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헌법재판관들의 시간’… 8차례 변론 질문 보니 헌재, 헌법침해 여부 확인에 집중 법조계 “국회-선관위 장악 등 쟁점 증언 통해 사실관계 상당부분 정리”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8차 변론이 열렸다. 헌법재판소 제공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심리하는 헌법재판소가 이달 13일까지 8차 기일에 걸쳐 12·3 비상계엄 핵심 관련자 14명에 대한 증인 신문을 마쳤다. 18, 20일에 열릴 9차, 10차 변론기일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조지호 경찰청장 등 추가 증인 신문이 남았지만 탄핵심판이 사실상 9분 능선을 넘었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재판관들이 청구인 측(국회)과 피청구인 측(윤 대통령)이 신청하거나 헌재가 직권 채택한 증인들에게 직접 질문한 내용들이 탄핵 여부를 가르는 기준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6일 동아일보가 재판관들의 직접 신문 내용을 분석한 결과 재판관들의 질문은 ‘계엄 선포의 절차적 위법성’, ‘국회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시도’, ‘정치인 체포 지시’ 등에 집중됐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증거 채택 등 심판 절차 진행 전반을 담당했고,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과 차선임 재판관인 김형두 재판관은 증인 등에 대한 질문을 주로 진행했다.
(왼쪽)정형식 재판관, 김형두 재판관.
정 재판관은 13일 헌재가 직권으로 채택한 유일한 증인인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에게 “(계엄 당일) 0시 31분부터 1시 사이 수방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 내부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조 단장은 “그렇다. 내부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했다”고 했다.
김 재판관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와 관련해 “참석자들 대부분은 국무회의라고 생각 못 했던 것 같은데, 증인은 국무회의라고 생각했느냐”고 질문했고, 이 장관은 “그렇다”고 답했다.
보수 성향으로 평가되는 정 재판관은 윤 대통령이, 중도 성향 김 재판관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윤 대통령 측이 공정성 등을 이유로 회피를 촉구한 이미선 정계선 재판관은 논란을 의식한 듯 지금까지 별도의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법조계에선 재판관들의 질문이 결국 탄핵의 핵심 요건인 ‘헌법 침해’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재판관들은 질문과 답변을 토대로 더 신빙성 높은 사실관계를 확정한 뒤, 윤 대통령의 헌법 침해의 정도가 탄핵에 이를 만큼 중대한 것인지를 판단해 대통령 파면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증인들의 진술을 통해 계엄군의 국회 장악 시도 등 주요 쟁점도 상당 부분 사실관계가 정리됐다고 볼 수 있다”며 “3월 초중순 선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헌재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밝혔다.
“의원 끌어내라 지시받았나” “선관위에 왜 軍투입” 주로 물었다
[尹 탄핵 심판] 헌재 재판관 질문으로 본 ‘尹탄핵기준’ 국회-선관위 장악 시도 여부 확인… ‘尹 계엄령, 헌법 위반’ 판단 기준점 ‘정치인 체포 지시’에도 질문 집중… 尹측 주장 ‘부정선거’엔 질문 안해
정형식 김형두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계엄 관련자들에게 주도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재판관들의 질문은 크게 계엄의 절차적 위법성, 국회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시도, 정치인 체포 등에 집중됐다. 이는 비상계엄 선포를 엄격한 절차에 따르도록 하고, 국회의 견제권과 선관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도록 한 헌법 77조에 대한 중대한 위반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재판관들, 국회-선관위 장악 시도 집중 질의
재판관들은 계엄군을 통한 국회 및 선관위 장악 시도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질문을 집중했다. 헌재가 유일하게 직권으로 채택한 증인 역시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이었다. 13일 8차 변론기일에서 정 재판관은 조 단장에게 “(지난해 12월 4일) 0시 31분부터 1시 사이 (이진우) 수방사령관으로부터 국회 본청 내부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느냐”고 물었다. 앞서 이 사령관 등은 본인들의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피했다. 정 재판관은 “(지시받은 정확한 발언이) ‘본청 안으로 들어가라’, ‘국회의원 끌어내라’냐”고 물었고, 조 단장은 “그렇다. 내부에 들어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했다”고 답했다.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을 비롯한 증인들이 각각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헌법재판소 제공) 2025.2.4 뉴스1
정 재판관은 4일 5차 변론기일에서도 진술을 거부하던 여인형 사령관에게 딱 한 가지를 물었다. “선관위 과천청사, 관악청사, 연수원에 병력을 출동시킨 건 맞죠?”라는 질문이었다. 여 사령관은 당황한 듯 “병력은 출동시켰지만 그 행위의 결과는 그 근처에도 못 가고 다 돌아왔다”고 답했다.
정 재판관이 “왜 보냈냐”고 묻자, 여 사령관은 “저는 지시에 따랐다”고만 했다. 수도권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통상 재판관들의 직접 질문은 제출된 서면으로 해결되지 않는 핵심 쟁점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정하기 위한 절차”라며 “헌법기관에 대한 장악 행위를 어떻게 판단하는지가 탄핵 인용 여부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싹 다 잡아들이라” 홍장원 메모 검증
계엄 당시 주요 인사 체포 지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재판관들의 질문이 집중됐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은 8차 변론기일에서 계엄 당일 오후 10시 50분경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통화를 마친 윤 대통령이 조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 출장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고 했다. 이를 들은 김 재판관은 “홍 차장 진술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화에서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라’, ‘우선 방첩사령부를 도와 지원해라’라고 했다고 한다”며 “그러고 나서 바로 국정원장한테 전화해서 ‘미국 출장 어떻게 하실래요’ 이건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조 원장은 “저는 대통령께서 홍 차장에게 그런 얘기를 했는지 확신이 없다. 홍 차장 말을 신뢰하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국방부 조사본부가 사실상 전군에 정치인 체포조 명단을 보내 달라고 요구한 혐의가 적시됐다.
정 재판관은 5차 변론기일에서 홍 전 차장이 메모한 ‘정치인 체포 명단’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정 재판관은 메모의 ‘검거 요청’ 부분에 대해 “국정원에 (정치인 등을) 체포할 인원이나 여력이 있느냐”고 물었다. 홍 전 차장이 “체포 권한은 없지만, 지원할 수는 있다”고 하자 정 재판관은 “(요청이 아닌) ‘검거 지원’이라고 적어야 했던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7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2025.2.11 뉴스1
●尹 주장한 부정선거, 재판관들은 질문 안 해
재판관들은 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서도 여러 번 질문했다. 11일 7차 변론기일에서 김 재판관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국무회의 요건 충족에 대해 한덕수 총리는 ‘평가 못 하겠다. 간담회 정도였다’고 했다”며 의견을 물었다. 이 전 장관은 “의사정족수인 11명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서 했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국무위원들과 상반된 답변을 내놨다. 검찰 조사에선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이 계엄을 만류하자 “대통령인 내가 결단한 것이고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하는 것”이라며 선포를 강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대통령은 이 전 장관에 대한 직접 신문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헌재는 재판관 만장일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평의를 종합해 본 결과 피청구인의 지위가 국정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그 산하에 있는 증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의결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형법상 ‘내란죄’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재판관들의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국회 측이 변론준비기일에서 이 부분을 소추 사유에서 뺀 만큼 형법상 유무죄 판단 대신 위헌성에 집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 측이 계엄 선포의 주요 배경으로 주장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서도 별도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대법 판결 등을 통해 사실관계 확정이 이뤄진 상황인 만큼 쟁점으로 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