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빠진 G20 외교장관회의서 중·러 '존재감'

유현민 2025. 2. 21.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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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외교수장 기다리느라 개회식 30분 지연
미 일방주의 경계감에 '다자주의 강조' 발언 잇따라
남아공 G20 외교장관회의서 만난 중러 외교수장 [러시아 외무부 제공/AF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0∼21일(현지시간)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서 미국이 빠진 자리를 중국과 러시아가 채웠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번 G20 회의에서 부쩍 존재감을 드러냈다.

회의 첫날인 지난 20일 개회식은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왕 주임과 라프로프 장관 탓에 30분 가까이 지연됐다. 오후 1시부터 각국 대표 입장이 시작된 가운데 개회식이 시작되는 오후 2시까지 대부분의 대표단이 착석했다.

그러나 개회식은 시작되지 않았고 오후 2시20분 넘어 왕 주임과 라브로프 장관이 차례로 행사장에 입장했다.

라프로프 장관까지 자리에 앉고 나서야 기조연설 하는 의장국 남아공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중국과 러시아 외교 수장의 지각은 개회식에 앞서 진행된 양자회동 때문으로 전해졌다.

왕 주임과 라브로프 장관은 이 자리에서 양국 관계는 물론 미국과 관계, 우크라이나 위기 등 글로벌·지역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또 제한된 시간 속에서도 왕 주임과 라브로프 장관을 각각 따로 만나 브릭스 회원국으로서 중국, 러시아에 대한 각별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남아공 대통령과 악수하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AFP=연합뉴스]

미국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남아공의 토지 수용 정책과 '반미주의'라고 비판한 올해 G20 주제(연대, 평등, 지속가능성),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와 같은 대이스라엘 적대 정책 등을 이유로 들며 취임 뒤 첫 G20 행사인 이번 회의에 불참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 역시 본국에서 다른 용무로 오는 26∼27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 오지 않기로 했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들어선 해의 G20 회의는 미국의 신임 장관들이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 카운터파트와 상견례를 하고 막후에서 국제경제와 조세정책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기회다.

특히 일반적으로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국제 의제를 설정하고 동맹에 협조를 당부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미국의 국무장관과 재무장관 모두 불참을 택한 것은 이례적으로 여겨진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짚었다.

미국의 불참은 다자주의 체제에서 미국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로 붕괴 위기인 다자주의 체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장면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차기 의장국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마저 오는 11월 22∼23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거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남아공 대통령 기조연설 듣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 [AFP=연합뉴스]

라마포사 대통령은 미국 장관의 불참에 대해 확대해석을 애써 차단했다.

그는 20일 늦은 오후 미디어센터에 들려 기자들에게 프리토리아 주재 미국 대사대리가 루비오 장관 대신 참석했다는 점에서 미국이 회의 자체를 '보이콧'한 것은 아니라며 "미국과 관계에서 주름을 펴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남아공과 미국이 여러 문제에 대해 의견이 항상 같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외교의 정신으로 항상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가 21일 엑스(X·옛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독재자'라고 비난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남아공에 초청했다고 밝히면서 현지에서는 남아공과 미국의 갈등이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번 회의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대한 경계에 다자주의를 강조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왕 주임은 "G20 외교장관들은 작년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 행동 이니셔티브'를 발족했으며 그 핵심은 다자주의를 지지하고 유엔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다자주의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기자들에게 "다자주의 유지가 이번 회의의 초점이었다"며 "격동적이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우리는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남아공 G20 참석한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EPA=연합뉴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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