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종전 협상이 세계와 한반도에 던지는 5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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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전쟁 3년 만에 막을 올리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통화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급 대표단이 며칠 안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자들과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
오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다.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에 따라 국제질서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유럽과 우크라이나의 입장을 배제한 채 ‘강대국끼리의 담판’으로 전쟁을 끝내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중국도 이 판에 끼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강대국들이 힘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신제국주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한반도와 세계를 어떻게 바꾸게 될지와 관련해 중요한 5가지 질문들을 점검해봤다.
트럼프와 푸틴의 종전 시간표는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은 러시아를 압박할 카드를 미리 포기했다. 러시아가 내건 종전 조건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불가 △러시아의 동부 우크라이나 점령지 인정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 보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퇴진 등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우크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지 않을 것이고 러시아의 점령지도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공개적으로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려다 전쟁이 났다는 러시아의 입장도 지지했다. 미국이 러시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의 판을 미리 만든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원칙인 ‘강대국끼리 거래’로 해결한다는 입장,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어렵게 양보를 끌어내기보다는 우크라이나를 손쉽게 힘으로 굴복시켜, 되도록 빨리 전쟁을 끝내겠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외교 소식통들은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우크라이나만 불리해진다’며 겉으로는 느긋한 태도를 과시한다. 러시아는 특히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는 협상하지 않을 것이고, 우크라이나가 새로 대선을 치른 뒤 신임 대통령과 종전 협상에 서명하겠다고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형식상은 지난해 5월 임기가 끝난 뒤 전시라는 이유로 계속 집권하고 있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상 자격이 없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쟁 패배로 후폭풍을 맞을 우크라이나에서 친러 세력이 결집해 러시아에 좀 더 우호적인 정부가 들어서는 것도 기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한반도안보연구실 연구위원은 “미국도 러시아가 요구하는 ‘젤렌스키 퇴출’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러시아는 자기들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관철시키려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겠지만, 내년에 미국 중간선거에서 반트럼프 세력이 결집해 러시아에 좋은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되도록 올해 안에는 종전 협상을 마무리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 파병과 북러 밀착은 어떻게 될까
북한은 지난해 10월 이후 1만1천여명의 병력을 러시아 서부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인 쿠르스크 전선에 보냈고, 이 가운데 4천명 정도의 사상자가 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소식통들도 북한군의 쿠르스크 전선 투입은 부인하지 않으며, 북한군이 전선에서 러시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쿠르스크는 종전에서 매우 핵심적인 지역이고, 북한군 철수 문제가 종전협정의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에는 미국이 러시아 쿠르스크를 포함한 모든 최전선으로부터 50km 밖까지 북한군 병력을 완전히 철수시킬 것을 러시아에 요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 전선에서 북한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정보가 나오는 것은 러시아가 미국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며 협상 여건을 만들기 위해 북한군을 최전선에서 후퇴시키는 카드를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난해 6월 체결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근거한 북러의 긴밀한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장기적으로 지속할 것으로 본다.
두진호 연구위원은 “러시아의 유라시아 전략에서 북한은 이미 중요한 카드”라면서 “러시아는 ‘핵을 가진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응하고, 앞으로 전개될 북미 협상 등에서 러시아가 중재자로 나서거나 북미중러 4자회담이나 미북러 회담 등도 추진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려면 한국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해야 할 이유다.
한-러 관계 회복될까…러의 한반도 영향력 구상
러시아 외교 당국자들은 한국을 향해 ‘북러 조약과 북한의 파병이 한국의 안보를 악화시키지 않는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한국이 50만발의 포탄을 우회 지원하기는 했지만,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까지는 가지 않았기에 관계 유지가 가능하다’는 신호도 보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과정에서 한국과도 관계를 개선하면서, 한반도의 남북 모두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러 관계를 지렛대 삼아 한국에는 러시아가 남북관계의 중재자가 될 수 있다고 나서는 전략이 예상된다.
제재 때문에 러시아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기업들의 복귀 등을 통해 한국과의 경제 관계도 복원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가 전쟁 이후 제재 문제로 부품을 조달할 수 없어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2년 내 재매입 가능’ 조건으로 헐값 매각하고 철수한 것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등도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트럼프는 왜 중국을 끌어들이려 할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우크라이나전을 끝내는 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미중 사이에 이에 대한 물밑 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종전을 위한 미-러 정상회담 개최와 휴전 성사 뒤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겠다는 제안을 트럼프 행정부에 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구상에 도움을 줘서 미국의 무역전쟁 공세를 누그러뜨리려는 중국의 전략으로 보인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영향력을 활용해 종전협상의 속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중국·러시아와 핵·미사일 군축 협상에 나서겠다는 좀 더 거대한 구상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에도 기자들에게 “상황이 정리되면 내가 처음 하고 싶은 회담은 중국·러시아와 핵무기를 감축하고 무기에 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회의”라며 “나는 군사비를 반으로 줄이자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인 2019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했는데, 미국과 러시아만 조약의 대상이어서 중국은 통제받지 않고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다는 문제를 거론했다.
두진호 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 종전에서 ‘시진핑 중재’를 얘기하는 것은 중국과의 핵·미사일 경쟁을 염두에 두고 미·중·러 강대국의 ‘그랜드 딜’로 안보 문제에 담판을 짓고 큰 판을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중국이 너무 깊이 끼어드는 것이 내심 떨떠름하지만, 중러 전략적 협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애매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5월9일 국제질서의 분수령 될까
5월9일은 러시아의 ‘2차대전 전승절’로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열병식 행사가 열린다. 러시아는 이 행사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 12일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모스크바로 초대했다. 특히 크렘린궁 측은 트럼프 대통령 초대 일정이 5월9일 전승절 열병식에 맞춰졌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기존의 외교 문법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 이후의 거침없는 강대국 중심 국제질서 추구에서라면 러시아의 2차 대전 전승절 기념일에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모스크바에서 만나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통화 뒤 자신이 설립한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우리는 우리 국가들의 위대한 역사, 우리(미국과 러시아)가 2차대전에서 성공적으로 함께 싸웠다는 사실을 돌아봤다”고 강조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편, 러시아는 북한군이 이번 열병식에 참가할 것이라고 발표한 적이 있고, 김정은 위원장의 모스크바 방문 초청도 이미 해둔 상황이다. 5월9일 모스크바 붉은 과장에는 어떤 지도자들이 모여 어떤 새로운 국제질서를 상징하게 될까.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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