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체제 後… 장수기업 락앤락 '잃어버린 8년' [추적+]

이지원 기자 2025. 2. 1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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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밀폐용기 대표기업 락앤락
사모펀드 인수 그 후 8년
신사업 부진으로 기업가치 하락
엑시트 요원한 사모펀드의 한계
자산 유동화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생산공장 매각 후폭풍
노동자 부당해고 판정 불복
자진 상폐에 소액주주 반발

# 1978년 설립한 '락앤락'은 밀폐용기의 대명사로 불린다. 지난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락앤락의 경영권을 인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락앤락의 높은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기업가치를 제고한다는 전략에서였다.

# 하지만 시장은 어피너티의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생활용품 전문점, 소형가전 시장에 진출했지만 드라마틱한 성과는 내지 못했다. 락앤락의 기업가치가 하락하면서 매각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어피너티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데 주력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노동자, 소액주주,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사모펀드 체제하에서 락앤락이 잃어버린 것들을 들여다봤다.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는 2017년 락앤락을 인수했다.[사진|뉴시스]

밀폐용기 전문기업 '락앤락'이 7년 만에 간판을 바꿔 달았다. 락앤락은 1월 CI(Com pany Identity)를 교체하고 'Lockin' your moment'란 새로운 슬로건을 발표했다. 락앤락 측은 "밀폐용기가 '찰칵' 잠기는 순간에서 영감을 얻어 로고에 락앤락의 첫 글자 'L'을 괄호 형태로 추가했다"면서 "전세계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락앤락이 본질적 경쟁력을 제고하겠다고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평가는 냉랭하다. "락앤락이 예전 같지 않다" "락앤락은 당연히 한국에서 생산하는 줄 알았는데 중국 OEM 제품일 줄 몰랐다"는 식이다. 1978년 설립 이후 한국 대표 밀폐용기 기업으로 손꼽혀온 락앤락은 왜 이런 비판에 직면하게 됐을까.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2017년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너티)'가 락앤락을 인수한 후 추진한 전략들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가치가 하락하면서 매각을 통한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지자 어피너티가 '수익성' 위주의 전략을 펼친 게 패착으로 이어졌단 거다.

일례로 락앤락은 어피너티가 경영권을 거머쥔 직후인 2018년에도 CI를 교체했다. '생활을 담다'란 슬로건과 함께 밀폐용기 전문기업을 넘어서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거듭나겠단 계획을 세웠다.

같은해 각종 생활용품부터 친환경 카페까지 갖춘 오프라인 전문점 '플레이스엘엘'을 선보였다. 2020년엔 소형가전업체 '제니퍼룸(현 락커룸코퍼레이션)'을 인수하고 진공쌀통·음식물쓰레기냉장고·도마살균기 등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런 확장 전략은 한계를 드러냈다. 플레이스엘엘은 모던하우스·다이소·이케아 등 경쟁사에 밀려 시장에 안착하는 데 실패했고, 2022년 사업을 접었다. 소형가전을 전문으로 하는 락커룸코퍼레이션의 매출액은 2021년 100억원대를 기록한 후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22년부턴 당기순이익 적자(2022년 -10억원·20 23년 -11억원·2024년 3분기 –2억원)가 쌓이는 신세로 전락했다. 업계 관계자는 "소형가전의 경우 전문기업들이 워낙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면서 "락앤락이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추지 않은 채 마케팅만으론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신사업들이 뚜렷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락앤락의 주가도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2018년 2만8000원대를 기록했던 락앤락의 주가는 2023년 6000원대로 곤두박질쳤다. 그러자 락앤락은 자산 매각, 인력 감축, 자진 상장폐지 등을 추진했지만, 부메랑만 맞았다.

노동자와 소액주주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신뢰까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락앤락이 직면한 문제점을 한가지씩 살펴보자.[※참고: 어피너티는 2017년 락앤락의 창업주 김준일 회장 등의 지분 63.56%를 6293억원에 인수했다. 인수금액의 절반가량을 인수금융으로 조달했다.]

■ 논란 노동자 = 언급했듯 락앤락은 수익성 위주의 전략을 추구하면서 국내외 생산공장을 줄줄이 매각하고 제품 생산을 외주화했다. 2021년 아산공장을 매각한 데 이어 지난해엔 본점 소재지인 안성공장까지 팔아치웠다. 그 과정에서 부당해고 논란이 불거졌다.

락앤락은 안성공장 매각에 앞서 2023년 11월 경영 악화를 이유로 공장 가동 중단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한달 만에 공장을 멈춰세웠다. 150여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는데 여기에 응하지 않은 31명의 노동자는 정리해고(2024년 1월 31일)했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해고 노동자들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제기했다. 경기지방노동위는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락앤락은 불복해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앙노동위는 재심 신청을 기각하고 락앤락에 "해고 노동자들을 원직에 복직시키고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정(2024년 9월)했다. 하지만 락앤락은 또다시 불복해 중앙노동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3월 20일 1차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어 해고 노동자들은 언제 복직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4월에는 서울 사업장 직원들을 대상으로도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그 결과, 2017년 403명에 달하던 락앤락의 직원 수는 289명(2024년 상반기)으로 28.2% 감소했다. 락앤락이 경영 실패의 부메랑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논란 소액주주 = 이뿐만이 아니다. 소액주주와의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락앤락의 최대주주인 어피너티(지분율 69.94%)는 지난해 4월 자진 상장폐지 계획을 발표하고, 2차례에 걸쳐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8750원으로 공개매수 발표 전날 종가(8180원) 대비 6.9% 높은 수준으로 책정했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95.0% 이상이면 자진 상장폐지할 수 있는 만큼 잔여지분 30.33%를 공개매수한다는 게 어피너티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일부 소액주주는 공개매수 가격이 지나치게 낮다며 응하지 않았다. 2018년까지만 해도 락앤락의 주가가 2만원대를 웃돌았으니 상장폐지 시 손실을 입는 소액주주들이 적지 않았던 거다. 공개매수 결과, 지분 86.38%를 확보하는 데 그친 어피너티는 전략을 바꿨다.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자진상장폐지를 추진했다.

포괄적 주식교환은 회사 간 주식을 교환해 '완전 모회사-완전 자회사'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주주총희 참석자의 3분의 2의 동의만 얻으면 가능하다.[※참고: 다소 어려운 포괄적 주식교환은 용어설명에서 그림을 통해 설명했다.]

어피너티는 지난해 10월 임시주주총회를 거쳐 신설법인 '컨슈머피닉스'와 락앤락의 포괄적 주식교환(현금교부형)을 진행했다. 기존 락앤락 주주가 소유한 주식을 컨슈머피닉스에 이전하고 그 대가로 공개매수와 동일한 주당 8750원을 (주주에게) 교부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락앤락은 컨슈머피닉스의 100% 자회사로 전환했고, 12월 9일 상장폐지됐다.

당연히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일부 소액주주는 법원에 주식매수가액결정신청을 제기했지만 결과를 낙관하긴 어렵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의 윤태준 연구소장은 "소액주주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움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말을 이었다.

"소액주주들이 법원에 주식매수 가격이 적정했는지 판단을 요청하기 위해선 먼저 회계법인의 기업실사를 진행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이 들 뿐만 아니라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다. 결국 포괄적 주식교환의 요건을 강화해 주주가치를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

■ 논란 소비자 = 더 큰 문제는 락앤락이 소비자의 신뢰까지 잃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국내 생산 공장을 모두 매각하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란 메리트가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5월엔 중국 OEM 제품 '홀터항균도마'가 품질 논란을 일으켰다. 해당 제품 6종 중 1종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폴리프로필렌(PP)이 검출되면서 판매 중단·회수 조치됐다.

그해 11월엔 개인정보 유출 사태까지 터졌다. 락앤락 측은 "외부 해커가 서버를 공격해 락앤락 통합회원의 아이디·비밀번호·이름·주소·휴대전화 번호·이메일·생일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지만 앞으로도 어피너티는 '투자금 회수'에 집중할 공산이 크다. 어피너티가 락앤락 경영권 인수와 공개매수 등에 7000억원가량을 쏟아부은 만큼 자산 유동화, 배당 확대 등으로 수익 실현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참고: 어피너티는 락앤락 인수 이후 3차례(2017·2018·2022년) 배당을 실시해 753억원을 회수했다. 2023년엔 유상감자(주당 5819원)를 진행해 278억원을 챙겼다,]

실제로 잇따른 자산 매각으로 락앤락의 현금성 자산은 2022년 991억원에서 현재(이하 2024년 3분기) 2333억원으로 증가했다. 현금성 자산이 늘면 배당 여력이 커진다. 2023년 12월엔 자본준비금 2924억원을 배당에 활용할 수 있는 이익잉여금으로 전입했다. 락앤락의 이익잉여금은 2022년 2560억원에서 5110억원으로 늘었다.

실탄이 두둑한 데다 어피너티가 락앤락의 지분 100%를 확보한 만큼 향후 폭탄 배당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락앤락 역시 지난해 5월 이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을 공시한 바 있다. "올해(2024년)엔 배당을 추진하지 않을 예정이지만 내년 이후엔 재무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배당 여부를) 판단할 것이다."

락앤락을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이 따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기 드문 국내 장수기업 락앤락은 이런 상황에서 과연 노동자, 주주, 소비자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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