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인터뷰 :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연약한 모래가 모여 단단한 벽돌이 되듯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도 그랬다. 슬프고 힘들어 쓰러질 것 같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시민 179명이 사망한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지 어느덧 50여 일이 흘렀다. 트라우마와 2차 가해,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상조사, 가혹한 현실 앞에서도 그들은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12·3 비상계엄'의 충격 등으로 우리 사회가 점차 제주항공 참사를 잊은 동안 유가족들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가려진 시간'을 버텼을까. 뉴스타파가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만나 인터뷰했다.
참사 후 50일, 아직 트라우마의 시간
취재진은 지난 11일, 광주광역시에 마련된 유가족협의회 사무실을 찾았다. 박한신 유가족협의회 대표(희생자 박병곤 씨 형)는 "대표단이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보여드리기 위해 공간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 사무실이 언론에 공개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제주항공 참사의 피해자는 모두 179명, 유가족은 131가구다. 지난 50여 일 동안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렀다. 일부 언론은 희생자들에 대한 장례가 지난 1월 초 모두 끝났다고 보도했지만 사실과 달랐다. 장례 절차는 최근까지 계속됐다. 수색 과정에서 시신 조각이 발견되면 그때마다 신원을 확인한 뒤 장례를 치렀다. 지난 13일에도 화장된 시신 조각이 전라남도 담양에 안치됐다. 참사 트라우마는 여전히 유가족에게 남아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생존자 가족이 국가·권역 트라우마센터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서 심리 지원을 받은 건수는 총 1,148건으로 집계됐다. 유가족은 1,138건, 생존자는 8건, 생존자 가족은 2건이었다. 따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유가족도 있었다. 박한신 대표는 "유족분들 중엔 지금도 고통 속에서 잠을 못 자거나 집에 들어갔는데 일가족을 다 잃어 그 집을 내놓으신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재난·참사 유가족이 트라우마에서 회복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2022년 10월 29일,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경우 여전히 많은 피해자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참사 2년이 경과한 이후 '정신 질병'을 이유로 의료비 지원을 받은 피해자는 모두 26명으로 나타났다.
트라우마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낼지 모른다. 사고로부터 수년 후에 뒤늦게 발현되거나 치료가 중단되면서 재발한 사례도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로부터 1년 이내(2023년 10월 28일 기준)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 의료비가 지원된 피해자는 모두 107명이었는데, 2년 이내(2024년 10월 28일 기준)로 기간을 넓히면 117명이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사이 10명이 넘는 피해자가 추가로 치료를 받은 것이다.
현재도 국가·권역 트라우마센터, 각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선 제주항공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심리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유가족과 심리상담이 익숙치 않은 노령층 유가족 등은 피해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한신 대표는 "전라남도의 특성을 보면, 특히 시골에 있는 유가족들도 있다"며 "좀 더 넓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일 국회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특별위원회에서 백선희 의원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분들에 대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해서라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에 대한 방문 상담 등을 적극 활용하라는 취지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반적으로 검토해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유가족들이 한 공간에 모일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다고 유가족협의회는 요구했다. 박한신 대표는 "유족들의 힘든 거는 유족들이 잘 안다"며 "같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가족 등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제공하는 심리 지원은 개별 피해자를 상대로 한 상담 또는 진료밖에 없다. 지난 6일 국회 특별위원회에 출석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유가족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구성 등에 대해 "방안을 고민해 보겠다"고 답했다.

'2차 가해' 엄벌 선포했지만, 실제 처벌은 난항
참사 때마다 피해자들을 괴롭힌 '2차 가해'는 이번에도 반복됐다. 희생자나 유가족을 조롱하거나 허위 정보를 담은 악성 게시글이 끊임없이 유포됐다.
희생자 대부분이 호남권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지역 비하 발언이 나오거나, 유가족이 보상금을 노리고 행동한다는 원색적인 비난, '가짜 유가족이 있다'는 음모론까지 다양한 형태의 2차 가해가 발생했다. 박한신 대표는 "우리도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참사 직후 정부는 2차 가해자들에 대한 엄단을 선포했고, 경찰은 전국 시도 경찰청 산하 전담 수사팀을 구성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경찰이 수사한 악성 게시글 사건은 모두 243건이다. 이중 42건이 종결 처리됐다. 세부적으로 보면, 22건은 불송치, 11건은 입건 전 조사 종결 처리됐다. 대부분의 사건이 처벌 없이 종결된 것이다. 반면, '범죄 혐의가 있다'며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3건에 불과하다. 남은 5건은 수배 등 사유로 수사 중지, 1건은 군 이송 처리 됐다.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과 측은 "불송치 사건 중 대부분은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 공소권 없음 처리된 것이다"며 "중복 신고된 사건 중 이미 처리된 것도 있어 취하했다"고 설명했다. 또 "입건 전 조사 종결은 '사자 명예훼손죄'는 있지만 '사자 모욕죄'는 없어 해당 악성 게시글이 죄가 안 돼 수사에 못 들어간 것이다"며 "현재도 시도 경찰청 전담팀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검거 건수는 계속 늘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호자 잃은 미성년자·장애인 유가족... 특별법 제정 이뤄질까
남은 유가족의 생계도 문제다. 생계를 책임지던 배우자를 잃거나, 부모를 여읜 유가족도 있다. 참사 후 충격으로 직장을 잃은 유가족도 있다. 현재 정부 지원은 지난달 지급된 긴급생계비 300만 원과 일부 국민 성금 등이 전부다. 박한신 대표는 "정말 막막하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어버리고, 사회생활 하던 남편을 잃어버리고 그러다 보니 생활비가 떨어진다. 무엇으로 이 사람들이 기다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참사 초기, 수많은 언론은 유가족들이 받게 될 보상금에 대한 기사를 썼다. 하지만 실제 배·보상 절차를 시작하려면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등 관련 기관의 책임 소재가 밝혀져야 한다. 또 배·보상 액수를 산정하려면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항철위)의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항철위 조사는 앞으로 최대 1년에서 1년 반이 더 걸릴 예정이다. 제주항공 참사 법률지원단 부단장을 맡고 있는 박철 변호사는 지난 6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항공 사고의 특성상 배·보상까지 가는 데는 수년 가까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그동안 유가족들은 사실상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특히 유가족 중에는 참사로 부모를 잃은 미성년자 3명과 중증장애인 1명도 있다. 법률구조공단에서 이들의 후견인 선임을 지원하고 있지만, 당장의 생활 보호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후견인 선임은 법원 판단이 필요해 법적 절차에만 최소 한두 달이 소요된다. 현재는 광주광역시가 중증 장애인의 활동 지원을 돕고 있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교육과 양육, 간병과 생계 유지를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
유가족협의회는 '제주항공 참사 특별법'을 제정해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각 유가족의 사정을 고려한 장기적인 피해자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앞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특별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진상규명 위해 비행기에 탄 유가족... 투명한 정보공개 요구
유가족들은 철저한 사고 원인 조사와 투명한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박한신 대표는 "먼저 유가족들에게 항철위에 조사 진행 내용을 알려달라고 얘기했고, 현재 잘 지켜지고 있다"며 "우리가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부가 믿음과 신뢰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뢰 관계가 무너지면 저희들은 의구심만 들고, 다 안 좋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항철위는 지난달 17일 '예비보고서'를 발표하고, 현재까지 확인된 사고 여객기의 동선을 공개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오전 8시 57분 50초, 관제탑에서 조류 충돌 경고를 받은 사고 여객기는 약 1분 뒤인 8시 58분 56초 긴급구조선언(메이데이)과 함께 복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복행 시도 당시, 음성·비행 기록 장치는 작동을 멈췄다. 사고 여객기가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할 때(오전 9시 2분 57초)까지 약 4분 간의 기록도 저장되지 않았다. 엔진 결함 여부 등 사고 원인 조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이유다.
지난 12일, 유가족협의회 대표단은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부품 정밀 조사를 위해 프랑스로 옮겨질 사고 여객기의 엔진 부품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박한신 대표는 이를 위해 비행기를 탔다. "무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박 대표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남들은 김포 40분이면 간다고 쉽게 얘기하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큰 고통이었다"며 "항철위 사무실이 서울 김포공항 내에 있다. 또 여객기의 중요 부품인 랜딩기어가 최근 김포공항으로 이송됐다. 보관 상태는 어떤지, 무슨 점검을 할 건지, 해외로는 어떻게 보낼 건지 우리가 눈으로 봐야 한다. 항철위의 조사 상황도 유족 대표단으로서 듣고자 한다"고 말했다.


제주항공 참사는 '사회적 선례'... "지속적인 관심과 윤리적 보도 바란다"
출입국 관광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여행객은 2,896만여 명에 이른다. 국민 절반 이상이 1년에 한 번 꼴로 국제선 비행기를 탄다. 항공 시스템의 오류를 개선하고 더욱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제주항공 참사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고,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유가족들은 이번 참사에 대한 조사와 대처가 우리 사회 항공 안전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본다. 박한신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제주항공 참사는 지금 사회에서는 처음 접해보는 사고잖아요. 어떻게 접근해야 되는지 저희도 솔직히 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하나 찾아가고 있어요. 저희가 이런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표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표준이라는 것은 국가, 기관, 유족 모두가 다 신뢰를 갖고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해나가는 것이겠죠.
- 박한신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희생자 박병곤 씨 형)
마지막으로 유가족협의회는 언론에 윤리적인 취재와 보도를 요청하며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도 당부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언론에서 정제된 기사를 써줘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그런 취재와 보도를 해줬으면 한다. 또 잘못된 보도가 있다면, 유가족이 보호받을 수 있게 정정하는 등 자체적인 순기능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해외 항공기 사고에서는 해당 정부가 어떻게 조사하고 대응했는지도 취재해 우리 정부와 비교하는 등 여러 기획 취재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환경 만들자"
지난 15일, 무안공항에서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49재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위령제에 참석한 많은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추모사에 나선 박 대표는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책임 있는 기관과 관계자들이 제대로 대책을 세우도록 요구해야 한다. 사고가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와 관리 부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우리는 이 슬픔과 분노를 다짐으로 바꿔 다시는 그 누구도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위로하고 지켜줄 책임이 있다"고 발언했다. 끝으로 그는 희생자들을 향해 '기억하겠다'고도 외쳤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약속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동료들의 이름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그날까지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부디 편히 쉬소서. 당신들의 따뜻한 미소와 목소리는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당신들의 존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당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 박한신 /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희생자 박병곤 씨 형)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뉴스타파 이명주 sil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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