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길 땐 언제고, 문제 생기니 ‘네 탓’ 하는 극우 세력
‘국민 저항권’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윤석열 지지자들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개념이다. 윤석열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되던 1월18일, 전 목사는 서울 광화문 집회에서 “국민 저항권이 완성됐다. 빨리 서부지방법원으로 이동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곤 같은 날 오후 4시쯤 광화문 집회를 마무리한 뒤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 이동했다. 전 목사 측은 밤 9시쯤 해산했다고 주장했고, 이튿날 새벽 3시께부터 서부지법 폭동이 벌어졌다.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이 아무개씨와 윤 아무개씨는 서부지법 폭동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전광훈 전담 수사팀’을 꾸리고, 전 목사가 폭동을 부추겼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전 목사는 12·3 쿠데타가 아니라, 쿠데타 이후 윤석열을 향한 수사와 탄핵심판 절차가 ‘불법’이고 그로 인해 ‘헌정질서가 파괴됐다’고 주장한다. 저항권은 “파괴된 헌정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든 하늘이 준 저항권을 발동할 수 있다”라는 게 전 목사가 ‘1호 헌법학자’로 꼽는 김학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이야기다. 이런 궤변을 근거로, 전 목사는 서부지법 폭동 이후에도 “국민 저항권이 시작됐기 때문에 윤석열도 구치소에서 우리가 데리고 나올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2014년 헌법재판소는 저항권의 요건을 “공권력이 ‘민주적 기본 질서’를 파괴하려 할 때, 이미 유효한 구제 수단이 남아 있지 않을 때”라고 판시했다).
2030 세대 윤석열 지지자들도 전광훈 목사의 ‘국민 저항권’ 주장에 조응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이 윤석열 체포영장을 집행한 1월15일, 이들의 온라인 집결지로 알려진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비대위 갤러리’는 분노로 들끓었다. 게시판 이용자들 사이에선 적극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대두됐다. “헌법상 국민 저항권은 물리력이 포함된 개념임. 우파 내의 X선비질 극복이 필요하다.” “아니 XX 그래서 저항권은 대체 언제 쓰는 건데, 헌재에서 탄핵 가결나면 저항권 발동하는 거임?” 일부 지지자들이 담을 넘어 서부지법에 침입하고 공수처 차량을 공격한 1월18일에도 ‘국민 저항권’이 그 근거로 쓰였다. “오늘 국민 저항권은 연습이었다. 상황이 악화되면 실전으로 나아갈 것.”
정작 전광훈 목사는 2월5일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1·19 서부지법 폭동 선동 혐의를 부인했다. 서부지법 폭동은 ‘국민 저항권’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는 취지다. 김학성 교수는 “저항은 모든 국민의 권리이지만 폭력 행사를 전제하지 않는다. 광화문 애국 성도는 창도, 칼도 든 적이 없다. 저항은 폭력과는 무관하다”라고 서부지법 폭동 세력과 선을 그었다. 구속된 두 특임전도사와의 관계도 부인했다. 전 목사는 “이 아무개는 1년 전에 한 번 만나서 수고했다고 안수기도 해줬다. 윤 아무개는 광주 교회에서 전도사가 돼서 애국 운동 하기 위해 우리 교회에 출석한 사람이다. 주차장에서 보고 가끔 인사할 정도 관계다. 내가 그런 애들하고 대화할 군번인가? 나이가 70이 넘은 원로 목사인데”라고 말했다.
얼떨결에 법원 들어갔다고?
경찰은 1·19 서부지법 폭동 연루자 99명을 입건했고, 이 중 66명이 구속됐다(2월5일 기준). 임응수 변호사는 서부지법 폭동 직후부터 이들의 변론을 자원했다. 임 변호사 말에 따르면, 현재 변호인단은 약 25명 규모로, 후원금을 받아 피의자 중 약 70명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폭동에 배후가 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변호인단이 접견하고 변론하는 이들 중에 배후가 있다거나 지시를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 어느 조직이나 단체의 회원이 아니라, 한남동 관저 앞 시위를 통해 서로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다. 아예 모르는 사이인데도 현장에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로 함께 체포된 경우가 많았다.”
임 변호사는 피의자들이 실제 큰 물리력을 행사하지 않았는데 ‘다중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영장이 발부됐다고도 주장했다. “현재까지 구속된 피의자 중 절반 이상이 심각한 폭력 행사와 무관하다. 또 절반 이상이 20~30대이고, 계엄과 탄핵 사태 이전에는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거나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도 아니었다. 얼떨결에 법원 안에 들어가 넘어진 사람을 보살피다가 체포돼 구속된 사람도 있고, 분위기에 휩쓸려 법원 담을 넘으려다가 저지하는 경찰과 뒤이어 넘어가려는 사람에 치어 결국 담장 안으로 떨어졌다가 체포된 청년(불구속)도 있다. 통상적인 경우에는 영장이 청구되지도 않을 텐데, 발부까지 됐다.”
“그럼 그 사람들은 왜 법원에 들어간 건가?” 1·19 서부지법 폭동 연루자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가 반문했다. “판사의 영장 발부에 항의하기 위해 법원에 침투하고, 경찰관들과 법원 직원들의 직무를 방해했다. 그러면 당연히 건조물침입,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가 적용된다. 다중이 위력을 보이고 공용물을 손상하지 않았다면, 혼자 거기 들어갔겠나? 다중의 위력을 이용해서 덩달아 법원에 들어간 것 자체가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매우 위험한, 위헌적인 행위이고 그래서 ‘멋모르고 들어갔다’고 해서 용서되지 않는다.” 법원행정처는 서부지법 폭동으로 약 6억~7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경찰에선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55명이 부상당했고, 그중 11명이 전치 3주 이상 진단을 받았다.
전광훈 목사도 피의자들도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전 목사와 함께하는 유튜버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는 폭동의 새로운 배후로 ‘국민의힘 비대위 갤러리’ 운영자 ‘박광배(닉네임)’와 극우 유튜버 ‘목격자K’를 지목했다. 신혜식 대표는 서부지법 현장에 있던 ‘윤석열 변호인’도 언급했다. 윤석열 측 배의철 변호사는 1월18일 새벽 서부지법 현장에서 “대통령이 여러분을 보고 있다”라고 말해 시위를 부추겼다는 의혹을 받는다.
1월18일부터 ‘국민의힘 비대위 갤러리’에는 경찰 배치 등 법원 안팎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거나 담 위치를 구체적으로 공유하며 법원 월담을 선동하는 글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구속영장 발부 시점이 가까워지자 분위기는 과열됐다. “구속되면 서부지법 판사 XX들 잡아다 돌팔매질을 쳐야지” “영장 결과 나올 때까지 절대 가면 안 된다. 영장 당직판사한테 시민 저항권이 뭔지 제대로 보여줘야 함”. 이러한 상황에서 1월18일 서부지법 현장을 찾아 “여러분들이 지금 불법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합법적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던 배의철 변호사의 주장은 이들의 난동에 불을 붙이는 ‘땔감’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한테 지령 내린 거 같다. (···) 이건 걍 대놓고 국민 저항권을 사용할 때라고 말하고 있는 거임(1월18일 3시22분 게시).”
신혜식 대표는 2월5일 전광훈 목사의 기자회견에서 “1월16일부터 (서부지법 앞에서) 미신고 집회가 계속됐다. 전(광훈) 목사를 부르기 전에, 이 미신고 집회를 주도한 사람들을 먼저 조사해야 한다. 박광배와 목격자K가 미신고 집회를 운영했고, 당일 분명히 폭력을 선동했다”라고 주장했다. 박광배와 목격자K는 모두 폭동 선동을 부인했다. 박광배는 커뮤니티에 게시글을 올려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당신들 처벌 피하고 싶어서 안간힘 쓰는 거 안다”, 목격자K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일관되게 폭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반발했다.
배의철 변호사도 폭동 세력과 선을 그었다. 배 변호사는 〈시사IN〉과의 전화 통화에서 “(폭동 발생) 25시간 전인 1월18일 새벽 1시경에 한 얘기다.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전혀 없다. 청년들이 서부지법 앞에서 고생하는 걸 대통령이 참 안타깝게 생각하고 걱정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다. 집회와 시위는 평화적이어야 하는데, (서부지법 폭동은) 명백히 평화 집회는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초유의 법원 폭동 뒤, 윤석열 지지 극우 세력에게 남은 건 책임 공방뿐이다. 전광훈 목사는 2월5일 기자회견에서 “3·1절까지 국민 저항권을 극대화하겠다. 1919년 3·1운동을 능가하는 저항 운동을 진행하겠다”라고 예고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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