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학원비를 위해, 낯선 핸들을 잡다 [.txt]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시작은 이랬다. 단지 8학군으로 학교를 옮긴 딸아이의 학원비 좀 벌어보려는 거, 소박하지 않은가. 여기서 말한 소박이란 뜻은 그만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그 일에 관해.
딸 하나 제대로 키워보기 위해 남편과 합의해 한명이 직장을 그만두는 초강수를 뒀다. 여기엔 남편과 나, 모두 전문직이 아니라는 핸디캡이 작용했다. 어차피 전문직도 아니고 월급을 500만원 이상 받는 게 어렵다면 아빠, 엄마 중 한 사람이 그만두고 딸의 교육 뒷바라지에 집중하는 게 효과적인 투자라고 믿었기에 우리 둘 중, 엄마인 내가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결심을 마친 뒤, 8학군으로 이사 뒤, 중요한 학원 고르기를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학원 입학을 성공한 뒤였다. 학원에서의 자체 설명회를 들은 뒤, 담당 학원 선생님과 면담까지 마쳤을 때였다. 그녀는 영어 전공이었는데,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나이도 같았고, 무엇보다 같은 여자고, 그녀 역시 학원 선생을 하면서도 나와 같은 연령대의 아들을 둔 아이 엄마로서 교육에 모든 관심을 쏟는 중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우리는 감당하기 힘든 학원비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부업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때, 선생인 그녀가 뭔가 보탤 게 없을까 전전긍긍하던 내게 다음의 제안을 남겼다.
“발렛(발레파킹) 안 해보실래요?”
“발렛이요?”
“저도 주간 수업 끝나고 하고 있거든요. 이 일, 깔끔하고, 탈도 없고, 시간 대비 가성비도 좋아요. 보험도 들어놔서 혹시라도 사고 난다 해도 부담 없고, 어때요?”
집에 돌아와 남편과의 저녁 식사 시간에 그 말을 했을 때, 남편의 표정은 두번 변했다. 처음엔 헛웃음 비슷한 웃음을 터트리며 ‘당신이? 당신이 발레파킹을 한다고?’라고 두번이나 되물으며 말 안 된다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내가 거듭 학원 선생의 예를 들며 자세히 설명하자 점점 수긍하는 듯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사실 내 설득의 말들, 이를테면 ‘보험 가입되어 있어 위험하지 않다, 손해 안 본다, 딸아이 학원이 자습실 이용까지 합치면 어차피 자정을 넘길 거니까 저녁 6시 이후부터 바빠지는 식당이나 술집 발렛 일을 하면 괜찮을 거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은 건 아니었다. 남편과 나를 설득한 건 결국 돈이었다.
“잘만 하면 하루에 삼십 이상도 벌 수 있대.”
“어떻게 그렇게 벌 수 있는데?”
“한 사람당 발렛비가 떨어지는 게 삼사천원인데, 100명 이상 차량이 들어왔다 나가는 걸 가정하면 삼사십도 바라볼 수 있다는 거잖아.”
밥알을 입안에 꾸역꾸역 넘기면서도 남편은 나와 같이 머릿수당 받는 돈 계산에 집중했다. 하루에 100여대 받으면 삼십 이상은 무조건 벌 수 있다는 계산이 섰던 남편은 짐짓 자신의 자존심이 훼손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얼버무리듯 말했다. 남편도 나도 딸아이 육아와 교육에 집중한 상황에 교육비 한푼이 더 중요했기에 정말이지 시간을 쪼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했다.
“그래. 쉬엄쉬엄 시작하면 되겠지, 슬쩍 해봐. 너무 힘들게 하진 말고.”
시작은 그렇다. 다 낯설고 슬쩍 시작하고 그러는 법, 그러다 차츰 익숙해질 것이다. 그렇게 믿기로 하고 발렛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저녁 6시, 딸아이를 대치동 학원에 보내주고 난 뒤, 지하철을 타고 로데오사거리 역에 도착해 약속 장소로 뛰다시피 걸어 나왔다. ‘궁’이란 고급 일식집이 보이는 곳이었다. 11월의 저녁은 이상하게 추웠다. 발레파킹이라 보이는 곳의 부스 문은 반쯤 열려 있었지만, 부스 안에 앉아 있는 이는 없었고, 모두 근처에 서 있었다. 저녁 6시가 갓 지났는데, 이미 마스터로 보이는 남자 한명과 발레파킹 기사로 보이는, 젊은 애로 보이는 노랑머리 한명, 말수가 거의 없는 남자, 이렇게 셋이 각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차량 받는 일에 열중했다. 그런데, 나를 소개해준, 자신도 매일 나온다던 학원 선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찾던 내게 대뜸 마스터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윤 선생이 소개한 아줌마, 맞죠?”
마스터가 말한 그 윤 선생, 우리 딸아이 담당 학원 교사의 호칭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맞는데, 혹시 윤 선생님 어디 계세요?”
“나야 모르지, 둘이 연락 안 했어요?”
“윤 선생님 여기서 근무하는 거 아니었나요?”
“근무지야 뭐 매일 바뀌는데, 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저기 봐봐요.”
말이 끝나자마자 마스터가 나에게 무전기 하나를 건네준 뒤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낡은 민영 주차장 한데를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 식당으로 차가 들어오면 차 키를 받고 저 주차장 지하에 주차해 놓으세요. 그리고, 대기하다가 콜사인 다시 들어오면 밖으로 나오면 돼. 쉽죠?”
“그게 끝인가요?”
“응,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어려울 거 없어. 없는데, 반드시 지하 주차장이어야 해요.”
“왜 반드시 지상은 안 되죠?”
“제가 그렇게 말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겠죠? 자. 차 키 받고 주차 시작해요.”
서둘러 말을 마친 마스터가 차 키 하나를 쥐어다 주었다. 수입 스포츠카로 보이는, 벤츠 마크가 선명하게 번들거리는 자동차 키, 이게 나의 첫 운전인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거는 데까지, 안전띠를 매고,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일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시작하는 기운이었다. 이 새로운 시작을 발판 삼아 어떻게든 딸아이 학원비의 다만 얼마라도 보태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주차장으로 들어가기까지는 그랬다.
주차장 입구가 지상과 지하로 분리되어 있었다. 지하로 향하는 주차장의 차단기는 올라가 있었는데, 들어가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지하로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지하 주차장엔 아무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불을 모두 꺼놓은 상태에서, 불이라곤 운전 중인 차에서 켜진 차량 불빛이 유일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다. 차량이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촘촘하게 들어섰기 때문이다. 대체 주차를 어떻게 해놔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방금 지급받은 무전기에서 무전이 들려왔다.
“아줌마, 아줌마 지금 뭐 해? 주차했어요?”
“네? 저요?”
“그럼, 지금 이 주파수 무전이 아줌마 말고 더 누가 있어요? 주차했냐고?”
“아. 네. 주차하려고요. 그런데, 어디 어떻게 주차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모르긴 뭘 몰라. 빈자리 찾아 주차하고, 빨리 4993 벤츠 차량 빼갖고 나와요.”
“지금요?”
“왜 이렇게 자꾸 두말하게 해. 차 키는 거기 꽂아두고 얼른 4993 갖고 3분 내로 나오라고!”
어둡고 축축했다. 모든 게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그 흔한 유도등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캄캄한 지하 주차장에서 어떻게 4993을 찾으라는 건지 막막했다. 겨우 핸드폰을 켜 비상 전등을 켜놓은 뒤, 4993을 찾았다. 이중의 이중으로 되어 있는 뒤편에 4993이 걸쳐 있었다. 어떻게 차를 빼야 할지 모르는 사이 휘파람을 불며 나타나는 젊은 남자애가 빈정거리듯 물었다.
“아줌마. 발렛 해봤다면서요?”
“네? 제가 발렛을….”
“그 학원 선생 아줌마가 그랬단 말이에요.”
문득 동갑내기 학원 선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남에선 어떤 일이든 해봤다고 해야 한다고, 경력직이어야만 어떻게든 등 비비고 밀고 들어가 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무조건 해봤다고 말해야만 했다.
“해봤으면 잘 빼봐요. 아, 그리고, 여기 이 지하 주차장 말이야. 식당에서 통째로 빌린 건데, 왜 이렇게 어두운지 알아요?”
“왜 어두운데요?”
“당연히 어둡지, 조명 켜놓으면 그게 다 돈인데. 그리고, 또 그것도 알아요? 보험 한도?”
“네? 그게 무슨…?”
“발렛 보험 들어놨다고 해도 그거 절대 무한대 아니에요. 벤츠, 아우디도 긁히면 본인 부담 발생하고요, 포르셰 이상부터는 문 콕만 해도 본인 부담 50% 넘어요. ×되는 거야.”
대체 녀석은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무슨 심리로 저런 말을 시시껄렁하게 끊지도 않고 말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결국, 이중 주차된 차들을 먼저 옆으로 일일이 하나씩 빼고, 가장 안 구석에 박혀 있던 4993 벤츠를 빼내기 시작했다. 젊은 발렛 기사가 했던 말이 차의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때마다 내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벤츠, 아우디도 긁히면 본인 부담이 발생한다는 말. 평소 딸 등하교, 남편 출퇴근 운전을 도맡아 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딸아이 학원비 좀 벌어보겠다는 일에 모든 신경이 쏠리는, 그렇게 핸들을 꽉 움켜쥔 내 두 손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룸미러를 훔쳐보니 난 명백히 울고 있었다. 왜 우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다. 10분이 넘게 기다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있는 듯한 4993 벤츠 차량 운전자도 나한테 뭔가 한바탕 쏟아주려 했다가 내 울먹이다 지친 붉은 눈동자를 보고 멈칫했던 걸 기억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스터는 빨리 다음 차 발렛이나 하라는 지시 내리기에 바빴다. 2954 포르셰였는데, 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다른 생각을 지우기 위해 애써 아래와 같은 주문을 속으로 외우며 포르셰 액셀의 위치를 찾았다.
‘학원비, 학원비 벌어야지.’
※이 글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고등학교 1학년생 딸을 키우며 발레파킹 기사 경험을 한 1980년생 김이소(가명)씨를 주원규 작가가 인터뷰한 뒤 소설 형식의 에피소드로 각색한 내용이다.
소설가 주원규
주원규 l ‘월급 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메이드 인 강남', ‘열외인종 잔혹사', ‘서초동 리그’를 썼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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