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 행위 ‘임원보수 한도 승인’…주총서 ‘총수일가’ 의결권 제한해야

한국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임원 보수 문제가 큰 이슈로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주주총회에서 이뤄지는 ‘이사 보수 한도 승인’이 형식적인 절차라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사 보수 한도는 상법에 따라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범위 내에서 이사에게 지급할 수 있는 ‘보수 상한선’을 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사 개인의 보수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 전체에게 지급 가능한 보수의 총액을 설정하는 절차다.
문제는 이사 보수 한도가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더라도, 실제 지급되는 보수와 연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개별 임원 보수 내역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보수 체계를 온전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점은 총수 일가의 압도적 의결권이 작용하는 구조에서는 총수일가가 설정한 보수 한도가 그대로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늘고는 있으나 여전히 임원 보수 문제가 주주총회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는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는 임원 보수와 관련한 핵심 이슈로 특별 이해관계자의 의결권 제한과 지배주주의 고액 보수 수령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지배주주의 고액 보수 수령은 복수 계열사에서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며 고액의 보수를 수령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회사와 주주는 이러한 이슈를 주주총회 안건 선정과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사보수 결의 시 ‘특별 이해관계자’ 의결권 제한
상법 제368조 제3항은 “(주주)총회의 결의에 관하여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법원과 하급심 판례를 통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대법원은 ‘특별한 이해관계’를 특정 주주가 주주의 입장을 떠나 개인적으로 이해관계를 가지는 경우로 정의하며, 이를 바탕으로 실제 사례에서 특별한 이해관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고 있다. 특히,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은 대표이사나 사내이사가 자신의 보수를 받을 수 있는 한도를 설정하는 내용으로, 해당 임원이 개인적으로 이해관계를 가지는 ‘특별한 이해관계’에 해당한다는 하급심 판결도 다수 나오고 있다.
이런 판례는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서 등기이사의 의결권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을 명확히 하고 있으며, 이는 주주총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법적 근거로 간주한다. 그러나 실제 주주총회 운영은 이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 표결 당시, 분석이 가능한 472개 회사 중 자발적으로 특별 이해관계자인 지배주주 및 그 일가인 등기이사의 의결권을 제한했거나 제한한 것으로 추정되는 회사는 단 5곳(1.1%)에 그쳤다. 특히 등기이사인 지배주주 일가가 주식을 보유한 229개 회사 중에서는 이 비율이 2.2%에 머물렀다. 이는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 표결 과정에서 등기이사의 의결권 제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의결권 제한이 이루어졌다면, 표결 결과가 달라질 회사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 크다. 472개 분석 대상 회사 중 지배주주 및 그 일가가 등기이사로서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의결권 제한이 필요한 회사는 229개사다. 이 중 특별 이해관계자의 의결권을 제한했을 경우, 가결 요건인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 또는 의결권 행사주식수(출석 주주) 과반 찬성을 충족하지 못해 결과가 가결에서 부결로 바뀌는 회사는 총 28개사에 이른다. 더 나아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특별 이해관계자의 의결권을 제한했을 경우 부결로 바뀌는 회사들 중, 2022년과 2023년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던 회사는 2023년 기준 한국앤컴퍼니 등 5개사, 2022년 기준 3개사로 확인된다. 특히 서연과 서흥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3년 연속으로 등기이사의 의결권을 제한하지 않아, 부결되었어야 할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이 가결됐다.
복수 계열사로부터의 고액보수 수령
2023년 기준, 복수의 계열사에서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재벌 총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다. 신 회장은 5개 계열사에서 총 177억원의 보수를 수령했으며, 비상장 계열사에서도 보수를 받았을 경우 실제 보수 총액은 이보다 더 증가할 것이다. 한화그룹에서도 김동관 부회장과 김승연 회장이 복수의 계열사에서 고액 보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동관 부회장은 한화 등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3개 계열사에서 총 92억원의 보수를 받았으며, 김승연 회장은 한화와 한화솔루션에서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며 72억원을 수령했다.
조현범 한국타이어그룹 부회장은 2023년 계열사 부당지원,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음에도, 같은 해에 상장 계열사인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부터 각각 47억원과 31억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특히, 2023년 조현범 부회장이 한국앤컴퍼니에서 받은 보수는 전체 사내이사 보수의 82.1%, 이사 보수 한도의 67.2%를 차지한다. 주목할 점은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 결의 시 조현범 부회장의 의결권을 제한했다면 해당 안건이 부결로 결과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등기임원으로서의 고액보수 수령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며 등기이사보다 과도한 보수를 수령하는 총수 일가들의 사례가 여전히 제법 많다.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정유경, 정재은, 이명희 일가는 모두 미등기 이사로 재직하면서 고액의 보수를 받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 CJ, CJ제일제당, CJ ENM에서 각각 42억원, 36억원, 21억원을 받아 총 99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각종 불법행위로 회사에 손실을 끼친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며 고액 보수를 받는 사례도 여전히 빈번하다. 이해욱 DL그룹 회장은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사익 편취 혐의로 2023년 대법원에서 벌금 2억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디엘의 미등기 임원으로 36억원의 고액 보수를 받았으며, 분할 신설된 회사에서도 추가로 6억원을 받았다. 김준기 DB그룹 명예회장 역시 성추행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DB하이텍에서 34억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서 특별 이해관계자인 등기이사의 의결권 제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를 준수할 경우 의결 결과가 바뀔 수 있는 회사가 적지 않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더욱이, 복수의 계열사에서 고액 보수를 수령하거나 미등기 임원으로서 과도한 보수를 받는 총수 일가의 사례는 보수 체계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크게 훼손하는 주요 원인이다. 회사는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결권 제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 또한,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주주들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사 보수 한도 승인 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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