 괜찮은 그래픽 노블(소설)도 가져다 놓고 있어서 새로운 작품을 찾기 위해 방문한 것이기도 하다. 노인경 작가의 「자린고비(2022년·문학동네)」는 그때 만난 책이다.

이 텍스트는 만화책이 아니다. 그래픽 노블과도 거리가 멀다. 칸과 칸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아닌 그림과 짧은 글이 어울리니 그림 에세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런 장르 구분보다도 내용이 담담하고 좋아서 잘 잊히지 않았다. 특정한 작품을 말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한데, 무엇인가 밟히는 정서가 있었다. 그래서 출간한 지 2년 정도가 됐는데도 구매해 버렸다.

이 작품은 그림 그리며 먹고사는 노동자의 밥벌이와 편집자와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그렇다면 어떤 노동의 구체성일까. 그것은 바로 노동의 '수동성'과 '긍지'와 관련이 있다. 물론,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수동성이나 긍지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겠지만, 이 부분에서 노동의 표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봤다.

그녀는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번다. 펑크 난 일이나 빠듯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돈을 더 주기 때문이다. 마감일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꼭 지킨다. 생활에서도 근면 성실하다.

과하게 음식을 먹기보다는 김밥으로 식사를 챙긴다. 집에 필요한 물건은 새롭게 사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눔을 목적으로 거리에 내놓으면 주워 와 방을 꾸민다. 이동할 때도 대중교통을 사용하기보다는 걸어 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그녀가 이렇게 아끼는 건 그림 그리는 일이 지속적인 일거리를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리랜서는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다 보니 일거리가 꾸준히 들어올 때, 미래를 비축하기 위함이다. 이런 노동의 표정은 프리랜서가 아니더라도 비정규직 신분으로 노동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현실에서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곁에 있는 우리들의 표정이다.

누군가는 이런 삶을 바라보며 알뜰하다고 볼 수 있고, 누군가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이 아니냐고 핀잔을 줄 수 있다. 때론 버스도 타고, 새로운 가구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이 텍스트의 편집자처럼 지켜보다가 비싼 여러 종류의 빵을 선물할 수도 있다. 이는 동정이라기보다는 일을 부탁하는 편집자로서 든든하게 챙겨 먹고 마무리를 잘해달라는 응원의 눈빛일 테다.

하지만 이 순간 화자는 통장에 적힌 금액을 보여주며 "편집자님, 제 통장 잔고입니다. 저 돈 많아요"라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녀가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마감일을 어긴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삶에 대한 긍지이자 자신감일 테다. 이 장면은 노동의 당당함을 담아내는 장면으로 보이기에 인상적이다. 가난한 형편을 의도적으로 파는 행위가 아니니 그녀의 작업에는 빚이 없다.

텍스트에서 내게 눈길을 끌었던 또 다른 표현은 "나는 성실히 일하고 내 의견을 내지 않는다"란 문장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예술가들에게 계산된 '의도'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자연처럼 자연스러운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도 볼 수 있으나, 그것은 인간의 것과 다르다. 인간에게 예술이라는 것은 인공의 영역이 가미된 행위(의도) 자체다.

그 의도는 종종 예술가가 일부러 숨기거나 드러내지 않아 잊히기도 한다. 그렇게 의도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예술은 그럼 예술이 아닌가. 그런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자신의 관점과 이해하는 세계관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회화나 문학이나 건축과 같은 영역에서 창작자나 사회적인 '의도'가 미흡하다면 그것을 좋은 작품이라고 부르기 힘들다. 이런 맥락에서 프리랜서인 이 노동자는 의도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음에도 조심스럽게 숨긴다. 이 문장은 마감날까지 타인의 일을 완료해줘야 하는 노동자의 입장을 투명하게 대변해 준다.

노동자는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는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의 노동에 책임감과 긍지를 느끼기도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동시 작가와 협업할 수 있고, 누군가의 책 표지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종종 자신만의 감각이 반영되기도 하겠다. 누군가에게는 자기 생각을 지우는 일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돈을 벌어야만 하는 노동의 수동성을 온전히 담아낸다는 점에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자기 생각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런 노동의 수동성은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그림 그리는 일을 가진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중요한 성질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동은 이처럼 자유와 거리가 멀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적다. 노동의 현장이 그렇고 우리의 삶이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목말라한다. 그곳에 잠시 쉬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잠시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이런 데 있는지 모른다.

문종필 평론가 | 더스쿠프
ansanssu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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