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 하는지 다 안다 [크리틱]

한겨레 2025. 2. 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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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한 해의 트렌드를 정리해 주는 책에, 케이팝 그룹 뉴진스(현재 활동명 NJZ)의 멤버 하니의 독특한 말투가 실렸다.

알다시피 베트남계 호주인으로 영어가 모국어인 하니의 한국어는, 서툴다기보다는 잘 흘러가다가 예상 못한 곳에서 덜컹거리는 종류의 것이다.

나중에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인류가 한 장소(인터넷)에서 너무 가깝게 연결되어 서로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았던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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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초판(1912) 표지. 위키미디어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매년 한 해의 트렌드를 정리해 주는 책에, 케이팝 그룹 뉴진스(현재 활동명 NJZ)의 멤버 하니의 독특한 말투가 실렸다. 알다시피 베트남계 호주인으로 영어가 모국어인 하니의 한국어는, 서툴다기보다는 잘 흘러가다가 예상 못한 곳에서 덜컹거리는 종류의 것이다. ‘준비 갈 완료’, ‘펑순기’(선풍기), ‘탄수나물’, ‘꽤배기’(꽈배기) 등은 밈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하나의 트렌드로 소개된 것이다.

모두가 이런 소개를 반기지는 않았다. 이러면 젊은 척하고 싶어 안달이 난 늙은 중간 관리자들이 이를 암기한 뒤 직원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시연해 보일 것이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소셜미디어에는 그 광경을 상상하게 된 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끔찍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길래 이런 걱정까지 할까? 한편으론 나이 든 (남성) 관리자들이 평소 어떻게 하길래 이런 반응이 나올까? 이 와중에 ‘영 포티’ ‘영 피프티’ 담론은 가장 인기 없는 부류인 중년 남성에게 허망한 신호를 주고 있다.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는 짙은 화장을 한 채 젊은이들 틈에서 놀려고 애쓰는 노인이 나온다. 100년도 전의 소설이지만 사람들이 딱하게 여기는 행동의 모습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다소 보편적인 차원이 있다. 친구들끼리 유대감을 확인하는 그들만의 어법을 심리학자들은 ‘우리 노래’(our song)라고 부르는데, 엉뚱한 사람이 이를 습득하여 끼어드는 건 가장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누군가의 접근을 피하는 것. 우리가 인터넷에서 이사를 다니는 이유 중 이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얼마 전 ‘더 타임스’는 중노년은 페이스북, 젊은이는 인스타그램이라는 통념이 사실인 이유를 적었다. 인스타그램이 젊은이들 취향에 맞는다는 얘기는 피상적이며, 핵심은 페이스북에 있으면 부모와 마주칠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라 한다. 인스타그램 세대가 중년 부모가 되면 또 한번의 대이동을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타자의 근접과 정보 유출은 인터넷 시대에는 피할 도리가 없다. 인터넷 세상이 넓기는 해도 검색을 피할 정도로 먼 곳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 평론가 댄 브룩스는 작년 ‘애틀랜틱’에 쓴 글에서 소셜미디어는 은어(slang)라는 것을 파괴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더 이상 특정 그룹 한정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 그건 전부 모두에게 전유되었다.” 한 집단에서 흥한 은어는 다음날 모두가 검색할 수 있는 밈이 된다. 은어는 원래 집단 정체성을 드러내고 강화하는 역할이었지만 이제는 부지런한 ‘밈잘알’들이 자기를 과시하려는 의도로 사용된다. 이제 낯선 말은 없다.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차도 사라졌다. “세계에는 ‘폰 언어’라는 단일 언어만이 존재한다.”

그 결과는 정치적으로 두려운 것이라고 브룩스는 지적한다. 우리는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건 틀린 말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완전히 알아듣는다. 동일한 언어이며 모르는 어법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나와 다른 의견은 더 기가 차고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전세계의 민주주의가 대혼란에 빠진 것 같은 요즘이다. 나중에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인류가 한 장소(인터넷)에서 너무 가깝게 연결되어 서로 무슨 말 하는지 다 알았던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될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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