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ㅣ 익숙하지만 좀 낯선 새로운 봉준호 월드

아이즈 ize 김형석(영화평론가) 2025. 2. 1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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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형석(영화평론가)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모먼트이다. '기생충'(2019)으로 칸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하며 국제적인 각광을 받게 된 그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워너브러더스)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국 감독의 할리우드 작업이 처음은 아니며, 봉 감독도 넷플릭스에서 '옥자'(2017)를 작업한 적이 있다. 하지만 1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투여된 할리우드 영화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았다는 건 또 다른 의미다.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한 후 사반세기, 그는 여덟 번째 영화만에 한국영화사에 또 하나의 족적을 남긴 셈이다.

'미키 17'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그의 영화를 꾸준히 봐 온 평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건 필모그래피의 지속성이다. 제작의 토대가 크게 바뀌긴 했지만, 그의 영화는 여전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정치적이며, 감독 특유의 유머와 냉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닫힌 공간은 중요한 모티프다. 크리처가 등장하고, 번역은 신성하며, 시스템은 착취하고, 노동자는 분투한다. '괴물'(2006)이나 '설국열차'(2013), '옥자'와 '기생충'까지, '미키 17'은 글로벌 관객들에게 친숙한 '봉준호 무비'의 요소들이 에드워드 애슈턴의 SF 컨셉과 만난 '익숙한 낯설음'의 영화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여기서 지난 25년의 필모그래피를 모두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주목할 만한 건 그의 영화가 만나고 있는 '관객'이다. 흥미롭게도 봉준호 감독은 항상 다른 관객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는 독립영화 감성을 지닌, 마니아 층에게 강한 지지를 받은 영화였지만 흥행엔 실패했다. 이어지는 '살인의 추억'(2003)은 전작보다 좀 더 '일반적인' 관객층을 만나기 위해 장르 요소를 제대로 갖춘 스릴러였고 흥행에 성공한다. '괴물'은 어떤 타깃 관객층이 아닌, 전국민이 사랑한 '천만 영화'였다. 그렇다면 '마더'(2009)는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청소년 관람 불가'인, 끈적끈적하면서도 거친 '성인용' 영화였다.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설국열차'는, 국내 자본으로 제작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마켓의 장르영화 관객들을 염두에 둔 영화였다. '옥자'는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과 만난 영화다. 제작 당시 전세계에 확보된 1억 명의 넷플릭스 유저들은 감독에게 또 다른 관객들이었을 것이다. '기생충'은 예술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를 허물고 팬데믹 시기 전세계 관객들에게 언어(자막)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어달라고 촉구한, K-무비의 상징이 된 작품이다. 그렇다면 '미키 17'은, 건조하게 말하면 '할리우드 메이저 블록버스터'이며, 전세계에 배급되는 메인 스트림 영화다. 

봉준호 감독은 작품마다 바뀌는 관객 속에서 나름 다양한 스타일과 스토리를 구사하며, 봉준호 감독은 어떠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작품들을 통해 고유한 영토를 확장하고 자신의 테마를 변주했다. 그러면서 작은 디테일에서도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봉준호 무비'가 만들어졌고 '미키 17'도 그 안에 있다. 그럼에도 어떤 긴장이 있다. 복제 인간이자 '죽음 노동자'인 미키 17(로버트 패틴슨)이 주인공인 이 영화는 우리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일반적으로 만나는 테마들을 지닌다. 신화적 서사를 바탕으로 한 영웅의 여정, 휴머니즘과 로맨스, 선악의 대결, 낯선 자연과 인간의 대결, 테크놀로지의 놀라운 성과 혹은 위험성, 위기를 겪은 후 전달되는 평화의 메시지…. 사실 이런 것들은 감독의 전작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른바 '봉준호 월드'의 이질적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블록버스터의 테마와 봉준호의 디테일이 충돌했을 때 과연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질까? 어쩌면 이 질문은 '미키 17'을 볼 때 가장 흥미롭게 지켜볼 지점이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럼에도 '미키 17'는 봉준호의 영화다. 영어 대사와 할리우드 배우들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영화에서 충분히 그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엔 질문하게 된다. 특히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엔딩으로 가는 과정을 바라보며, 어떤 통렬함이나 페이소스 혹은 기괴한 폭력이나 씁쓸한 감정의 여운이 조금은 그리워진다. 그의 영화에 너무 절여져 있었던 걸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하면 무난한데, 봉준호의 영화라고 생각하니 '미키 17'은 조금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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