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심판의 얼굴들]③헌재서 尹 조우한 김용현…충신인가 확신범인가

서한샘 기자 2025. 2. 23. 0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종 울리기 위한 계엄' 역설…비상입법기구·포고령 "다 제가 했다"
尹, '우리 장관' 부르며 기억 소환…김용현 "말씀하시니 기억납니다"

[편집자주] 1월 14일부터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25일 종료된다. 당사자인 윤 대통령은 물론 16명 증인의 발언은 '계엄의 밤'을 재구성, 화제와 파장을 몰고 왔다. 헌법재판소에서 주목 받았던 인물들을 조명한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헌재 제공)2025.1.23/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지난해 9월 2일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계엄 발동 건의할 생각 없으시죠?", "사령관들을 한남동 공관으로 불렀죠?" 등 야당 의원들의 질문이 잇따랐다.

그때마다 그 후보자는 단호한 태도로 "생각해 본 적 없다", "어떤 국민이 과연 용납하겠나", "우리 군도 따르겠나"라고 응수했다. 한번은 코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인사청문회 석 달 뒤인 12월3일. 그가 '국민이 용납 못할 것'이라던 비상계엄은 '깜짝쇼'처럼 선포됐다. 2시간 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를 통과시키며 긴박했던 비상계엄은 막을 내렸다. 계엄 해제 당일 오후 장관이었던 그는 사의를 표했고, 이튿날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1월 23일. 그 후보자는 그간 이어진 구금 생활을 보여주듯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모습이었다. 그렇게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심판 첫 증인으로 불러낸 계엄 2인자이자 고교 선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탄핵심판정에 들어섰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대통령께서 비상계엄을 결심하시게 됐습니다."
그는 증인신문 초반부터 거대 야당의 줄 탄핵, 예산 삭감을 '국민 약탈 행위'라고 표현한 대통령의 말을 꾹꾹 눌러 담으며 '피를 토하는 심정'을 전했다.

'(대통령이)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줘야 하는데 야당 횡포가 극심해 답답하단 심정을 자주 토로하셨죠'라는 질문에 손가락을 꼽으며 "오직 세 가지. 방탄, 탄핵, 특검. 여기에 매몰돼 있는 걸 굉장히 많이 우려하셨고 안타까워하셨다"고 답했다.

12·3 비상계엄이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거대 야당에 '경고하기 위한' 계엄이라는 표현이 정형식 재판관 입에서 나오자, 그는 곧바로 "경종을"이라는 짧은 말로 이를 정정했다.

각종 위헌·위법 의혹과 대통령의 연관성은 모두 떼어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한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메모와 정치활동을 금지한 포고령 1호는 모두 "제가 작성했다"고 책임을 떠안았다.

불법적인 것도 아니었다며 선을 그었다. 그에게 국가비상입법기구는 "제안에 불과하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한 것뿐"이었다.

포고령도 "대통령이 꼼꼼하게 안 보신 걸 보면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국회 입법 활동이나 계엄 해제 결의를 방해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냐는 질문에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거 아닙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치활동을 빙자해서 국가 체제를 문란하게 하는 활동을 제한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정리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2025.1.23/뉴스1
"'요원 빼내라'고 한 것이 '의원 빼내라'고 한 걸로 둔갑한 거죠?" "네 그렇습니다."
국회 봉쇄와 정치인 등 주요 인사 체포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계엄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빼내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요원'이 '의원'으로 둔갑한 것이라고 했다. 국회에서 부하들이 '의원 빼내라' 등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을 두고는 "저는 이해할 수 없다", "글쎄 그건 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일관했다.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국회에 들어간 것 자체가 그에게는 봉쇄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는 "제가 만약 봉쇄했다면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갈 수 없어야 맞다. 근데 정말 많은 사람이 담을 넘어갔다고 그러더라. 그건 봉쇄가 안 됐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체포 명단은 포고령을 위반할 우려가 있는 대상자를 적어놓은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체포할 혐의도, 체포할 기구(합동수사본부)도 없는데 "무슨 X의 체포를 하라고 얘기하겠습니까". 정제되지 않은 표현도 등장했다.

"네, 기억합니다. 말씀하시니까 기억납니다."
그날의 증인신문은 신문 시간인 30분, 15분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윤 대통령 측 신문이 진행되는 동안은 대통령과의 돈독함이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윤 대통령은 때때로 '우리 장관', '장관님'이라고 부르며 그의 기억을 소환했다. 윤 대통령이 "(포고령의) 실현·집행 가능성이 없는데 상징성이 있으니까 놔둡시다 했는데 그 상황은 기억하고 계십니까"라고 묻자, 장관은 곧바로 "네, 기억합니다. 말씀하시니까 기억납니다"라며 기억을 되살렸다.

반대로 국회 측에는 날을 세웠다. 국회 측의 반대신문 시작부터 김 전 장관은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서 증언 거부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 측의 설득으로 겨우 시작된 신문도 녹록지 않았다. 김 전 장관에게 귓속말하며 조언하다 제지당한 변호사들은 "증언 거부권을 포기하고 증언하는데 말을 끊는다. 제지해달라"며 수차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 대통령도 "아까도 증인(김 전 장관)이 무슨 얘기 하려고 하면 자꾸 딱딱 끊는데"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약 2시간 30분간의 신문이 끝나자 김 전 장관은 증인석에서 일어났다. 정면의 재판관을 향해 한 차례 머리 숙여 인사한 그는 이내 고개를 들고 45도로 몸을 틀었다. 희끗희끗해진 그의 정수리는 다시 대통령으로 향했다. 대통령은 팔걸이에 손을 얹은 채 꾸벅, 그의 인사에 화답했다.

sae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