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장도 반도체 공장으로…47조 빨아들인 '실리콘 아일랜드'

김일규 2025. 2. 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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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공장 가동 1년 日 구마모토 가보니…
'실리콘 재팬' 상징으로 변신
TSMC 1공장 옆 32만㎡ 부지에
2027년말 가동 2공장 터파기 한창
소니·도쿄일렉트론·미쓰비시 등
인근엔 반도체 소재·부품사 둥지
끝없는 TSMC 낙수효과
희소금속 재활용 공장도 들어서
부동산 들썩…상승률 전국 6위
< 양배추밭에 초대형 공장…규슈의 상전벽해 > 지난 12일 대만 TSMC의 일본 첫 제조 거점인 규슈 구마모토 1공장. 양배추밭을 갈아엎고 20개월 만에 세운 공장이다. 공장 바로 앞 양배추밭도 새로운 공단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구마모토=김일규 특파원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아라오시의 한 파친코장. 작년까지도 도박 중독자가 드나든 곳이지만 올가을엔 반도체 장비용 부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거듭난다. 대만 부품 업체 피드백테크놀로지가 공장을 짓기 위해 이 건물을 사들였다. 이 회사는 미국 고객사의 증산 요청에 새 공장 부지를 찾던 중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가 진출한 구마모토에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1980년대 일본 반도체산업의 메카 역할을 한 규슈섬. 한때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10%를 차지했지만 일본 반도체산업 몰락과 함께 ‘갈라파고스’로 전락한 규슈가 TSMC 공장 개소 1년 만에 ‘실리콘 아일랜드’로 부활했다. TSMC가 진출을 결정한 2021년 이후 규슈 지역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는 100건을 돌파했고, 투자액은 5조엔(약 47조5000억원)을 넘었다. 양배추밭이었던 공장 주변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었다.

 ◇ 1공장 가동·2공장 착공


지난 12일 찾은 1공장을 오가는 직원들의 표정엔 활기가 넘쳤다. 1공장은 작년 12월 양산을 시작해 소니 등에 납품하고 있다. 작년 2월 공장 개소식 때 밝힌 양산 일정을 지켰다. 개소식에서 “일본 반도체 제조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고 한 모리스 창 TSMC 창업자의 말 그대로였다. 공장 관계자는 “대만 TSMC 공장과 완전히 동일한 품질로 라인 가동에 성공했다”고 했다.

1공장 바로 옆 약 32만㎡의 광활한 부지는 높이 3m의 흰색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담 안쪽에선 터 파기가 한창이었다. TSMC 2공장이 들어서는 곳이다. 2공장은 일본 내 공장 중에선 가장 앞선 6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로직 반도체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2027년 말 가동이 목표다. 1·2공장 투자액은 총 3조엔가량으로, 일본 정부가 최대 1조2000억엔의 보조금을 직접 지원한다.

 ◇ 반도체 기업 총집결

일본 구마모토에 있는 TSMC 1공장 앞을 직원들이 지나가고 있다. JASM은 구마모토 공장을 운영하는 TSMC 자회사다.

TSMC 효과로 인근 수㎞ 반경에 반도체 관련 기업이 몰려들고 있다. 소니는 이미지 센서를 만드는 공장을 고시시 약 37만㎡ 부지에 연내 착공한다.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도 고시시에 올여름 새 연구개발(R&D) 거점을 열 예정이다. 인근 기쿠치시에선 미쓰비시전기가 올해 11월 파워반도체 신공장을 가동한다.

반도체 소재 공장 투자도 늘고 있다. 후지필름은 지난달 TSMC 1공장과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반도체 웨이퍼 연마제 공장에 약 20억엔을 추가 투자해 생산 능력을 30% 늘렸다. 미쓰비시케미컬(기타큐슈, 포토레지스트 원료), 섬코(사가·나가사키, 실리콘 웨이퍼), 롬(미야자키, SiC 웨이퍼), 도쿄오카공업(구마모토, 현상액) 등도 규슈에서 신·증설에 나섰다.

규슈경제조사협회는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가 규슈, 오키나와, 야마구치에 2021년부터 10년간 23조엔의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추산했다. 규슈가 기대하는 다음 타자는 반도체 후공정 세계 1위인 대만 ASE다. ASE는 작년 7월 기타큐슈시와 시유지 취득 가계약을 맺었다. 정부 보조금 등이 결정되면 본계약을 맺을 것으로 관측된다.

 ◇ 거대한 산업 파급 효과

산업 파급 효과도 크다. 구마모토에는 폐기판 등에서 금, 은, 희소금속 등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공장도 들어서고 있다. 반도체 공장 내진 대책을 짜거나 구마모토 지역 차량 정체 대책을 세우는 컨설팅사도 개업을 준비 중이다. 일본 3대 은행 중 한 곳인 미쓰비시UFJ은행도 구마모토 비즈니스를 늘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발표한 2024년 기준지가에 따르면 TSMC 1공장이 있는 기쿠요마치 땅값은 전년 대비 16.9% 올라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상승률 6위, 인근 오쓰마치는 19.4% 올라 1위를 기록했다.

반도체 인력 확보는 향후 과제다. 규슈에선 연간 1000명 규모의 반도체 인재가 부족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규슈 각 대학은 반도체 인력 양성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구마모토대는 올해 ‘반도체 대학원’을 연다. 미야자키대, 규슈대 등도 반도체 인재 육성 과정을 늘릴 계획이다.

구마모토=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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