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크리에이터] ‘애플리카노’ 관광객 입맛 사로잡다…못난이 사과의 화려한 변신

조은별 기자 2025. 2. 1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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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크리에이터] (36) 김지현 밀라플라 대표
사과 활용한 독특한 디저트·음료 개발
지역농가에서 비규격품 공급받아 활용
영주사과 더 알리고 지역홍보에도 힘써
구도심 상권 잇는 다양한 프로젝트 구상
빨간 사과 모양 빵을 들고 웃고 있는 김지현 밀라플라 대표(오른쪽)와 남편 배현욱씨.

경북 영주역에서 차로 3분. 50년 된 고택 벽면에 그려진 빨갛고 깜찍한 사과 캐릭터가 방문객을 반긴다. 이탈리아어로 사과를 뜻하는 ‘밀라(mela)’와 꽃 ‘피오레(fiore)’를 조합한 이름의 ‘밀라플라’ 베이커리 카페다. 영주 특산물인 사과로 특별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김지현 밀라플라 대표를 만났다.

카페 진열장에는 윤기 나는 사과가 가득하다. 예쁜 사과만 고른 걸까? 김 대표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는다.

“다 못난이 사과예요.”

카페 건물은 영주 구도심에 있는 고택을 개조해 만들었다.

맛과 품질은 이상 없지만 모양이 비대칭이거나 꼭지가 떨어져 등급판정을 못 받은 못난이 사과. 농가에서는 판로를 찾지 못해 골칫덩어리지만 이곳에선 보물이 된다. 인기 메뉴인 콩포트(과육을 으깨지 않고 조린 잼)의 주재료로 변신하기 때문. 김 대표에 따르면 최근 이상기후로 비규격품 사과가 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사과 생산량 1위인 경북에서는 더 큰 문제일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지역 농가로부터 이런 비규격품을 일반 사과의 4분의 1 가격으로 공급받는다. 그 물량이 연간 1t이다. 농가는 시름을 덜고 카페는 경쟁력을 갖추는 ‘윈윈 전략’이다.

밀라플라에선 사과 음료뿐 아니라 쿠키세트 등 디저트도 판매한다.

이곳 대표 메뉴는 ‘애플리카노’다. 커피 원액에 물 대신 사과즙을 넣는다. 달콤한 사과향과 씁쓸한 커피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실제로 커피 음료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팬층이 두껍다. 못난이의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과 반개가 들어간 사과라테, 홍국쌀로 빨간 빛깔을 낸 사과빵, 황금빛 과육이 올라간 사과타르트까지. 서른가지가 넘는 레시피를 연구하고 시도한 끝에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메뉴만 살아남았다.

8년차 유치원 교사이던 김 대표가 시댁이 있는 영주로 내려온 건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다. “강원도의 감자빵처럼 영주를 대표하는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 영주 특산물 사과를 이용하면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겠다 싶었다.

온돌방과 좌식 테이블. 아이와 함께 온 손님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처음엔 적자를 무릅쓰고 영주 사과 알리기에 힘썼다. 경북문화관광공사의 프로그램 ‘경북 여행 찬스’ 참가자에게는 디저트값을 1000∼5000원 깎아줬다. 소백산국립공원의 ‘한달 살기’ 체험객을 위한 반값 할인도 진행했다. 덕분에 방문객들이 밀라플라가 있는 구도심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영주 사과의 매력에 빠져 쿠키와 굿즈를 사 가는 이들도 늘었다.

소멸 위기 고위험지역인 영주에서 김 대표는 지역과의 협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관광 프로그램에 적극 동참하며 구도심으로 방문객을 유입시켰다. 공간 설계도 세심하게 했다. 젊은층을 위한 새로운 사과 메뉴를 선보이면서도 온돌방은 지역주민을 위해 그대로 보존했다. 따뜻한 방에 아이를 눕히고 차 한잔의 여유를 누리는 엄마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다.

영주 안팎에서 지역을 알리는 일에도 열정을 쏟았다. 김 대표는 2022년 행정안전부와 경북도가 주최한 여성 청년 창업자의 이야기 콘서트에서 만난 참여자들과 2023년 ‘일꾼 영주여자들’을 결성했다. 그해 6월에는 그중 6개 업체가 모여 비누·초 만들기, 유리공예·캘리그라피 등 무료 원데이클래스(일일강습)를 진행했다. 모임원끼리 각자의 매장에서 돌아가며 플리마켓도 열었다. 밀라플라에서 진행한 2024년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300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았다. 2023년에는 경기 남양주에 분점을 열어 서울·경기에서도 영주 사과를 경험할 기회를 마련했다.

새콤달콤한 사과티와 캐릭터 자석 굿즈. 영주=김도웅 프리랜서 기자

“남양주에서 애플리카노를 마셔보고 영주로 여행 오는 분들도 생겼어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로 국내 이곳저곳을 탐방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고 교통도 편해지면서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사과 증류주를 출시하고, ‘풍기인삼’으로 신제품도 개발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구도심 상권을 하나로 잇는 ‘고향로드’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구도심이야말로 진정한 ‘영주다움’을 간직한 곳이라 믿기 때문이다. 영주의 맛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갈비탕집·염소탕집·찐빵집 등과 협업하면 도시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새로운 활력을 가져올 것으로 그는 기대한다.

김 대표는 로컬크리에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한다.

“아이디어가 제 아무리 뛰어나도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려워요. 주민들과 상부상조하고 주변에 늘 관심을 기울여야 해요. 지역의 빈 곳을 채우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결국 인정받게 되고, 그 인정이 진정한 로컬크리에이터를 만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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