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신장으로 사람 살린다?…희망 보이는 이종 장기이식

곽노필 기자 2025. 2. 1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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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미국 FDA, 돼지 신장 이식 임상시험 첫 승인
지난해 11월 이식한 장기는 석달째 정상 작동
미국 보스터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의료진이 1월25일 신부전증 환자 팀 앤드류스(66) 돼지 신장 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제공

이식할 장기가 없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이종 장기이식이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 이종 장기이식이란 부족한 장기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제약업체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UT)가 신청한 돼지 신장 이식 임상시험을 승인했다고 미 언론들이 전했다. 이 회사의 돼지 신장은 자회사인 리비비코어가 개발한 것이다.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또 다른 생명공학기업 이제네시스(eGenesis)도 임상시험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연구 및 실험 단계의 돼지 신장 이식 수술 3건을 승인받은 바 있으며, 최근 그 첫번째 수술을 마쳤다.

이번 임상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의학계가 오랜 기간 꿈꿔왔던 이종 장기 이식이 새로운 치료법으로 공인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 장기 이식에서 돼지의 장기를 쓰는 이유는 사람 장기와 크기와 기능, 생리적 특성이 매우 유사해 이식 후 거부 반응 위험을 줄이는 데 유리하고, 번식력이 뛰어나 장기를 쉽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의 레이 피터슨 부사장은 성명을 통해 ”평생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그 대안으로 이식 장기를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제네시스의 마이크 커티스 대표는 워싱턴포스트에 “장기이식 분야가 혁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는 우선 6개월 이상 투석 치료를 받은 환자 가운데 6명을 선정해 임상시험을 실시한다. 의학적인 이유로 다른 사람의 신장을 이식받을 수 없거나 앞으로 5년 안에 이식받을 가능성이 낮아 그 사이에 사망할 가능성이 있는 55~70살의 말기 신장질환자가 대상이다. 임상시험은 올해 여름부터 시작한다.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임상시험 환자 수를 5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제네시스는 3명으로 시작해 상황을 봐서 확대할 계획이다. 각각의 이식수술 사이엔 3~6개월 간격을 둔다.

돼지 신장을 이식한 팀 앤드류스가 수술 1주일 후 퇴원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제공

면역거부 반응 없게 유전자 편집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는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10개의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 신장을 사용한다. 6개는 인간 유전자를 추가한 것이고 4개는 돼지 유전자를 비활성화한 것이다.

이제네시스는 69개의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 신장을 사용한다. 돼지의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를 비활성화하는 59개 유전자와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항원 유전자 3개를 제거하고 인간 유전자 7개를 삽입했다.

또 이제네시스는 소형 돼지 품종을 사용해 장기가 이식 후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한 반면, 유티시는 이식 후 장기가 더 커지지 않도록 관련 유전자를 비활성화했다.

임상시험에는 수술 후 신장이 얼마나 오랫동안 잘 기능하는지 추적하는 과정도 포함된다. 수술 후 24주 동안은 집중적인 관찰을 받고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관찰을 받아야 한다.

후속 관찰에서 중요한 것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병원체가 돼지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두 회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무균 시설에서 장기이식용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이식 수술에 사용된 돼지 신장. 지난해 11월 세번째 이식 수술 환자에게 사용됐다. 뉴욕랑곤헬스 제공

투석 중단…삶의 새로운 활력 찾아

지금까지 미국에서 돼지의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는 6명에 이른다. 2명은 심장, 4명은 신장이다. 그러나 뇌사자이거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당국이 특별히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 프로그램에 따라 승인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동정적 사용이란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고 다른 치료법이 없는 경우에 사용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대부분 수술 2개월 이내에 사망하거나 장기 기능이 정지됐지만, 지난해 11월25일 유티시의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토와나 루니(53)는 투석을 중단한 채 석달째 정상 생활을 하고 있다. 수술을 집도한 뉴욕랑곤헬스의 로버트 몽고베리 박사는 지난 1월말 AP통신에 “루니의 신장은 완전히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니에겐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의 돼지 신장이 이식됐다.

가장 최근에 이뤄진 건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이 지난 1월25일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팀 앤드류스(66)에게 시행한 돼지 신장 이식 수술이다. 이제네시스의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앤드류스는 수술 1주일 후인 2월1일 퇴원했다. 앤드류스는 “투석에서 벗어나 활력을 되찾았다”며 “새로운 삶을 주신 의료진에게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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