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지 분류기와 심사계수기가 무슨 '최첨단 기계'인가요? : 부정선거 음모론 해부학

강서구 기자 2025. 2. 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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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부정선거 음모론 해부학 1편
韓 선거시스템 ‘오프라인’
전자개표 시스템 아니야
분류기·계수기 간단한 장치
통신장치 없어 해킹 불가능
그럼에도 분류기·계수기를
첨단장치 쯤으로 아는 사람들
부정선거 음모론의 오류와 허구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꼽았다.[사진|뉴시스] 

유시민: "실물 투표용지가 현장에 다 있잖아요. 현장에서 개표하고, 수개표 다 하고 있고, 지금 전자개표기라고 그러는데, 전자개표기 아니에요. 투표 분류기예요."

손석희: "(말이 섞이면서) 중간에 바뀌었죠."

유시민: "투표 분류기고… (말을 잇던 중 화두를 돌리며) 원래부터 전자개표란 건 없었어요. 다 투표 분류기고요, 투표 분류하고 나면, 분류된 투표용지를 확인을 해서 100장 묶음으로 하고요, 현장에서 참관인들이 사인하고요, 선관위원장하고, 그러고 나서 입력하는 거예요. 그 시스템에. 그리고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보는 건 각 개표 현장에서 투표함별로 집계된 자료들이 선관위로 올라와서 방송국으로 넘어오면 여기(TV에) 보여주는 거거든요. 여기서 해킹을 해서 조작을 한다, 그것도 안 되지만 그렇게 해서 현장의 실물 투표지와 맞출 수가 없어요. 선거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주장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그냥 알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 지난 1월 29일 방영한 MBC 프로그램 '손석희의 질문들'에 나온 장면 중 한 토막이다. 순식간에 지나간 탓에 많은 이들이 보지 못했겠지만, 진행을 맡은 손석희 교수의 오류를 유시민 작가가 바로잡고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앵커인 손 교수조차 잘못 알고 있다면…,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우리나라 선거시스템의 뼈대가 '오프라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는 거다. 대통령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띄운 것도, 대통령 추종세력이 그 음모론을 철석같이 믿는 것도 어쩌면 이 때문일지 모른다.

# 그래서 우린 부정선거 음모론을 해부해 보기로 했다. 우리나라 선거시스템의 뼈대를 분석하고, '난다 긴다' 하는 해커가 침투할 수 있는 지점이 실제로 있는지 찾아봤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붉게 물들인 '중국 자본 침투설'과 '개표인단 매수설'도 검증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답은 하나 마나다. 부정선거 음모론 해부학의 문을 연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설득력이 하나도 없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2024년 4월 10일. 시계추를 22대 총선 투표일로 잠시 돌려보자. 아침 일찍 일어나 부리나케 투표소로 발걸음을 옮긴 직장인 이용민씨. 간단한 신원 확인을 마친 사무원이 투표 용지 2장을 건넨다. 지역구 투표용지와 38개 정당이 적힌 51.7㎝ 길이의 비례대표 투표용지다.

용민씨는 가림막이 쳐진 기표소로 들어간다. 내심 마음에 뒀던 후보자와 정당 이름이 적힌 칸에 도장을 찍고, 투표용지를 잘 접어 투표함에 넣는다. 투표 끝이다. 용민씨, 민철씨, 정찬씨, 숙이씨 등도 똑같은 절차로 투표를 마쳤을 거다.

그렇게 오후 6시. 참관인은 투표를 마감하고, 호송 경찰 2명과 함께 투표함을 개표소로 보낸다. 개표소開票所는 말 그대로 투표함을 열어 표를 확인하는 곳이다. 22대 총선 때 전국에 설치된 개표소는 총 254개. 선거구 수와 같다.

이런 개표소엔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다. 가장 많은 건 투표용지를 세는 개표사무원이다. 공무원, 교직원, 금융·공공기관 직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부족한 인력은 일반인(22대 총선 기준 33.9%)이 메운다. 22대 총선 때 개표사무원은 총 7만7186명. 개표소 1개당 평균 303명을 배치했다.

다음으로 많은 건 개표참관인이다. 이들의 역할은 개표상황을 눈으로 보면서 개표가 공정하게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거다. 정당·후보자가 직접 선정하는 개표참관인은 1만7469명. 개표소당 평균 69명이 참관한다. 여기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경찰인력과 전기·소방·의료 등 개표사무협조요원(총 1만2333명·개표소당 평균 48명)도 배치한다.

개표사무원과 개표참관인, 개표사무협조요원까지 모두 합치면 총 10만6988명. 한 개표소당 평균 420명이 개표과정에 참여하는 셈이다. 지금은 '피고인 신세'로 전락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불을 지핀 '부정선거 음모론'은 바로 이 공간에서 시작됐다.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254개 개표소에서 '선거(개표) 조작'이 이뤄졌다는 게 음모론의 골자다.[※참고: 본투표에 앞서 4월 5·6일에 진행한 사전투표 결과도 이때 파악한다. 사전투표함을 먼저 개봉하고, 본투표함을 나중에 개봉하는 식이다.]

400명이 뻔히 보는 앞에서 '선거 조작'이 이뤄졌다는 발상이 황당하긴 하지만, 그래! 어쨌거나 음모론이 화두에 오른 데다 '부정선거 의혹에 공감한다'는 사람들이 43.0% (케이스탯리서치·1월 기준)에 달한다고 하니, 한번쯤 해부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우리나라 선거에 사용하는 투표지 분류기와 계수기에는 인터넷이 연결돼 있지 않다. [사진|뉴시스] 

그 전에 생소한 용어부터 살펴보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위)는 원활한 개표를 위해 두가지 기계를 사용한다. 투표지 분류기分類器와 투표지 심사계수기計數器다. 누군가에겐 '21세기 최첨단 기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투표지 분류기는 표票를 분류하는 간단한 장치다. 내부에 탑재된 센서가 기표 모양과 위치를 인식해 표 뭉치를 정당별·후보자별로 나눠준다. 이렇게 분류한 투표지들은 사람의 '힘'을 거친다. 개표사무원이 일일이 투표지를 분류하고 센다.

투표지들은 그다음 심사·집계부로 넘어가 계수기로 '검증 과정'을 거치는데, 이 역시 별것 아니다. 계수기의 기능은 정당별·후보별로 분류된 투표지를 '세는 것'뿐이다. 은행에 있는 '돈 세는 기계'처럼 말이다. 속도도 느리다. 1분당 150매다. 그마저도 믿을 수 없어 '개표사무원'이 함께 검수한다.

누군가는 또 묻는다. "분류기와 계수기에 인터넷이 연결돼 있지 않은가." 음모론자들이야 아쉽겠지만, 아니다. 분류기와 계수기는 '오프라인'이다. 통신장치도, 그 흔한 무선랜카드도 탑재돼 있지 않다. 그냥 '기계'다. 어떤가. 언뜻 봐도 여기까진 '해커'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모든 게 '오프라인'이어서, 날고뛴다는 해커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믿지 못할 사람이 수두룩할 테니, 계속해서 개표 과정을 따라가 보자. '오프라인'으로 집계한 결괏값은 시군구 선관위 위원의 검열을 한번 더 거친다. 위원들은 득표수와 무효투표수 등을 확인한 후 성명을 기재하거나 도장을 날인해 마무리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각 개표소에 투입된 시군구 선관위원장이 한번 더 개표 결과를 점검한 다음, 최종적으로 개표 결과를 공표한다. 그러면 보고담당자가 개표보고시스템을 통해 투표 결과를 중선위에 보고하는데, 이때 중선위 홈페이지를 매개로 방송사, 인터넷 포털(네이버·카카오), 이동통신사 등 52곳에 결괏값이 제공된다.

이렇게 개표 결과를 대중에게 공표하더라도 '검증절차'가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니다. 선관위는 개표 과정을 모두 담은 '개표상황표' 사본을 개표소 내의 지정장소에 붙여둔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은 틀린 부분이 없는지 눈으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까지 거쳐야 비로소 집계가 끝난다.

자! 이젠 물어봐야겠다. 대체 어디서 '선거조작'이 이뤄진다는 건가. 254개 개표소에서 제각각 올리는 '결괏값'을 어디서 어떻게 조작한다는 건가. 혹여 중선위 홈페이지를 해킹해서 숫자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254개 개표소에 '개표상황표'를 보는 수많은 사람 중 설마 한명도 눈치채지 못하겠는가. 백번 양보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이 때문인지 음모론자들은 또다른 신박한 방법론을 주창한다. 중국 자본을 통한 '매수설'이다. 각 개표소에 있는 개표사무원, 개표참관인, 경찰 등 협조요원, 시군구 선관위원, 시군구 선관위원장까지 매수해 결괏값을 조작한다는 거다.

개표 과정에 참연한 수많은 인원을 돈으로 매수해 선거 결과를 조작한다는 건데, 이런 조직적인 범죄가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이야기는 부정선거 음모론 해부학 2편에서 이어나가보자.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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