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용? 해장용? 못먹어본 사람 없다는 ‘OOO 스프’의 비밀 [언박싱]
![오뚜기 ‘산타크림스프’ 포장지 [오뚜기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d/20250225140750387sblv.jpg)
[헤럴드경제=정석준 기자] 슈퍼나 마트에 가면 간편식 코너에 수십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오뚜기 스프’입니다. ‘오뚜기 스프’가 세상에 등장한 지 무려 55년이 된 브랜드라는 사실, 아시나요?
처음 나왔을 때는 수프라는 음식이 생소해 아버지의 해장음식으로도 소개가 됐답니다. 요즘은 집보다 음식점에서 더 많이 만납니다. 이번 [언박싱 프로]에서는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너무나 유명한 ‘오뚜기 스프’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오뚜기는 1969년 5월 ‘풍림상사’라는 이름으로 창립했습니다. 첫 제품은 분말 카레였죠. 창업주 함태호 명예회장은 여름철을 겨냥해 분말 카레를 출시한 뒤 겨울에 잘 팔릴 수 있는 제품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때 함 회장의 눈에 들어온 것이 빵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수프’였습니다.
왜 빵과 어울리는 음식을 골랐을까요?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이른바 ‘빵집 전성시대’라고 불립니다. 1970년대까지 미국 구호물자로 유입된 밀가루를 활용해 만든 빵의 인기가 대단했죠. 지금은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지만, 그 시절 만남의 장소는 빵집이었습니다. 친구는 물론, 젊은 남녀가 데이트하는 장소로도 인기였죠. 오뚜기가 빵에 어울릴 만한 음식을 찾은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오뚜기는 1969년 10월 말부터 수프 개발에 착수합니다. 이듬해 4월 국내 최초로 분말 형태인 ‘산타 포타지스프’를, 6월에는 ‘산타 크림스프’를 내놓습니다. 앞서 출시한 분말 카레 제조 기술을 수프에 접목했죠. 겨울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헤 ‘산타가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아 브랜드명도 ‘산타(santa)’로 정했습니다. 영문 상표명을 붙인 국내 최초의 사례라고 하네요.
우리가 아는 ‘오뚜기 스프’라는 이름은 1973년 등장했습니다. 겨울철로 한정하지 않고 사계절 언제나 먹을 수 있도록 개명한 것이었죠. 왜 제품명은 ‘수프’가 아닌 ‘스프’였을까요?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고기나 야채 따위를 삶아서 낸 즙에 소금, 후추 따위로 맛을 더한 서양 요리’를 의미하는 ‘soup’의 규범 표기는 ‘수프’입니다. 식품업계에서 쓰는 ‘스프’라는 용어는 라면 등을 끓일 때 국물을 내기 위해 넣는 분말가루를 말합니다. ‘오뚜기 스프’도 분말형태로 나온 요리이기 때문에 ‘스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하네요. 몰랐습니다. 오타가 아니었습니다.
![오뚜기 크림스프 [오뚜기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d/20250225140751047hctn.jpg)
오뚜기는 출시 초기, 주요 타깃으로 중산층을 노렸습니다. 서울 주요 백화점에서 시식행사를 열었죠. 서구화된 식습관이 인기를 끌면서 빵과 함께 수프를 곁들여먹는 조합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생소한 음식이었습니다. ‘불란서 풍의 맛’이라는 슬로건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하네요.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소비자들이 접해보지 못한 수프라는 음식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숙제였습니다. 만드는 방법부터 먹는 용도까지 모든 정보를 제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뚜기는 포장지에 제품 용도를 소개하며 ‘간단한 아침식사’, ‘어린이 영양식’ 외에도 ‘입맛이 없을 때’, ‘아빠의 건강식’, ‘아빠의 음주 후 아침 식사 시 권한다’는 안내 문구를 담았습니다. 이 정도면 너무나 과도한 친절 아니었을까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오뚜기는 “주부 님의 손길에 따라 다양하게 아침식사를 마련하실 수 있다”, “5분이면 아침식사가 간단히 해결되는 오뚜기 스프는 아내의 사랑이 가득 담겼다”는 광고 문구를 넣었습니다. 친근한 이미지를 위한 노력이었죠.
당시 일종의 ‘모디슈머(자신만의 방식으로 제품을 재창조하는 레시피)’ 트렌드도 만들었습니다. ‘오뚜기 스프’를 활용한 야채 수프, 카레 수프, 새우 수프 등 다양한 요리법을 제안했죠. 수프라는 음식이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이라 이런 마케팅은 효과를 봅니다. 제품 포장지에는 ‘만드는 방법’으로 설명과 함께 그림까지 첨부했습니다. 어린이용으로는 “보통 때보다 조금 묽게 만들어 먹이십시오”라는 팁도 깨알같이 넣었죠. 수프가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슈퍼마켓뿐만 아니라 도봉산 등산로 입구에서도 시식 행사를 했습니다. 이 정도면 당시 사람들 반응이 궁금할 정도네요.
![오뚜기 스프 광고 [오뚜기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d/20250225140751312ikfg.jpg)
시대가 흘러 ‘오뚜기 스프’의 단짝은 빵에서 돈가스로 바뀝니다. 수많은 빵집이 문을 닫고 설 자리를 잃는가 했는데, 경양식 돈가스 옆에 수프가 등장했습니다. 1980년대에 방영됐거나 그 시절을 묘사하는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 풍경이죠. 2015년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경양식 레스토랑에 방문한 가족이 돈가스와 함박스테이크를 주문하고, 먼저 나온 수프를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수프라는 음식이 TV에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인지도가 상승했죠. “우리 땐 스프가 에피타이저였다고.”
돈가스를 주문하면 수프가 나오는 것은 한국 경양식 돈가스의 특징입니다. 본래 경양식은 간소한 유럽식 요리를 의미해서 서양의 수프 문화가 적용된 것입니다. 우동이나 국물을 주는 일본식 돈가스와 다른 점입니다.
지금도 돈가스 가게들은 간편하게 내놓을 수 있는 ‘오뚜기 스프’ 대용량(1㎏) 업소용 제품을 많이 사용합니다. ‘오뚜기 스프’가 나온 돈가스 가게를 방문한 손님들은 “추억의 맛”이라는 후기를 남깁니다. 전 축구선수 안정환도 과거 JTBC 예능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셰프가 만든 음식을 맛보고 “오뚜기 스프 맛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그만큼 이제는 ‘오뚜기 스프’가 친숙한 맛이 됐다는 뜻일 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뚜기 스프’를 먹으며 자란 소비자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 맛을 기억하고, 다시 찾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어지도록 생태계를 구축한 오뚜기의 ‘큰 그림’이었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방송 장면]](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2/25/ned/20250225140751645tivx.jpg)
소비자의 선택지도 넓어졌습니다. 오뚜기는 1972년 10월 이후 ‘쇠고기스프’, ‘닭고기스프’, ‘양송이스프’ 등 제품군을 확장했습니다. 1985년에는 간편히 먹을 수 있는 ‘컵스프’ 4종을 출시했죠. 그리고 이는 콘크림, 단호박크림 등으로 늘었습니다.
변화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봉지째 데우기만 하면 즐길 수 있는 ‘냉장 스프’ 3종을, 2017년 바삭한 조각 빵인 크루통과 즐기는 ‘크루통 컵스프’를 선보이며 제품 형태와 종류에도 변화를 줬습니다.
재료는 건강을 추구하는 흐름에 맞게 바뀌었습니다. ‘크림스프’는 출시 당시 탄수화물이 65.9%였습니다. 지금은 22%로 낮아졌죠. 대신 단백질은 12.5%에서 18%로 늘었습니다. 최근에 출시한 ‘비밀 크림스프’는 기존 제품보다 분말유크림 함량을 50% 증량해 짙은 풍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진화의 진화를 거듭한 것이죠.
오뚜기 관계자는 “연구 개발을 통해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며 50년이 넘는 노하우를 갖게 됐다”면서 “오랜 시간 많은 소비자들과 함께하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변화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오뚜기가 만든 맛에 중독(?)이 됐을 수도 있겠습니다.

‘오뚜기 스프’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다시 주목을 받습니다. 2020년 출시 50주년을 맞아 선보인 파우치 형태의 ‘상온 파우치 스프’ 4종은 호평 일색이었죠. 당시 집밥 수요가 늘면서 장기 보관이 가능하며, 전자레인지 조리만으로 전문점 맛을 가정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실제 2022년 A 대형마트에서의 분말수프 매출 신장률은 전년 대비 20% 늘었다고 합니다. B 대형마트에서도 매출이 70% 뛰었습니다.
국내 가공수프 시장은 2023년 말 기준 약 1000억원 규모로 추정됩니다. 이 중 분말수프가 70% 수준입니다. 분말수프 시장 중에서는 오뚜기가 85%(2021년 기준)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규모죠.
다만 최근 들어서는 성장세가 주춤합니다. 작년에는 매출이 감소했답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외식 수요가 커지면서 집에서 수프를 만들어 먹는 손길이 줄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다만 수프 시장은 여전히 유망하다고 여겨집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세계 수프 시장은 2020년 기준 195억달러로 전년 대비 9.2%, 연평균 3.3% 증가했습니다. 올해는 24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자 하는 수요가 꾸준하다는 얘기죠.
대륙별로 살펴보면 북아메리카와 유럽 지역이 세계 수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합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일하게 서양 국가 사이에서 10위권 내에 들어갑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즉석수프 판매가 늘어나자 2020년 일본 시장 규모는 2015년 대비 49.2% 성장한 27.6억달러(약 4조원)까지 커지기도 했습니다. 한국도 같은 기간 43.7% 커졌지만, 규모는 0.9억달러(약 1200억원)로 26위 수준이었다고 하네요.

식품업계도 수프를 놓지 않았습니다. 농심은 ‘혼다시’로 유명한 일본 아지노모도와 각각 49%, 51%씩 출자해 ‘보노스프’ 등을 생산하는 아지노모도농심푸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경기도 평택에 1만570㎡(약 3200평) 규모의 즉석분말수프 공장도 설립했습니다. CJ제일제당 등 다양한 제조사도 즉석수프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1인자였던 오뚜기도 반격을 준비합니다. 더 이상 추억이 아닌 새로운 재미와 건강을 추구하는 브랜드로 변신하는 것이 목표랍니다. ‘오뚜기 스프’ 출시 50주년인 2020년에는 스타트업 ‘백반디자인’과 협업해 밥상, 냄비받침, 컵받침, 마그넷 등 굿즈를 내놨습니다. 지난해 1월에는 이색적인 맛을 추구하는 MZ(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해 ‘옥수수스프’를 활용한 ‘콘크림스프 팝콘’도 출시했죠. 모두 ‘오뚜기 스프’를 접목한 신제품입니다.
지난해 12월에는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국산 가루쌀로 만든 글루텐프리 ‘비(非)밀스프’를 선보입니다. 이름부터 은밀합니다. ‘비밀 크림스프’는 기존 제품보다 분말유크림 함량을 50% 늘렸습니다. ‘비밀 양송이스프’도 기존 대비 양송이 함량을 25% 늘렸습니다. ‘가성비’ 제품으로 입소문까지 났다네요. 현재까지 7만개 이상이 팔리며 매출 효자로 떠올랐답니다.
올해는 55주년으로 ‘산타컵스프’ 한정판을 출시할 예정이랍니다. 오뚜기 관계자는 “올해는 스프 출시 55주년을 맞아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이벤트와 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익숙한 맛에서 더 나아가 보다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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